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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걷는 꽃게엄마

필라테스로 똑바로 걸어보는 중

by 해솔은정

엄마가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벌써 4년이 넘었네.

2021년도부터 시작했으니까.

원래도 어깨가 좋지 않아 잘 올리지 못했는데,

가슴 수술을 두 번 하고 났더니 어깨를 뒤로 돌리기가 힘들었지.

아빠와 함께 같이 입원했던 요양병원에서 도수치료를 받는데, 거기 선생님이 권유해 주셨어.


"도수치료는 남이 해주는 거라 한계가 있지만, 필라테스는 스스로 자기가 몸을 움직이는 거라서,

더 효과가 있으실 거예요. 근육이 움직일 수 있도록 꾸준히 해보세요."


맞는 말이지.

남이 시켜서, 남이 해줘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움직일 때 훨씬 효과가 있다는 그 말에,

전주에 내려오자마자 필라테스에 등록하고 다니기 시작했어.


필라테스에서 그룹수업을 하는데 이건 대체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근육이름도 모르겠고, 꼬리뼈를 말라는 말도, 가슴을 닫으라는 말도, 어찌할 줄 몰라서 2년을 눈치 보고 다니다가, 개인레슨을 50번쯤 받고서야 그 용어를 이해하게 되었어.

엄마는 무얼 하나를 배울 때 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진도가 잘 안 나가서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이 크지. 덕분에 돈과 시간이 좀 들었지만. 몸의 구조도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고, 내 새끼손가락 근육하나도 모든 근육과 다 연결되어 있음에 경이롭고 고마운 신체를 알게 되었어.


필라테스를 하면서 느낀 것들 중 하나는 몸과 마음은 정말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거야.

나의 둔하디 둔한 중둔근과 대둔근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내 마음과 정신을 그곳에 함께 두어야 하고,

잠시 잠깐이라도 딴생각을 하게 되면,

선생님이 설명하는 큐잉을 따라가지 못해

근육의 움직임도 마음도 다 놓쳐버려서,

내가 얼마나 산만하고 집중이 안되는지 필라테스하면서도 알아차려.

그리고 또 하나!

일상의 자세와 습관이 내 몸을 만들어 왔고,

내 마음상태도 만들어왔음을 알아차리게 되지.

필라테스하면서 내가 바르게 서 있는지 자주 인지하고 자세를 고치게 되고,

앉아 있을 때도, 자주 허리를 펴고 어깨를 펴려고 노력해.

4년이 넘어가니 그렇게 굽어있던 등도 펴지고,

말린 어깨도 그래도 조금은 펴진 느낌이 들어. 아직도 멀었지만 말이야.

그래도 어깨를 위로 올릴 수 있고, 팔을 꺾어 뒤로 돌릴 수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옆으로 걷는 엄마 꽃게가 아기 꽃게들에게 똑바로 걷기를 바라지만,

자신도 옆으로 걷는 것을 못 고치는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늘 말로만 하는 거 같았어.

재경과 윤서에게

"허리 펴. 어깨도 펴고."

이런 말을 백 마디 하는 것보다

엄마가 어깨를 쫘악 펴고, 허리를 펴고,

짝다리 안 짚고, 고개도 거북목인가 살피는 게 낫지..



엄마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가 만날 엄마보고

" 허리 좀 펴라. 어깨 좀 펴라. 고개 들어라." 하셨는데

놀랍게도 난 외할아버지 걸음걸이와 자세가 할아버지와 데칼코마니였거든..

"서울에 모델학원 같은데 다니면 어떻겠냐?"라고 하셨지만. 그런 건 생각해보지도 않다가

아프고 나서야 바른 자세, 일상의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거지.


엄마가 긴 이야기를 한 이유가 뭘까?

맞아.

바른 자세.

일상에서 올바르게 서 있고, 올바르게 앉아 있으라고.


곧은 몸에 곧은 마음도 생기니까.

요즘 우리 딸 둘 다 공부하느라 책상에 엎드려 구부정한 자세를 보니,

엄마 마음이 좀 아팠거든.(구부정한 정도로 성적을 매긴다면 전교 1등쯤은 되어야 할 건데 )


엄마의 자세를 다시 너희에게서 보게 되니,

나라도 열심히 어깨를 펴고 등도 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 필라테스를 매일 안 빼고 다니고 있지.

남들 보기에는 여전히 굽은 등이지만....

그래도 딸들이 우리 엄마는 살면서 운동은 안 빼먹고 하는 걸 알고 따라 할 거라 생각해.

부모의 말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더 배울 테니 말이야.

어깨도 펴고,

등도 펴고,

얼굴도 펴고.

좌악 다 펴보자..

그러다 보면 엄마 주머니 사정도 좌아악 펴질 거야.^^

엄마..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가 되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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