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드리아해와 호카곶의 차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꿈꾸며

by 해솔은정

재경, 윤서야.

가끔 바다를 보러 가고 싶을 때가 있지?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 소리 내서 울고 싶을 때. 외로울 때,

그리고 내가 한없이 초라해 보일 때 엄마는 가끔 바다가 보고 싶어져.

엄마 고향이 목포라 바다를 많이 보고 자랐을 거 같지만, 웃기게도 바다를 보면서 자라지는 않았어.

시내 한복판에 살았으니까.


대학 입학하던 날, 서울 사는 친구가 나에게

“와! 너네 집 목포면 바다 실컷 보겠구나!” 했을 때 좀 어이없었어.

“목포도 시여! 우리도 바다 보려면 버스 타고 가야 되어야! 광화문에 버스 타고 이순신장군 보러 가는 거랑 똑같어야!"

맞지! 엄마도 바다 보러 가라면 버스 타고, 차 타고 좀 가야 볼 수 있는 바다라 거의 본 적 없이 살았어.

하지만 바다 내음은 알아. 갯내음. 짠내.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내음은 바로 알지.

시각보다 후각이 더 먼저니까. 가끔 바다내음이 그립지.



크로아티아 여행을 갔는데 가서 보니 아드리아해 일주 여행이었어.

이름도 좀 생소한 아드리아해를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서 출발해 위로 쭈우욱 올라가면서 실컷 바다를 봤지. 이탈리아에서 보던 아말피 해변, 소렌토랑도 비슷해 보이더라.

두브로브니크, 스톤, 리예카, 피란, 로빈. 이름은 다르지만 생긴 모습들은 다들 비슷해.

두브로브니크에서 성벽 투어를 했는데 성벽 위에 길이 있어서 거기를 걷는 거야. 우리 진주성을 걷고, 고창읍성을 걷고 하는 그런 거지.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아름답더라. 물빛도 어여쁘고, 바람도 시원하고, 하지만 이 성벽을 만들고 지키던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바다가 아니라 언젠가 자신들을 쳐들어오질도 모르는 길이었을 거 같아.


너희들과 함께했던 대서양의 끝, 포르투갈의 호카곶에서 본 바다는 망망대해였지.

아드리아해의 바다와 대서양의 바다는 참 다르구나 생각했어.

엄마가 가본 크로아티아의 도시들은 대부분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어.

두브로브니크의 견고한 돌벽은 바다를 내려다보며 마치 오래된 수호자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더라.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침략자들을 막기 위해 쌓은 그 성벽은 수 세기 동안 그들의 집과 가족을 보호해 주었겠지.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높은 벽 너머로 파란 아드리아해가 가끔씩 얼굴을 내밀곤 해서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지. 성벽 위에 서면 그 바다의 끝이 어렴풋이 보이고, 그 끝에는 이탈리아 반도가 보여.

먼 곳을 향해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언젠가 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을 거 같아.

저 멀리 보이는 곳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전에, 그곳에서 언제 여기로 쳐들어올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성벽을 높이 쌓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포르투갈의 호카곶에 섰을 때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지.

유럽의 끝, 땅의 끝이라 불리는 그곳은 거친 바람과 함께 끝없이 펼쳐진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었잖아. 기억나? 바람이 너무너무 불어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고 너무 추웠지. 여름이었는데도 말이야.

시야를 가로막는 성벽도, 방어를 위한 높은 담장도 없고, 그저 드넓은 바다와 하늘, 그리고 멀리 보이지 않는 수평선 뿐이었던 기억이 있어.

9살이었던 윤서가 엄마에게

“엄마. 볼 것도 없는데, 왜 여기까지 와요?” 했지.

“우린 대동여지도 김정호 후예니까. 세상의 끝에 와봐야지!” 했었어. 그냥 가보고 싶어서 갔는데. 놀랍게도 한국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많이도 와서 깜짝 놀랐지.

아마 그곳에 서 있는 사람들은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을지도 몰라.

