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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못한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

우물 밖 개구리_다른 곳을 바라보다


참 신기하다.


 ‘언젠가는 교사가 되어야지’하며 살았던 시간 속에서 나는 꿈을 이루지 못한 ‘실패자’였는데.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실패자가 아니었다. 교사가 되지 않은 결과는 같은데 나의 마음은 달랐다.  ‘하지 못한 것’과 ‘하지 않는 것’이라는 한 끗 차이였다. 내가 능동태로 살아가느냐 수동태로 살아가느냐의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한번 더 시험 준비를 하기로 결정하고 끝까지 교사의 꿈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해도 그 또한 능동태의 삶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살아 보기로 결정했다.    

  

나는 시험공부를 연속적으로 하지 못하고 몇 년에 한 번씩 시험을 치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전공책을 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멀티가 되지 않는 사람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린아이를 키우며 수험생활까지 할 자신이 없었기에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 같기도 했고 때로는 조급함도 느껴지기도 했다. 육아를 하는 내내 ‘자리 잡지 못한’ 나의 모습이 실패자처럼 느껴졌었다. 남편은 괜찮다 했지만 그런 말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고 아이들이 컸을 때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한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둘째가 5살이 되어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둘째가 이 정도 크니 나도 내 삶에 여유가 조금은 생겼다. 늘 상황에 핑계만 있었던 내가, 아이 둘을 케어하며 1년간 수험생의 삶을 멋지게 살아내었다. 나 자신에게 떳떳한 일 년을 보내고 시험 결과를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를 대면했다. 그래그만하자교사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 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돈'이었다. 공무원이 최고인 줄만 알았던 내게, 돈 공부는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주었다. 남편과 내가 ‘1년만 해보고 그만 하자!’라고 했던 이유 중 하나, 남편이 공무원으로 안정적이게 살아가고 있으니 한 사람쯤은 안정적이지 않게 살아도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나의 오랜 꿈이 교사니 후회하지 않게 마지막으로 열심히 해보자!! 한 번도 다 털어내듯이 공부해보지 못해서 포기도 어려우니무조건 일 년 열심히 해서 붙어보자! 했다.  나와의 약속, 그리고 남편과의 약속. 그 약속을 지켰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했다. 그래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만 할 수 있는 용기도 대단하다 싶었다. 그리고 다른 세상에서 살아볼 용기가 생겼다.   

  



 일 년이라는 시간을 설정한 것도 사실은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학을 갓 졸업한 빠릿빠릿한 후배님들과 그것도 애 딸린 아줌마의 대결을 두고 1년이라니. 청년들도 2-3년씩 한다는 시험에 무슨 자신감으로 1년이라고 설정한 건지. 그런데 자신감 이라기보다 나에게 허락할 수 있는 시간 설정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1년을 2, 3년처럼 보내자 했다. 자신만의 ‘데드라인’을 정해놓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돌아 서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돌아서는 것은 '용기'이다. 애매하게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일수록 발 빼기가 어렵다. 사업을 잘하는 사람은 손실의 액을 정해두고 그 손실이 왔을 때 사업을 접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버티면 되겠지 하는 손실의 데드라인이 없는 생각에 더 큰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본전 생각이 가득하다. 나 또한 그랬다. 내가 임용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이 얼마인가, 더 내려놓지 못했던 이유는 공부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공부만 하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다 보니 공부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 곳만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다른 세상을 바라보았더니 너무나 신기하고 넓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세상에서 살려고 이리저리 궁리하고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봤더니 조금씩 방법이 보였다. 공부 말고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알았더니 공부가 기본이 되어서 더 많은 일을 수월하게 하는 나를 발견했다. 전업주부로만 산 세월은 무경력인 줄 알았는데 전업주부로 지낸 10년의 시간은 모든 일에 발판이 되었다.   


많은 책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들을 본다. 뭐든 하면 길이 생긴단다. 자기 계발 책에서는 새벽 기상을 하면 내 인생에 큰 사건이 생길 것처럼 적어두었다. 그런데 읽으면서 더 막연해진다. 진짜야? 하는 의구심도 든다. 나 또한 그랬다. 책을 읽는 것은 좋은데 의심의 눈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독서만 한다고 인생은 변하지 않는다. 막연했던 그 말들이 내 삶에 실체로 다가오게 하려면 그 문자대로 살아내야 한다. 그것을 깨닫고 실체를 맞이 하면서 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파야 나올지 모르는 금광을 포기하고 빛을 향해 걸어 나오기로 했다. 그 동굴 밖에는 뭐가 있는지 모르고 내가 들어가기 전과 얼마나 다른 세상이 되어있는지 몰라 두렵기도 했지만 그냥 나오기로 결정했다. 나는 돌아섰고 하루 한 걸음씩 걷기 시작했다. 나는 교사가 되지 않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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