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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앤딩은 없나요

우물 안 개구리_한 곳만을 바라보다

집안도 잘 돌보고 시간관리와 집중치를 최대로 올리며 강의도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일 년간 공부를 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케어하며 공부를 하면서도 큰 스트레스 없이 일 년을 보 낼 수 있었던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드디어 이 마약 같은 고시공부를 끝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 내일 시험만 치러 가면 되는 것이다.      


임용시험은 토요일 친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험장으로 갔다. 겨울 아침 스산한 바람 시끌벅적한 임용 고사장 앞의 풍경.. 몇 년 전에 봤던 풍경인데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다. ‘아, 이런 모습이었지’라는 생각을 하며 고사장에 입장을 했다.  고사장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대의 수험생들이 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른 일을 하다가 뒤늦게 시험을 치는 나이 많은 고시생들도 은근 많이 보인다. 기간제 생활을 오래 했거나 다른 직장을 다니다가 다시 임용 생활로 돌아온 것이리라.


교사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이다. 요즘은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인 ‘Work-life balance’의 준말.)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직업이 아닌가 싶다.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어 살고 싶다’라는 희망 때문일까? 임용시험에 늦게 도전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리고 나이 많은 고시생들이 합격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 40대의 초임교사도 계신다. 나 또한 육아로 8년이란 시절을 보내고 30대 중반에 시험장에 가게 된 것이다. 감개무량하기보다는 왜인지 불편하기도 하다. 한참 아래의 후배들과 시험을 친다는 것이 민망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감정들 속에 평정을 찾으며 나의 책상을 찾아 앉았다.


 시간은 흘러 ‘야호, 시험 끝!’. 아침 8시쯤 입실한 고사장에서 오후 3시쯤 나왔던가..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초콜릿 몇 알로 점심을 때우고 장장 7시간을 고사장에서 보낸 후 탈출이다. 시험장 앞에서는 가족들이 기다린다. 나도 학생 때는 엄마 아빠가 기다리셨는데 이제는 남편이 날 기다리고 있다. ‘너무 고생했다며 뭐 먹고 싶냐’고 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근처 가로수길을 걷는다. 겨울이었지만 그날따라 따뜻했는지, 시험 친 후 내 기분이 따뜻했었는지 남편 덕분이었는지. 8년 만에 치른 나의 시험의 끝은 참 ‘따뜻’했다.


그렇게 시험을 친 후 몇 일간은 푹 쉬었나 보다. 왜인지 모르게 잘 친 것 같았다. 임용시험은 논술형이기 때문에 정확한 점수를 내기가 어렵다. 최종 발표가 난 이후에도 정답지는 오픈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어려운 시험인지도 모르겠다. 일 년 시험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무조건 붙는다’라는 각오로 시작했고 그 각오에 걸맞게 공부했다. 정말로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지금 돌아보니 조금 더 지혜로운 방법으로 새벽을 깨우며 공부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때 당시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있었다. 한 번도 내려놓지 못했던 나의 최종 인생 목표였던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내려놓음. 그 내려놓음은 나에게 있어서는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었다. 그저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면 벌써 포기했었겠지.. 임신을 해서 입덧을 하면서도 종일 앉아 공부했고 8년 만에 전공책을 부여잡고 두 아이를 케어하면서도 매일 얼마나 열심히 했던가. 내가 다시 생각해도 스스로 대견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1차 발표날이 되었다.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올해는.. 마지막이었잖아.. 정말 합격하는 줄 알았잖아.. 이번에는 ‘축하합니다. 1차 시험에 합격했습니다’를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늘 봤던 한 문장을 보고야 말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정말 이상할 만큼 괜찮았다. 눈물이 나기는 했지만 어쩐지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나도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시작했던 그 마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격 커트라인 점수를 확인해보니 0.6점 차이가 났다. 소수점으로 떨어진다더니 그게 나였다. 소수점 차이로 떨어진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모두가 동일한 반응이었다. 몇 년 만에 준비하고 소수점 차이면 한 번만 더 해보라고.


생각해보면 집중해서 2-3년을 내리 공부한 적이 없었다. 집안 사정에 의해서 하지 못했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서 못했다. 다 1년씩의 공부로 끝이 났다. 상황의 핑계를 대지만 나의 지구력의 한계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포기하지 못했다. 아쉬운 점수로 마무리된 나의 시험.. 이어서 시험을 치르지 못한 나의 미련 등이 남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크게 안타깝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나는 포기가 아니라 돌아서기로 했다. 나의 인생 목표가 달라졌다. 다른 세상에서 살고 싶어 졌다. 남편과 약속한 그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딱 일 년만 해보자. 일 년 해보았으니 되었다. 솔직히 정말 합격할 줄 알았다. 그런데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시험에 떨어져서 교사를 못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내가 버린다. 내가 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실패자로 살았다면 내가 그 꿈을 버리고 떠난 나는 더 이상 실패자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어떤 삶이 펼쳐질지 아무런 예상도 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길로 가기로 했다. 우물 밖으로 나온 역사적인 날이었다. 우물 밖은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겠지. 기대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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