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박물관에서 -자그레브시
재경, 윤서야
엄마가 다녀온 발칸반도, 아드리아해 일주 여행 중에서 재미났던 곳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만난 ‘이별 박물관’이야. 뭘 이런 걸로 박물관을 만들었나?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기발하잖아! 별 거 아닌 걸로 의미를 부여해 예술품으로 만들어낸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과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잖아. 뒤샹의 샘도 그렇고, 몇 년 전 ‘코미디언’이란 이름으로 테이프로 붙인 바나나도 너무 재미있잖아.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가는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까 엄만 이런 종류의 박물관이 너무나 재미나게 느껴졌지.
박물관 입장표도 재미있었어.
다시는(nevermore)를 접으면 영원히(forevermore)가 되는 티켓이 이별 박물관에 딱 어울리는 티켓 같았지. 우리는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지만, 영원히 함께 할 수도 있다는 역설적 감정을 표현한 티켓 같아서 말이야.
엄마는 아빠와 아직 이별을 다 하지 못한 상태인걸 아니까, 아마도 이별 박물관에 더 오고 싶었나 봐.
아! 그리고 안내하는 곳에 어여쁜 직원이 한국말을 엄청 잘해서 깜짝 놀랐어, 어찌 이리 잘하냐 물으니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시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대.
세상에나. 여기에도 한국어 수업이 있다니. 너무나 반갑지 뭐야.
한국어로 수다를 좀 떨고, 안으로 입장해서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을 봤지.
자전거도 있었고, 아주 오래된 핸드폰도 있었고,
거울도 있고, 장례식장에 쓰던 휘장도 있고, 오래 주고받은 편지들도 있었어.
각자의 이별을 담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이야기들이었어. 그 물건들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아픔과 사랑, 그리고 성장의 순간을 담고 있었지.
아주 작은 글씨들이 옆에 붙어 있어서, 우리 일행 중 가장 젊은 사람인 엄마가 사진을 찍어, 쳇 gpt로 해석을 한 뒤 아주 재미나게 이야기를 들려드렸지.
함께 한 선생님들이 재미나해주신 덕에 엄마도 더 열심히 이야기해 드렸더니
“은정샘이 가이드네!”라는 최고의 찬사도 들었지.
엄마가 제일 즐거워하는 일 중 하나지. 박물관, 미술관에서 이야기하기.
거울이야기는 불륜이 주제였어.
첫 번째 이야기가 재미나니 선생님들은 진짜 열심히 들으시는 거야.
원래 막장이야기가 재미난 법이잖아.
긴 거울은 현관에 서 있던 거울인데, 매일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가던 아내가 비춰보던 거울이었어.
그 아내를 용서하지 못한 남자의 마음이 담겨 있었지.
아내에게 거울은 스스로를 바라보고 꾸미는 수단이었지만,
남편에게는 그녀의 떠남과 배신을 상기시키는 상징이었던 거야.
“어머나! 세상에!”
한국말로 감탄사가 박물관에 떠돌아서 우린 조용히 보려고 노력했지.
엄마가 눈물이 왈칵 나서 읽지 못했던 곳은 핸드폰이 전시된 곳이었어.
연인에게서 선물 받은 핸드폰은 사랑, 격려, 희망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통로였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부터 가장 힘든 대화까지 전해주고 전화벨 소리가 그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였대.
그러던 어느 날 그 휴대폰은 조용해졌고, 메시지는 멈춰버렸지.
이 휴대폰은 이제 연결의 상징이 아니라 상실의 상징이 되었고,
모든 소리 중에서 이제는 침묵의 소리만이 남았다고 표현이 되어 있었어,
엄마 책상 서랍에 들어 있는 아빠의 검은 휴대폰이 생각났지.
가끔 한 번씩 전원을 켜고 그 안에 녹음되어 있는 아빠 목소리를 들어볼 때가 있는 엄마로선 그 이야기를 읽다가 눈물이 났거든.
그래도 희망적이었던 이야기는 빨간 자전거였어.
빨간 도로용 자전거를 남겨두고 떠난 남자가 생각나서 그 자전거를 타보았고, 우울함을 날려버리려고 달렸는데, 자유로운 독신이 된 여자는 새로운 자전거를 샀대. 오래된 잔해 같은 자전거는 이별박물관에 보내버렸고 말이야.
새로운 자전거를 탄 그 여자를 마음으로 응원했지.
엄마 사춘기 시절에는 버리지 못한 물건들로 가득했어.
친구들이 준 작은 쪽지하나도 안 버리고 다 모아놓아 두었거든.
일기장, 편지, 쪽지, 그리고 여러 물건들.
이별 박물관을 보면서, 물건을 모아 둔 게 아니라, 물건에 깃든 자신의 추억과 감정을 보관하고 버리지 못하는 거라 생각이 들더라. 엄마도 그런 물건 많지.(정리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각자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날들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구나!
그저 핸드폰이고, 그저 거울이고. 그저 빨간 자전거일 뿐인데.
그 명사 앞에 많은 형용사와 부사로 의미를 부여한 건 나 자신이라는 걸 말이야.
우리도 매일같이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무심히 흘려보내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 삶의 작은 조각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 조각들이 모여서 너희와 나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거지!
“내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라는 고민을 엄마는 오래 했어.
사춘기 시절의 내 화두였어.
“삶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에 반발했거든.
사람이 의미를 찾는 욕망과 의미가 없는 세계 사이의 충돌을 보게 된 거지.
그래도 위로가 되었던 말은
'삶 그 자체가 이미 의미가 있다'라고 한 조셉 켐벨의 말이었어.
우리는 종종 생각의 덫에 빠져 사실과 생각을 혼동할 때가 많아.
하지만 사실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고,
생각은 그 사실에 우리가 덧붙이는 해석일 뿐이야.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그저 평범하게 느껴질지라도
그 모든 순간이 모여 나의 인생을 더 깊고 넓게 만들어 주는 걸 알아차렸거든.
입구에 있던 책의 이 문구에 고개를 끄덕였지./삶의 이야기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그 깊이와 넓이는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니까.
그러니 너희가 때때로 생각의 무게에 짓눌릴 때,
잠시 멈춰서 사실 그대로의 삶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어.
그 순간에 너희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
내가 삶에 어떤 해석을 내리고 있는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삶을 삶 그 자체로 바라보고 있는가?
오늘 하루, 너희가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 너희가 선택한 긍정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 의미는 온전하게 재경과 윤서의 것이니까.
그 어떤 물건보다도 소중한 너희의 인생이 찬란히 빛나기를,
그리고 그 빛이 너희 마음 깊이 스며들기를 진심으로 바라.
엄마도 물건을 조금씩 정리해 볼게.
때로는 힘들고 지치는 날도 있겠지만,
그런 순간에도 너희들 옆에 너희가 부여한 멋진 의미의 순간들로 위로가 될 거야.
엄마와 너희가 함께한 기억들,
나누었던 웃음과 눈물은 언제나 너희 곁에 있을 거야.
엄마도 그런 기억들이 있어서 즐겁고 소중한 거지. 물건이 소중한 건 아니니까.
물건은 물건일 뿐,
생각은 생각일 뿐,
사실의 세계에서 내가 붙인 이름과 의미에서 나만의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잖아.
이별 박물관에서 이별의 의미가 담긴 물건들을 보고 나오는데
결국 이별의 끝은 또 새로운 시작임을 느끼고 나왔지.
엄마의 시작은, 엄마의 길을 가보는 것
너희가 독립하고 나면 또 새로운 시작이 시작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