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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첫 번째 조건-혼자 밥 해 먹기

by 해솔은정

“엄마, 오늘도 감자전이에요? "

오늘 점심에 김치찌개에 밥 한 그릇 다 먹고, 윤서가 예쁘게 만들어준 계란프라이 한 개도 홀라당 다 먹고 배가 덜 차서 어제 채를 썰어 넣어두었던 감자를 꺼내서 감자전을 또 부쳤지.

요즘 감자가 제철인가 봐.

감자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하시는 분께 감자 한 상자를 사겠다고 부탁드려 집으로 배달 온 거 보니, 한 상자가 제법 많더라고.

이거 언제 다 먹나? 구워 먹고, 쪄먹고, 부쳐먹고, 모든 요리에 감자가 다 들어가야겠구나 생각했어.


엄마는 재료를 한꺼번에 구입하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농사짓는 분들에게 연락 오면,

그 마음을 아니까 거절하기가 쉽지 않아서 사게 되네.

덕분에 여기저기 나눌 수도 있고 제철 음식을 많이 먹을 수도 있는 걸로 좋아하지 뭐!

며칠 동안 감자전을 부쳐먹었지? 가늘게 채를 쳐서 감자전을 부치고 그 위에 피자치즈를 뿌려서 먹기도 하고,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강원도식으로 쫀득하게 부쳐먹기도 하고, 감자 샐러드도 해서 먹고, 에어프라이에 웨지 감자로 먹기도 하고, 같은 감자인데 요리 방법이 바뀌면 맛도 바뀌니 신기하지?

엄마는 감자전을 보면 외할아버지 생각이 나.

외할아버지는 부엌에 들어오셔서 음식을 하지는 않으셨어. 하지만 유일하게 할아버지가 해준 음식으로 기억나는 게 두 가지 있는데 하나가 감자전이고, 하나는 오징어튀김이야.

지금의 먹성 좋은 엄마 모습을 보면 너네들이 상상도 하기 힘들 테지만, 엄마 어렸을 때는 편식쟁이였어.

야채는 좋아하지 않았고, 김치도 좋아하지 않았는데. 감자보다는 고구마를 더 좋아했고, 찐 감자도 잘 안 먹었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은 계란프라이와 김이었어.

외할아버지가 도시락을 싸주신 날이 있어.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부부싸움을 하신 거 같아.

엄마의 외할아버지가 환갑이라면서 엄마의 엄마는 나의 오빠와 남동생만 데리고 외가에 가신 거야. 엄마 껌딱지로 소문난 나로선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지. 엄마가 없는 집에 아빠와 둘이서 있는데 난 너무나 슬픈 거야.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왜 대체 나만 남겨두고 갔을까? 나라면 오빠와 남동생을 놔두고 갔을 텐데. 그러면 훠얼씬 아빠가 고통스러울 텐데. 나같이 착한 딸을 안 데려가고 왜 말썽쟁이인 두 남자를 데리고 갔을까? 엄마는 외할머니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와 슬픔으로 말도 하지 않고 있었거든. 지금 돌이켜보면, 외할머니 나름으로 외할아버지를 완벽하게 골탕 먹이려고 하진 않으신 거 같아.

나를 남겨두고 가는 게 두 아들을 남겨두고 가는 것보다 외할아버지가 덜 힘들다는 걸 아셨을 테니 말이야.

훌쩍이는 나를 데리고 외할아버지는 시장에 가셨지.

오징어도 사고, 감자도 사셨을 테지.

사실 난 너무 슬퍼서 뭐 샀는지도 관심이 없고 외할아버지 손만 잡고 시장에 따라간 기억은 있어.

시장에 다녀온 할아버지는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마당에 곤로를 켜놓고 기름을 붓고 오징어를 튀겨주신다고 하는 거야. 기름이 튀면 위험하다고 마루에서 내려오지 말고 지켜보라고 하셔서 마루에 엎드려서 할아버지 요리하는 걸 지켜봤지.

아마 외할아버지는 그때까지도 요리라고는 해본 적이 없으셨을지도 몰라.

