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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솔은정 Sep 22. 2024

그이의 열매들

 그이 2주기에 



 열매.   


 오세영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썩

한입에 물어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 


 


 

아침에 눈을 떠서 제 얼굴을 가만히 만져봅니다.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어제와 오늘이 같은 날이 아님을 알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이가 천국으로 간 지 오늘로 2년이 되었습니다.

첫 해는 그가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이 수용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멀리 출장을 가 있는 거 같은 생각이 들고,

주말이면 잘 다녀왔다고 문 열고 들어올 것만 같고,

일 마치고 나면 그이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뭐 먹었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하루에도 네다섯 번 전화하던 그의 전화 벨소리도 들리는 것만 같은 마음이

사라지질 않았습니다.

2년이 다 되어가니 요즘에서야 그의 빈자리가 더 많이 느껴집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무게가 얼마나 큰 지 새삼 느껴집니다.

세상에 없다는 부재의 무게는 그리움으로 채우게 됩니다.

못 견디게 그가 보고 싶을 때는 그가 남긴 메모도 보게 되고,

그와 주고받았던 메시지도 보게 됩니다. 

카톡은 다 사라져서 못 보지만,

위챗은 그래도 남아 있어 가끔 보면서 그를 떠올릴 수 있거든요.

그가 없는 이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갑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가고, 꽃이 피고. 지고,

나만 남겨진 거 같은 이 막막함이 사실은 슬프기도 하고 때로는 야속하기도 합니다.

남편을 보낸 저도 있지만. 아빠가 없는 재경과 윤서도 있고,

아들을 잃은 아픔이 가득한 어머니도 계시고,

혼자된 나를 바라보는 친정엄마도 계시고,

다정하게 커피를 내려주던 아주버님의 추억을 가진 동서도 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그를 추억하는 이 자리가 슬픔만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고,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모여 그를 사랑했고,

그에게 사랑받았던 사람들이 나누는

마음의 자리로 만들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우리 집의 울타리였고, 가장이었던 그를 추억하는 말씀을 고르느라 고심했습니다.

어떤 말씀으로 그를 추억하고 함께 할 것인가 고른 성경 말씀은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온다는 성경 말씀입니다.

열매는 그 뿌리의 결과입니다.

내가 어떤 나무인지는 그 열매가 알려줍니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고, 밤나무는 밤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나와 그이의 아이들이, 우리의 좋은 열매로 자라남을 바라기 전에 

내가 어떤 뿌리가 되고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주님을 나의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고, 삶을 꾸려가고 있는가?

주님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는가?

주님의 말씀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가? 


 내 뿌리는 잘 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열매만을  욕심내는 것은 아닌가?

그이가 남겨 준 우리의 열매를 잘 가꿔 그 열매가 다시 씨앗이 되어 또 뿌리를  내리고

좋은 나무가 되어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내 뿌리를 잘 내리는 일이 주님 앞에 제가 할 일입니다.

그이가 남긴 메모에는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이 대부분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그 이야기들을 글로 남겨줘서 제 마음에 위로가 되어줌에 감사합니다.

마음에 무엇으로 가득 채울 것인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무엇에 생각을 두고,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는

툭 내뱉어지는 말로 나타납니다.

내가 하는 말이 바로 나가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빠를 추억할 때,

“사랑을 많이 받았구나! 다정한 아빠였고, 고마운 아빠였지.”라고

말해주길 바랍니다. 

그 마음으로  가득해 말로 나오기를 바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가득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늘 마음에 평온함과 감사함이 가득해,

만나는 이에게 주님의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그이가 우리에게 가장 바라는 일일 테니까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약도 잘 챙겨 먹고 평온하게 삶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가득한 생각이 말로 나오고,

그 말이 나의 행동이 되어 삶이 되어가기를 바라며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재경의 기도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

오늘 아빠의 2주기 추도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빠가 그토록 원하던 내일의 삶을

오늘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제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과 큰 사랑을

아빠를 통해 보여주심에 감사드리고

저도 그렇게 다른 사람을 바라보겠습니다.

아빠의 빈자리를 주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더 채워가서,

가정의 평화를 이루고, 제 삶 또한 주님 보시기에 참 좋다고 느낄 수 있도록

아빠가 보시기에도 웃음 지을 수 있도록

잘 꾸려가겠습니다.

할머니의 건강과 평온을 주님께서 돌봐주시고,

두 할머님들의 건강도 돌보아 주시고,

일상의 평화도 누릴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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