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감은 어디에서 피어나는가?
'안전감'이라고 써보니, 감정의 일종이라고 하기에는 느낌 쪽에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감정을 향해 감도측정기를 켰을 때 순식간에 읽히는 어떤 심상이 있었다.
그것을 이름 붙이기를 ‘불안’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반대로서 ‘안전감’을 꺼내본 것이다.
배달음식을 시키기에 앞서, 내가 어떤 불안한 감정에 휩싸이는 것을 발견했다.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어느 과거에 어린 내가 있다.
하교 후 홀로 집을 지키며 느꼈던 외로움. 평화로운 낮 시간대지만 대조되는 감정이 존재함으로써
오히려 불안함이 흔들흔들 가슴팍으로부터 피어오른다.
그러면 나는 안전함을 보장받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 마음에 배달음식을 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내 생명유지를 위해 쓸 돈이 있다.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다… 나는 안전감을 손에 쥘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가짜 안전감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어쩌면 ‘안전감’을 느껴본 경험이 매우 적을지도 모른다.
내가 매번 생명에 위협을 받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 안전한 때에는 외려 안전감을 느낄 만큼 감도를 켜지 않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부르짖는 안전감이라는 게 실존하는지도 의문인 탓에 그렇게 추정해 보는 것이다.
안전감의 부재를 감각적으로 살펴보면,
나를 떨게 만들고, 홀로 부유하게 만들고, 맴돌게 만드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나는 꽤나 많은 시간 동안 내가 스스로를 안전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불안감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날 것의 상태, 날 것의 감정, 날 것의 생각들이
누군가로부터 부여받은 기준을 갖고 보기 좋게 익혀지기를 간절히 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익혀짐이란 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주어져야 했다.
말 그대로 나는 불안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도 그 안에 잠겨 있기를 바랐다.
안전감을 낚아채고 싶다거나 하는 사냥꾼의 마음가짐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오롯이 불안을 느끼고 싶었다.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바쁜 불안이라는 감정을.
불안에 이유가 있어서 불안이 존재하는 거라면 그 이유를 추정하고 싶은 게 아니라
불안이 건네 올 이야기가 듣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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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감은 내가 안전하기에 떠오르는 감정이 아니다. 안전감은 불안과 함께 온다.
정말 안전할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큰 감정 변화 없이 자연스럽게 있게 된다.
그러나 불안이 찾아와 그 감정을 하나씩 읽을 때, 역설적으로 안전감을 발견한다.
d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돌려보내고 자리에 앉는데, 문득 불안이 휩쓸고 들어왔다.
둘이라는 공간은, 가능성이 펼쳐지는 곳이다.
그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내가 읽지 않는 것을 읽는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구역을 만들어낸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풍경의 집이 새로운 무대가 되어 들썩이다가,
혼자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한 풍경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나는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쓸쓸해진다.
감정을 살피며, 처음에는 사회적 동물인 내가 혼자가 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로는 이러한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라고.
그런데 불안을 축으로 삼아 조금 더 감정에 귀를 기울여보니,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d에게 더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드는 아쉬움.
그에게 더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욕망.
나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찾아내며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랬구나. 내가 그런 걸 느꼈구나. 그러면 다음번에는 이렇게 해볼까? d는 또 무엇을 좋아할까?
그렇게 발걸음을 떼는 식이다.
이렇게 보면 안전감은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고 있을 때보다, 무언가를 지키고 있을 때 느껴지는 쪽에 가깝다.
불안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또 다른 이를 지킬 힘을 기른다.
내가 지키고 있는 건 무엇이며, 지킬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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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라는 안전하고, 믿고 의지할만한 담벼락이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아직 무엇이 내 삶의 진리다, 하고 말할 수 없다.
내 삶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세상'의 진리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 진리는 한 편의 글로써, 한 폭의 서사로써 적힐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값비싼 무언가라 내가 접근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일까?
혹은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라 내가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동안 나를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의 여집합이어야 할, 혹은 나를 포함하고 있을,
어쩌면 내 안에 속해있을지도 모르는 이 세상,
내가 매 순간 마주하기에 실존해야 마땅할 진리라는 세계가 궁금했었다.
처음에 진리를 찾을 때는 그곳에 탁 트인 자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안전감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진리라는 이름 아래 안전감을 품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면,
어쩌면 내가 그간 찾던 진리는 초월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적인 것과 닮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