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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리츄얼

by 해솔은정

재경, 윤서야.

엄마가 요즘 아침을 같이 먹자고 하지?

잠이 더 고픈 너희들에게 아침을 먹자고 하니 싫어할 거 같았는데,

그래도 한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 맛나게 먹을 때 엄마는 고맙고 기뻐.


재경이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새벽 6시에 눈도 못 뜨는데 아침을 같이 먹었지.

네 가족이 함께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시간은 아침밖에 없었으니까.

엄마는 아침에 고기도 굽고, 파스타도 볶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먹어가면서,

남들 저녁에 먹는 걸 우린 아침에 먹었지.

그러다 아빠 돌아가시게 되면서, 엄마는 간헐적 단식을 한다는 핑계로,

너희 둘은 밥보다 잠이 더 좋다는 말에 엄마는 아침을 안 하게 되었지.

윤서가 야간자율학습까지 하고 오니, 이제 진짜 엄마는 거의 혼자 밥을 먹는 때가 훨씬 더 많지.

주말에는 주말대로 너희가 집에 없으니까.

밥 먹을 때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도 하고, 하루 일과도 서로 공유하는데. 밥을 같이 먹을 시간이 없으니

안 되겠다 싶어서, 엄마가 다시 아침을 차리게 된 거야.

아침이라도 같이 먹고, 얼굴 봐야겠다 싶어서.

엄마가 건강한 하루를 시작해야 우리 딸들도 건강한 삶으로 채워지겠구나 싶더라.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만들어가니까.

강요는 못하겠어서, 되도록 아침에 맛난 음식을 차리려고 하다 보니,

너희들도 일어나서 식탁에 앉아 있더구나.

함께 밥을 먹게 되니 엄마는 좋더라.

엄마에게는 너네와 함께 먹는 아침이 의식이고, 나의 일상 리추얼이야.

의식에는 언제나 음식이 놓이게 되잖아.

관혼상제만 의식이 아니라, 하루 일과도 의식이야.


리추얼(ritual)이란 말은 우리말로. 의식. 예식이란 뜻이 있지.

종교적이거나 전통적인 정해진 절차에 따라 행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불교의 제례 의식이나 결혼식, 성찬식 등 이 모든 걸 리추얼이라 불러. 이 경우 리추얼은 형식성과 반복성이 강조돼.

최근에는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 있는 습관이나 자기 관리의 일환으로 반복하는 행위를 리추얼이라고도 한단다. 예를 들자면, 아침에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고 명상하는 것, 자기 전에 일기를 쓴다는 것.

이 경우의 리추얼은 정신적 안정, 습관화, 집중력 향상 등의 효과를 위해 사용되곤 하지.

국가의 리추얼도 있고- 국경일. 명절 등.

가문의 리추얼도 있고- 집 안의 제사, 생일 챙기기. 명절 같이 보내기.

개인의 리추얼도 있지.

리추얼이라고 해서 근사하고, 거창한 게 아니야.

반복되는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나의 의식과 예식이 되는 거지.

나의 습관에 의미를 부여하면 가치가 생기고,

나의 삶에 태도가 만들어지고,

그 태도를 통해 언어가 나오고,

그 언어를 통해 다시 나의 생각이 창조되고,

그 생각이 내 삶으로 나타나는 것.

이게 리추얼의 힘인 거 같아.

어릴 땐 삶이 뭐 거창한 건 줄 알았지.

그런데, 엄마도 아프고 나서야 깨달은 건 "삶은 일상이 모여서 이루어진다"는 거야.

고난의 순간에 나를 붙잡는 건 나의 리추얼이더라. 나의 습관들 말이야.

작년까지 매일 일기를 쓰고, 맨발 걷기를 하고, 책을 읽고, 나의 리추얼로 만들기 위해 버둥거리던 시절에

큰 사기사건을 한 번 겪고 나니 모든 리추얼이 와르르 사라져 버렸지.

잠도 못 자고, 밥도 들어가지 않을 때, 그나마 버틴 건 너희 둘이 있어서였지.

그리고 또 하나 그전에 만들어왔던 나의 습관들이 나를 견디게 했더라.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운동을 했던 나의 리추얼들이 그래도 헛되지 않게 남아서 나를 잘 붙잡고 오늘을 살아 지금까지 버티고 버텨 오게 한 거지.

고통스러운 순간들, 고난이라고 이름 붙인 사건들 앞에서 나의 태도를 지켜준 건 그래도 리추얼이 있어서였음을 알고 나니, 더더욱 습관을, 잘 형성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엄마가 너희에게 부탁하는 습관을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의식들이란다.

집에 돌아오면, 인사할 것- 집을 나서고 들어설 때 인사하기.

돌아와 현관에서 신발 가지런히 정리하고 손 씻기.

물건들은 쓰고 나면 제자리에 두고 정리하기. 안 쓰는 물건들은 잘 버리기.

쓰레기 쌓아두지 않고 그때 그때 버리기.

설거지 나오면 바로 치우기.

빨래 개키고 바로 정리하기.

밥 먹기 전에 감사기도 하고, 먹고 나서 감사 인사 하기.

옷 갈아입고 바로 잘 정리해서 분류하기.

뭐 세어보려니 한 두 개가 아니게, 리추얼이 많지?

이런 반복되는 행동들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나만의 품위와 나만의 분위기와 나만의 멋이 생겨나.

차곡차곡 쌓여 내가 되어갈 테니 말이야.


이런 말을 내가 백 마디 말로 하는 것보다 매일매일 엄마가 행동과 태도로 나타내는 게 낫지?

잔소리가 나오려고 할 때, 내 몸을 움직이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엄마도 알아차리고 있어.

그래도 재경과 윤서는 염치가 있어서,

"엄마. 제가 할게요."라고 말할 때가 더 많아서 고맙지.


엄마가 만들어가는 일상의 리추얼.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 켜고, 하루라는 시간이 내게 온 것에 대한 감사.

따뜻한 소금물 마시면서 내 몸이 깨어남에 감사.

아침을 함께 먹을 너희 둘이 있음에 감사하고 아침 준비하는 엄마의 리추얼은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주지.


너희 둘의 소중한 삶이 더 가치 있어지도록

너희 둘만의 리추얼을 만들어가기를 바라.

독립하기 전에 더 단단히 만들어가 보자.

엄마부터 잘하고 있으면 되겠지?

브런치에 매주 월요일 글 올리는 거, 엄마의 주간 리추얼 중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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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은 아침들-더 괜찮은 메뉴도 생각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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