콜럼버스도, 마젤란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했겠지.

그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이들은 아드리아해가 아니라 대서양에서 새로운 세계로 떠났으니까 말이야.

그들의 눈에는 성벽이 필요 없고, 새로운 곳, 새로운 세계, 새로운 길이 보였을 거야.

보이지 않았지만 상상하고 꿈꿨을 거야.

크로아티아의 문화에 대해 떠올리려고 하면 탁! 하고 생각하는 게 별로 없었어,.

축구선수 모드리치 정도?

그리고 발칸반도는 늘 전쟁 중이었던 기억이 더 많아서 내 머릿속에 저장된 발칸반도는 난장판의 이미지가 있는데, 막상 가보니 아드리아해의 모습이 너무나 고요하고 조용해 상반된 이미지에 놀랐어. 잔잔하고, 조용한 이 바다는 태풍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호수 같은 바다더라.

바닷가 근처라 구경 간 시장들 안에 해산물 시장이 많아서 회도 많이 먹을 거 같은데. 아드리아해 물고기는 맛이 없대. 우리나라처럼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지역의 생선이 훨씬 맛나다고 그러더라고.

거친 바다에서 자란 생선은 강한 조류와 파도를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살이 단단하고, 지방이 더 축적되어 진한 맛을 내니까 그런가?

그래도 엄마 입에는 거기서 먹은 농어필렛, 대구 튀김. 문어구이는 다 맛났어!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은 다 맛나.

(그 지역의 문화를 느끼게 해주는 그 지역만의 맥주와 음식은 꼭 맛보고 싶어.)


재경, 윤서야.

때로는 우리의 삶이 크로아티아의 성벽 안에 갇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거야.

두려움과 불안, 낯선 세상에 대한 걱정이 너희를 둘러싸고 있겠지.

그래서 태풍 한 번 불지 않을 저 바다 건너 다른 세상을 꿈꾸지 못할지도 몰라.

언젠가 저 멀리서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적들을 걱정하면서 성벽을 높이 쌓고 바다를 내다보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지. 막연한 두려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들.

그래서 현재에 안주하고 싶고, 변하고 싶지 않고, 이대로 있고 싶어 하는 마음들.


특히 10대와 20대에는 그 불안이 좀 더 클지 몰라.

아드리아해 바다처럼 잔잔하고, 태풍 한 번 없고, 수온도 일정한 그 바다는

매일 보면 지루할 거 같고 조용해서 참 좋겠다 싶은데,

결국 그 지루함의 바다를 통해 적들이 들어오더라.

그래서 벽을 높이 쌓아 올려서 적을 막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그 안에 갇혀 버릴지도 몰라.

엄마는 너희가 포르투갈의 호카곶처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두려움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꿈꾸길 바라.

신대륙을 꿈꾸던 그들처럼 너희만의 길을 찾아 나서길 바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두려울지라도 나아가보기를.

망망대해처럼 상상도 안 될 때가 있겠지만,

그래도 멀리 꿈꿔보렴.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처럼,

너희의 가능성도 무한하니까.

호카곶에서 본 가장 멋진 풍경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등대였지.

눈에 보이는 이탈리아 반도를 볼 수 있는 아드리아해도 예쁘지만.

그래도 내 삶을 꿈꾼다면,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멋진 세계를 꿈꿀 수 있는 대서양의 바다를 더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아직 꿈꿀 수 있는 나이인가 봐 엄마도.

너희가 엄마에게서 떠나는 독립을 꿈꾸듯이

엄마도 엄마의 독립을 꿈꾸고 있어.


2025년 5월 19일

사랑을 담아, 엄마가.


덧붙이는 글: 카보 다 로카. 포르투갈어 발음으로는 “Cabo da Roca” 인데, 스페인어로는 호카라 부른대.

엄만 호카곶이 익숙해서 호카라 불렀는데 까보 다 로카라 부르는게 맞을 듯해.

keyword
이전 24화삶의 의미는 내가 창조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