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일상_독서
세수를 하고 책상에 놓여있던 책 한 권을 무심코 집어 들었다. 어제 수업할 때 보여주려고 책꽂이에서 뺐다가 다시 꼽아놓지 않고 그대로 놓여있던 책. <헤어질 결심> 각본집.
책을 든 순간 다시 내려놓지 못하고 한 숨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고 덮었다. 영화 한 편을 글로 읽은 것처럼 영화 상영 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마지막 페이지도 끝났다.
또박또박 적힌 글자들은 영화 속 장면들을 더욱 선명하게 상기시켜 주었고 책을 덮고 나서는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울렁거렸다.
한국에서 개봉 당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 번 더 보고 싶다 생각만 하다가 돌아와 버렸다. 그러다 책을 읽고 다시 보고 싶었다. 아테네 시내 한 허름한 극장에서 상영 중이라는데.
경찰서 신문실에서 마주 앉아 도시락을 먹고 나서 서로 먼저랄 것도 없이 말없이 뒷정리를 하는 손의 움직임과 소리를 보고 들으며 왜 그렇게 슬프고 아련했는지.
죽음과 사랑은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죽음까지도 덤덤할 만큼의 사랑은 여전히 이 세계의 판타지일지도. 잔잔한 인생에서 이런 사랑을 만나는 것은 불행일까 행운일까. 그런 사랑이 다가올 때 나는 모른 척 지나칠까 무서워도 붙잡을까.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다시 <헤어질 결심>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