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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지 않았다고 괜찮다고

우물 안 개구리_한 곳만을 바라보다

나는 3년간 만난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을 해야 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임용 준비를 계속할 것인가 결혼을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난 27살에 결혼을 했다. 참 꽃다운 나이다. 새롭게 무언가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았을 나이.


남들보다 2년을 더 보냈다는 것,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언제 될지 모르는 시험에 대한 압박은 생각보다 컸다. 1년 후 혹은 3년 후에는 된다는 보장만 있어도 몇 년이든 더 할 텐데. 보장이란 없는, 끝을 모르는 터널 같은 느낌은 사람을 두렵게 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모든 선택은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진다. 결혼도 내가 선택했고 그 책임도 지금 내가 지고 있다. 27살인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나는 '결혼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26살의 나에게 '괜찮아. 지금도 늦지 않았어.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충분할 나이야. 두려워하지 마"라고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해주는 어른이 있었다 해도 그때의 나는 누군가의 조언을  받아들일 마음의 크기가 준비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있으면서 하지 않는 것과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은 다르다. 마인드가 다르고 결과가 다르다. 그래서 조금은 안타깝고 슬프다. 그러나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과거의 선택까지도 긍정하는 것. 오히려 우리 부부는 요즘 이런 말을 많이 한다. "결혼 빨리 한 건 잘한 것 같아.",  "일찍 아이를 낳은 것이 감사해."

내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을 경험했다.

인생의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빠른 결혼이 승리도 아니요 늦은 결혼이 승리도 아니다. 각자의 선택이요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에 허락된 다른 정답들 일 뿐.


나는 임용시험과 결혼 중에 결혼을 선택했고 가정을 이루었다. 신혼 일 년은 시험을 준비하며 보낼 생각이었는데 계획과 달리 우리 가정에는 결혼 3개월 만에 새 생명이 찾아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더 열심히 해야 했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입덧을 하며 매일 공부를 했다. 임용 준비하시는 분들 중에는 육아맘도 있고 임산부도 있다. 어떻게 임신해서, 아이를 키우며 공부를 하지? 했는데, 내가 겪어보니 상황과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얼마나 원하느냐'의 문제이다.


드디어 시험을 쳤다. 그때 당시 임용시험은 객관식이었기 때문에 가채점을 해보면 거의 정확하게 점수가 나왔다. 떨리는 마음에 스스로 채점하지는 못하고 남편이 채점을 했다. 점수를 듣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합격할 것 같다!! 1차 발표날.. 지역별로 커트라인 발표가 조금씩 차이 나게 올라온다. 강원, 서울, 경기, 대전.. 등등 내가 친 지역보다 먼저 발표가 되었다. 점수를 보니.. 이 정도 점수라면 합격이다!! 떨리는 마음에 내 지역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응시한 지역이 그 해 전국 1등 커트라인. 그 지역에서만 안 되는 점수로 난 떨어졌다. 같이 스터디를 했던 선생님은 나보다 낮은 점수로 다른 지역에 합격을 했다. 임용 준비해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뭐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내 실력이 부족했다'라고 말할 수밖에...


눈물이 났다. 너무 고생하며 공부했었기에 더 속상했다. 남편이 안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너는 나보다 훨씬  사람이야."신랑은 밑도 끝도 없이 자꾸만 나더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했다. 결혼 생활 내내. 썩 위로가 되지는 않았지만 따뜻함은 전달된다. 현실성이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나는 출산을 하고 육아맘의 길로 접어든다. 진짜 내 인생의 2막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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