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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대하는 태도-

유전이 아니라 학습이겠지?

by 해솔은정

재경, 윤서야.

얼마 전, 엄마는 갈등관리 교육을 들었단다.
교육 시작 부분에서 강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

“갈등은 해결이 아니라, 관리입니다.”

그 한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더라.
그래, 우리는 늘 뭔가를 해결하려고만 했지.
그 사이사이엔 ‘잘 관리한다’는 태도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

강의 시간에는 갈등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눴어.
경쟁, 수용, 회피, 타협, 협력.
엄마는 예상대로 수용이 가장 높고, 그다음은 회피.
경쟁은 바닥. 타협과 협력은 동점이더라.

경쟁이나 회피는 왠지 부정적으로 들리는 말인데,

배우고 나니 이 모든 유형이 우리 삶에 필요한 태도라는 걸 알게 되었어.

상황에 따라 이 다섯 가지 모드 모두 필요한 태도더라.

회피는 내가 어찌할 수 없을 때, 기다릴 줄 아는 지연의 태도이기도 하고,
경쟁은 나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용기 있는 태도가 되기도 하니까.

생각해 보면,
엄마도 너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경쟁 모드’로 변할 수 있어.
엄마는 언제나 너희 편이니까.

살면서 엄마는 경쟁을 잘 못해온 사람이라 생각했어.
정확히 말하면, 내가 불편한 것보다 상대가 불편해지는 게 더 불편해서
늘 한 걸음 물러섰던 거지.

그러다 보니 내 주장은 자꾸만 뒤로 밀렸고, 내 감정은 마음속 어딘가에 묻혀버렸어.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더라.
‘혹시 내 암도, 그렇게 삼켜버린 말들 때문은 아닐까?’

차라리 그때 한 번이라도 소리 내어 말했더라면, 조금은 나았을까?

아빠와 갈등이 생겼을 때도, 우리는 말을 아끼는 방식으로 살아왔어.

결혼할 때, “싸우지 말자”가 아니라 “화해를 잘하자”라고 약속했는데—
어른들과 함께 지내고, 식구가 많다 보니 티를 내지 않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지.

싸움이 시작될까 봐 말을 줄이고, 말을 줄이다 보니 서로의 마음은 멀어지고…
그게 반복이었어.

말을 안 하면 없는 일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건 결국 감정을 숨기는 연습만 늘어나게 했더라.

이 이야기를 너희와 나눈 적 있지?

“엄마랑 갈등이 있었을 때, 엄마는 어땠어?” 하고 물었을 때
윤서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지.

“엄마랑 갈등이요? 전 친구들이 엄마랑 싸웠다는 말이 이상했어요.
엄마랑 어떻게 싸워요? 혼나는 거 아닌가요?”


재경이도 어릴 적에 비슷한 말을 한 적 있었지.
그 말에 엄마는 한참 웃었어.
‘내가 그렇게 고압적인 엄마였나?’ 싶은 마음도 들고,
한편으론 진짜 싸우는 방법을 몰랐구나, 우리 가족은 그런 생각도 했어.

물론, 너희 방 상태를 보면 혼나는 아이들 같진 않으니…
그 말도 참 웃기긴 하지?

그래서 이번 수업이 고마웠단다.

‘수용’도, ‘회피’도, 때론 ‘경쟁’조차도
모두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거든.

그리고 갈등을 잘 다룬다는 건 결국
자기감정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도.


윤서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 나도 수용 유형인 거 같아요. 이거 유전이에요?”
하고 묻더라.

그 말에 또 웃음이 났어.

“유전이라기보다, 삶의 태도를 보고 자란 거겠지.”
엄마는 그렇게 대답했어.

생각해 보면,

너희는 엄마가 감정을 누르고 삼키는 모습을 보고 자랐을지도 모르겠어.

말을 꺼내기보단 조심하는 방식,마음을 표현하기보단 눈빛과 온몸으로 말하는 방식.
(화 안 났다고 말해놓고, 온몸으로 화를 내던 엄마… 있었지.)

그래도 요즘은 좀 달라졌잖아.
“화가 난다.”
“짜증이 난다.”
“서운하다.”
엄마, 이제 감정을 좀 표현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의견이 부딪히는 건 여전히 조금 힘들어.

의견이 다른 건 괜찮은데, 목소리가 큰 사람과 이야기할 땐 마음이 쪼그라들어.
그 순간엔 경쟁이 아니라 회피 모드로 들어가게 돼.
말하려다 멈추고, 그냥 ‘넘기자’고 마음먹고.

그게 습관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어.


그래서 이제는 너희에게 말해주고 싶어.

너희 마음도, 충분히 말할 자격이 있고,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걸.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땐, 그걸 무시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조금 불편해.”
“이건 내게 중요한 일이야.”

그 정도로도 충분해.

엄마도 요즘 연습 중이야.
내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말해보는 것.
갈등이 생겼을 때,
회피하거나 수용으로 넘어가지 않고

‘내 마음을 보호하면서, 상대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야.

그게 어쩌면, 진짜 성장이 아닐까 싶어.

갈등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 속에서도 배움이 있고, 사랑도 있어.
그리고 그걸 너희에게 조금씩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엄마는 참 다행이야.


사랑해. 재경 윤서. 너희 둘 존재 그 자체를 모두 수용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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