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_한 곳만을 바라보다
나는 빠른 85년생. 사실은 '빠른'도 아니다. 나는 4월생이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음력 생일인 2월로 출생신고를 하셨단다. 그래서 나는 8세가 아닌 7세에 국민학교(그때 당시는 국민학교다, 물론 졸업은 초등학교로 바뀐 후 했다)에 입학을 했다. 친정엄마의 말에 의하면 빠릿빠릿한 아이가 아닌 데다가 만 1년을 일찍 학교에 갔더니 키도 작고 몸무게도 작고 뭐가 그렇게 어설프고 마음이 쓰였다고 하셨다. 6살에 한글을 가르쳐 보내시느라 고생을 하셨던 것 같다.
뒤늦게 머리가 트이는 아이가 있다고들 한다. 난 그 말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머리가 뒤늦게 트이는 게 아니라 뒤늦게 정신 차렸다'라고!
다니던 대학을 3년을 잘 다니다 4학년을 눈 앞에 두고 고민에 빠진다. '난 뭘 잘하지?, 난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지?', '나 뭐하고 살지?!' 그렇게 시작된 질문으로 3년째 잘 다니던 대학교에 1년 휴학을 했고, 1년 후 나는 자퇴를 했다. 혹시 자퇴서를 써본 적 있으신지..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서류에 사인하고 끝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 동의도 필요 없이.
물론, 그렇게 담담하게 자퇴서를 써낼 수 있었던 건 사범대 편입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일반대를 다니다가 사범대에 와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교육학에 '교'자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 편입은 3학년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전공 교육학까지 더해져서 그야말로 '멘붕'의 시작이었다.
뒤늦게 시작된 '정신 차림'은 편입 공부부터였다. 스스로 결정한 일이 처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 첫 시간 표을 짤 때의 느낌을 기억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짜인 시간표만 보다 시간표를 알아서 짜란다. 1교시를 넣어도 되고 빼도 되고, 과목도 선택을 하란다. '스스로 선택하는 일' 그 당연한 것을 대부분 20살 대학 시간표를 짜며 처음 경험한다
휴학을 했고 형편상 학원에 다닐 수는 없었고 그냥 통째로 1년이 주어졌다. 24시간 365일을 알아서 사용해야 했다. 뜻한 바가 있어서 휴학을 했는데 1년을 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편입 시험에 필요한 과목에 전공서적을 가져와서 매일 할 분량을 정하기 시작했다. 몇 개월에 한 번 전공서를 마칠 것인지. 그렇게 되면 한 달에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지 진도가 나온다. 그렇게 하루 몇 시간을 공부하면 될 지도! 돌아보니 이때가 '슬 시계'(슬기로운 시간 가계부)의 시작이 아니었다 싶다.
집 옆 도서관으로 매일 출근을 했고. 1년 만에 편입에 성공한다. 처음이었다. 혼자서 뜻한 바를 이루어 낸 것이다. 짜릿했다. 임용은 당연히 2년 후 졸업하면서 합격하는 걸로 알고 갔다. 자신감이 넘쳤던 것도 있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임용이 뭔지도 몰랐다.
그래도 졸업하면서 친 임용시험의 점수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시작된 재수의 길. 대학을 졸업했고 난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돌아왔다. 또다시 나에겐 1년의 시간이 주어진다. 편입 때와 같이 혼자 공부를 했다.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지금 돌아봐도 난 참 성실했다.
재수에는 붙어야 한다!! 나에겐 시간이 없다!(남들보다 휴학 1년에 학교 1년을 더 다년서 2년을 이미 보냈다). 남자 친구는 붙었고(현 남편) 난 떨어졌다. 포기할 수 없는 점수였다. '이게 문제다.' 포기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점수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