기름이 튀는 건지, 비가 튀는 건지 모르는 소리를 마루에 앉아서 들으면서 외할아버지가 튀기는 오징어 튀김을 슬프게 바라보면서 기다렸지. 오징어 튀김을 넣는데 사방으로 튀어서

”여기 오지 마라 절대 오지 마! “ 외치던 외할아버지 목소리도 기억하지.

비 오는 소리인지. 기름이 튀는 소리인지. 외할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인지. 여러 소리들과 함께 아들들만 챙겨서 외가에 가버린 엄마에게 버림받은 기분은 오징어 튀김으로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던 기억으로 남았던 거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없어. 그냥 슬펐다는 감정만 남아있는 장면이야.

그리고 그 비 오는 날 외할아버지는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전을 부쳐주시겠다는 거야.

난 먹어본 적이 없는 요리 같아서 손이 가지 않았고, 내 고집에 아마 안 먹었을 거야.

엄마 어릴 때 화가 나면 일단 밥을 안 먹는 걸로 시위했거든.

"밥 안 먹어!"가 최고의 반항이었으니까.


다음 날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열었는데 시커먼 전이 반찬으로 들어있었어.

너무 놀라서 바로 뚜껑을 닫고 싶었지.

진짜 못생기고 시커먼 전이 도시락에 들어있어 친구들이 볼까 봐 창피했거든,

그런데 엄마 친구 하나가

“그게 뭐야? 나 먹어봐도 돼?”라고 물어보는 거야.

“어어.. 그래.”라고 건네주니

“와. 쫄깃거려, 진짜 맛있다. 나 다 먹어도 돼?”

난 너무 놀랐지.

'못생기고 시커먼 이 감자전이 맛있다고?'

속으로 다행이었지. 도시락에 담긴 반찬을 다 비우고 갈 수 있었으니까.

그때는 음식을 버리면 큰 일 나는 줄 알았거든.

(지금도 약간 음식을 남기면 죄짓는 기분,, 그래서, 엄마가 안 남기고 다 먹나 봐)

갈아놓거나 썰어놓은 감자는 시커멓게 갈변한다는 걸 외할아버지도 몰랐고, 나도 몰랐지.

그냥 못생기고 시커먼 이 음식을 나보고 왜 먹으라는 건가? 이 생각만 했지.

오늘처럼 냉장고에서 꺼낸 새카맣게 변한 감자반죽을 보면 요리라고는 아무것도 모르셨던

외할아버지 감자전이 생각나고, 비 오는 날 곤로에서 튀겨지던 오징어 튀김이 생각나.

그리고 딸과 남편만 놔두고 간 외할머니의 젊은 시절도 생각나고,

딸과 둘이서 끼니를 챙겨야 해서 막막했을 외할아버지의 젊은 시절도 생각나.

비 오는 날, 처마 밑 마당으로 곤로를 끌고 나와 기름에 물이 떨어져 깜짝 놀랐을 외할아버지의 그때 목소리를 생각하면 그립지. 할아버지 혼자서 처음으로 밥을 해보셨던 시간 아니었을까?

사랑이었구나 ~ 외할아버지의 청춘이었구나~


언젠가 엄마가 물은 적이 있지?

“너희 둘은 엄마를 떠올리면 무슨 음식이 떠올라?”

“우리는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청국장 이런 거 아니고, 야채와 고기볶음. 어디에도 없는 요리. 엄마가 우리 야채 먹이려고 한 그 요리.”

“하하하하.. 맞지. 굴소스 없이는 좀 힘든 요리.”

“태국과 베트남요리 먹다 보면 , 어? 울 엄마 요리 같다.라고 생각해요.”


시커먼 감자를 갈아 도시락 싸주신 외할아버지의 사랑이

야채를 많이 먹여야겠다는 이 엄마의 사랑으로 내려왔다고 생각해 주렴,

덕분에 재경이와 윤서는 어릴 때부터 요리 고수가 되어 어디서든 재료만 주면

요리를 척척 해내잖니.

최고의 독립요소는 혼자 밥 해 먹기인데

우리 셋은 그거 하나는 완벽 마스터다. 그렇지?

오늘 저녁에 윤서가 끓여준 냉라면- 맛있었어. 낮에 윤서가 해준 토마토샤베트도 맛났는데!

윤서나 재경이는 독립해도 되겠다. 먹는 걸로는 완벽해

그리고 감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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