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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월산 Jun 22. 2020

미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나기 #3

지구에겐 코로나 바이러스가 백신, 인간이 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SIP (Shelter in Place)가 몇 주차인지 세어 보곤 했었는데, 이젠 달수로 세는 게 빠르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에 상륙한 것을 알고도 당당히 7월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던 나다. 메르스 때도 걱정했지만, 결국은 무사히 한국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이번 바이러스도 그렇게 지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요놈은 다른가 보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아마 나는 6월 말쯤엔 한국행 티켓을 취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 가슴은 여전히 한국을 향해 있다. 나를 반길 엄마와 동생들, 친구들, 가족여행 그리고 엄마가 차려주는 나물 반찬 가득한 아침상. 이 나이에 한국 가서 먹을 음식 생각에 벅차고, 못 간다는 생각에 땅으로 꺼질듯한 한숨이 난다. 여전히 한국에서 보낼 여름을 놓지 못하고 있다. 난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카톡~

한국에서 어릴 적부터 남매처럼 친했던 동네 오빠가 연락이 왔다. 미국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전국적으로 폭력적인 시위까지 겹쳐서 흉흉하던데 너는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다. 만약 한국에 오게 되면 2주간 격리해야 하는데, 어머님 댁에서 격리하면 어머님이 불편하니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빈 오피스텔에서 아들과 함께 지내면 어떠냐고, 걱정 말고 오라는 얘기를 했다. 올여름에 한국에 가게 되면 오빠네 가족과 여동생네, 그리고 우리 가족 같이 바다로 여행 가기로 했었다. 그리고 이어 내가 오기로 결정하면 바로 오피스텔에 중고 티브이 하나 들여 주겠다고 했다. 코 끝이 찡해왔다. 나는 갈 수 없을 것을 알지만, 마치 한국에 도착한 듯 마음이 들떴다.


현실로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 냉동실에 재어 놓은 제육볶음을 째려본다. 지난 몇 달간 먹은 고기가 일 년 치 양이 족히 될 듯하다. 미국 와서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한국식 회를 쉽게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았으니, 생선회를 구하는 건 맘먹고 덤비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꼭 이럴 때 회가 먹고 싶다. 며칠 전에 친하게 지내는 동네 자매에게 농담조로 회가 먹고 싶은데, 하나님이 들어주시려나?라고 농담조로 얘기했었다. 저녁에 갑자기 그 자매에게 톡이 왔다. 남편이 친하게 지내는 일식집 셰프님께 부탁해서 회를 투고해 왔으니, 회 가져가서 가족들과 먹으라는. 회에 매운탕까지 받아와 따뜻한 저녁상이 되었다. 매운탕 한 스푼이 입으로 들어가던 그 순간이 아직 생생하다. 물론 제육볶음은 다시 냉동실로 돌아갔다.

미국 인근에 서식하는 우럭인데, 초록빛을 띠는 게 특이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내 생활, 아니 지구 상 모든 사람들의 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다. 처음엔 무조건 두려웠고, 시간이 지나 정신이 들자 원망하고 미워했다. 지금은? 지금도 이쁘지는 않다, 절대. 하지만, 복합적인 감정이 있다. 고마운 점도 있어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남편은 클리닉 손님이 줄어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또 다른 공부까지 병행하고 있던 터라, 남편은 늘 바빴다.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고 거의 매일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나의 요리 실력은 지난 몇 달간 그야말로 일취월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레시피를 동원했고, 매끼는 풍성했다. 식사 시간이 늘 즐거웠다. 집안일, 반복되는 요리를 늘 싫어했었지만, 이번만큼은 불평 없이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한 것 같다. 온 가족이 건강하게 이 한 끼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우린 늘 감사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3개월이 흘렀다.


남편의 수입이 현저히 줄었다. 당연하다.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서야 누가 지금 클리닉에 오겠는가? 남편이 돈을 많이 갖다 줄 때도 난 불평을 했었다. 난 이제 불평하지 않는다. 남편이 속상할까 봐 안색을 살피고, 줄어든 수입에 맞춰 나도 식비를 제외하면 최소한의 지출만 한다. 마구 버리던 비닐봉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번 쓴 지퍼백은 씻어 말려 다시 쓴다. 생강차를 우리고 남은 생강은 냉동실에 보관한다. 다음에 김치 담을 때 갈아 쓸 생각이다. 엄마가 떨던 궁상을 내가 재현하고 있다. 그런데, 야무지게 궁상떠는 내가 왠지 대견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지구에겐 코로나가 백신이고 인간이 바이러스라던데. 듣고 쇼킹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너무 뼈 있게 들어온다. 난 고민 없이 지출했고, 이번 방학엔 어디로 여행 갈지, 어디 가서 쇼핑할지만 고민해 왔다. 그게 안되면, 불행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덜 쓰고도, 덜 다니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었다. 나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단순해졌고, 나에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을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아낌없이 쓰고 있다. 내 주위에 너무나 고마운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감사의 마음이, 그게 어떤 느낌인지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밉지 만은 않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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