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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도 술처럼, 정성으로 빚을 것

by 해솔은정

2025년 7월 21일


재경, 윤서야.


엄마가 요즘 여름 방학 동안 전통술박물관에서 소믈리에 과정을 듣고 있는 거 알고 있어?
토요일 아침이면 늘 학교 가느라 분주했는데, 방학하자마자 이 강좌가 열려서 얼른 신청했지.


윤서가 예전에 유럽 여행 다니며 엄마에게 한 말, 기억나?
“우리 엄마는 맥주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슈퍼마켓 와인·맥주 코너 가면 엄청 행복해 보여요. 저도 과자 코너 가면 신나거든요. 엄마도 그러신가 봐요.”
그때 엄마, 웃었지. 맞아, 엄만 보지 못한 것, 새로 나온 걸 구경하는 걸 좋아해.


술병에 그려진 그림, 글자, 색깔… 그걸 보면서 ‘이 술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떤 맛일까?’ 상상하는 게 재밌거든. 지금도 편의점에 가게 되면 진지하게 구경하지.
재료끼리 만나서 새로운 맛이 나는 게 신기하고, 요리처럼 같은 재료라도 누가 만들고 어디서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궁금해.


음… 솔직히 말하면, 엄마는 술 자체도 좋아해.
그 향기, 맛, 색깔, 그리고 마신 뒤에 몸에 퍼지는 나른한 기분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함께 마시는 사람들과 분위기가 제일 중요하지.


와인을 배우면서 알게 된 게 있어.
토양과 품종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와인을 둘러싼 다양한 문화와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더 좋았던 건, 그 과정에서 엄마 자신을 더 알게 됐다는 거야.


원래 레드보단 화이트가 좋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4주 동안 시음해 보니 확실히 알겠더라.
엄마는 화이트 와인을 좋아해.
그 덕분에 내 취향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야. 사실 엄마도 엄마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몰랐거든.


요즘은 사케를 배우고 있어.
사케도 알고 보니 매력적인 술이고, 그 문화도 참 흥미롭더라.

강사님 말씀이, 일본 니카타현에서는 매년 2~3월 사케 축제가 열리는데, 온 도시가 술 향기에 취해 들떠 있다고 하시더라.
그 얘길 듣는데…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 온 도시가 술 익는 냄새로 가득하다니!


와인이 토양과 품종이라면, 사케는 쌀, 물맛, 누룩, 효모도 중요하지만 결국 ‘누가 만들었느냐’가 결정적이래.
몇백 년 된 양조장이 흔하다니, 그 전통을 잇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어.
게다가 일본은 사람들의 입맛 데이터를 분석해서 세계인의 취향에 맞춘 술을 만든다고 하더라.

작년에 세계유네스코 문화에 등재되었대..


지난주에 마신 사케 중 하나는 스파클링 같아서, 눈 감고 마시면 샴페인인 줄 알 정도였어.
일본술이라고 괜히 거리 두고 있었는데, 배우러 온 분들 중엔 전통주를 직접 빚는 분들도 많았어.
그들의 자부심이 대단해서 존경스러웠지.


엄마는 어딜 가든 사람들의 ‘태도’를 보게 돼.
사케를 만드는 영상을 보는데, 밥을 찌고, 누룩을 섞는 그 정성에 숙연해질 정도였어.


엄마는 늘 제일 앞자리에서 듣고, 보고, 배우려고 노력해.
왜냐하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거든.
‘내가 우리 재경이랑 윤서에게 바라는 걸, 지금 내가 하고 있으면 되겠지?’ 하고 말이야.


쌀과 물이 누군가를 만나고, 시간이 흘러 발효되어 좋은 술이 되어
하늘에 올리는 제 사주가 되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고 위로하는 술이 되는 것처럼.


삶도 그렇더라.
정성이 들어가고, 시간이 스며들고,
자기만의 비법이 담길 때 비로소 깊어지는 거야.


엄마에게 너희가 그렇단다.
시간이 흘러 성숙해지고,
좋은 사람이 되고,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사회의 멋진 일원이 되어가는 모습.
그건 마치 사케 장인의 손길과 시간이 작용하는 것 같아.


엄마가 술과 문화를 배우면서 깨달은 게 있어.

삶도 술처럼 ‘정성’으로 빚어야 한다는 거야.


쌀이 물을 만나고, 시간과 온기, 사람의 손길이 더해져야 좋은 술이 되듯,
삶도 어떻게 마주하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향과 맛을 내는 것 같아.


엄마는 너희가 엄마에게서 독립하길 바라.
그건 단순히 엄마 곁을 떠나는 게 아니라,
어떤 역할이든 그 자리를 혼동하지 않고,
그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하되
결코 너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엄마도 그러려고 해.
엄마라는 역할을 잘 감당하되,
‘엄마’라는 이름에만 머무르지 않고,
늘 나답게 살아가려고 해.


그래서 오늘도,
엄마는 내 삶을 정성스럽게 빚는 중이야.

그리고 너희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바로 그런 엄마의 모습이야.

삶의 태도를 너희에게 보여주기 위해

오히려 엄마가 올바르게 살아가고 싶어 지니

귀한 존재들이지. 우리 딸들이.


사랑한다.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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