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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Choi 최다은 May 11. 2024

마음속에 담아둔 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는 기적이다

'와! 기적 아니야?' '기적 같네!' '기적이 오면 좋겠다!' 등등 기적이라는 단어는 보통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할 때 자주 사용한다. 기적은 단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기이한 바람 같은 초월적인 의미만 지닌 것일까? 혹시나 기적이 노력을 수반하는 주체적인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는 걸까?


소중하지만 꽤나 고통을 주는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매우 의지적이고 진취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말하는 한 편의 이야기가 있다. 14시간이라는 길고 긴 비행기 안에서 눈물을 훔치며 본 영화, 제목도 그리하여 '기적'이다.




주인공인 준경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작은 마을에 산다.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 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이 없는 곳이다. 그는 매일같이 청와대에 기차역을 만들어 달라고 편지를 보내는 집념의 사나이다.  

네이버 이미지: 영화'기적'


준경의 기차역을 위한 열망은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하는 행동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누나에 대한 자책을 덜어내고 싶어서, 그 사실로 아버지가 자신을 피하는 것이라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께 용서받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한 편,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우선순위였기에 아내를 잃게 되는 비극을 겪고 같은 이유로 자신의 딸, 준경의 누나를 잃었다고 생각한다. 준경 또한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이기에 그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으로 아들을 늘 피해왔던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사라질까 두려워 마음속에 담아둔 것을 말하지 못하는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를 두려움의 벽안에 가두어 놓는다.


기차역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였지만 가족의 사랑과 그 이면의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이들 사이의 기적은 아버지가 오랜 시간 말하지 못했던 진짜 마음을 준경에게 이야기할 때 일어난다. 부자간의 쌓였던 오해도, 그들이 스스로를 가두었던 두려움의 벽도 무너지는 바로 그 기적 말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의 기적은 결국 준경의 마을에 기차역이 세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중의적인 느낌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의존적 욕구'가 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나를 가장 소중한 존재로 다루어 주고 내가 보호가 필요할 때 사랑을 주고,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를 주는 것, 이것이 반드시 채워져야 한다. 어릴 때 이러한 욕구를 부모가 채워주지 못한 사람들은 이것을 연인에게, 결혼해서는 배우자 혹은 자식에게 과도하게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 건강한 상태를 잃고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반대로 나는 어릴 때 과잉적 형태의 사랑을 아버지로부터 받았는데 그 사랑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그 사랑이 기준이 되어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에 지나칠 만큼 의존하는 상대가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한 형태가 되어야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고 안심하고 마음을 열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깊이 마음을 여는 것은 매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내가 상대에게 기대하고 있는 사랑과 신뢰가 과잉의 형태로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에 못 미쳐 상처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미리 벽을 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어릴 때 형성된 의존적 욕구의 형태가 결핍이든 과잉이든 소중함을 느끼는 감정에 그림자 같이 따라오는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지 않는 것부터가 건강한 관계를 위한 회복의 출발이 아닐까?




기적은 마음속에 담아둔 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이다. 


최근에서야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때 내가 왜 그토록 조심스러워하는지 알게 된다. 나의 경계 안으로 예고 없이 들어오는 타인에 대해 강하게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진심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에게 두려운 마음부터 앞선다면 혹은 거꾸로 상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자신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면 어떨까? 불안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에게 마음속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적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출발이 아닐까?


자신의 내면에 담아둔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것은 강한 의지로부터 나온다. 감추고 싶어 꽁꽁 숨겨온 마음을 솔직하게 꺼낼 수 있는 힘이 되니까. 보다 나은 가족 간의 관계를 원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나로부터 나오는 기적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사랑은 자발적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훈련에 의해 유지되어야 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Dana Choi, 최다은의 브런치북을 연재합니다.


월       [나도 궁금해 진짜 진짜 이야기]

화. 토  [일상 속 사유 그 반짝임]

수       [WEAR, 새로운 나를 입다]

목       [엄마도 노력할게!]

금       [읽고 쓰는 것은 나의 기쁨]

일       [사랑하는 나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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