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a Choi 최다은 Jul 09. 2024

 데면데면 사랑해

우리 부부의 요즘 키워드는 '데면데면'이다. ‘데면데면’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친밀감이 없이 예사로운 모양'을 뜻한다. 남편에게 '데면데면 사랑해'라는 톡을 남긴다. '예전처럼 끈적이는 접착제 역할은 아닐지라도 사랑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을까? 우리 부부만의 신조어를 생성해 나가는 훈련 중이다. ^^



해외 장기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과 다시 한 집에 살게 되면서 또다시 부딪힘을 마주한다. 물론 신혼시절처럼 강렬한 불꽃은 아니다. 많이 부드러워졌고 상당히 유연해지기는 했다.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갈등은 부인할 수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꽤나 상세히 알고 있는데 상대를 향한 투쟁을 절제하는 것이 쉽지 않다.


뭐 그리 힘드냐고 한다면, 자기 영역이 매우 강한 호랑이 두 마리를 좁은 우리에 가두어 놓고 같이 살라고 한다면 이해가 될까? 남편과 아내의 본성은 서로에게만큼은 매우 공격적이며 날카롭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아내인 내가 집밥을 예쁘게 대접하고 싶어 남편이 출근하는 아침마다 탄단지(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약어)를 고려해서 정성껏 차려주던 며칠이 지속된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묻는다.


"이거 너의 업적을 위해 하는 거야? 나를 위해 진심으로 해 주는 거야?" 이런 식이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지 아니면 아내의 숨기고픈 본심까지 굳이 알고자 하는 어그장인지, 당황했지만 괜찮다. 이 정도는 이제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아내가 묻는다. "그걸 왜 묻는 거야? 물론 남편의 건강을 챙겨주고 싶어서 하는 거지, 나는 성취중심적인 인간이니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기록도 남기는 것이고." 아내의 대답에 "뭐 좋네" 라며 동조로 남편이 대화를 마무리한다.


나의 본성을 꺾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아내인 나는 여전히 쉽지 않다. 사회생활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특별히 남편에게만큼은 더 이상 그것을 억누르지 않고 활개를 치고 싶은 욕망인 것일까? 상대가 옳다고 주장하는 말들이 거슬릴 때가 많다. 물론 서로를 위해 하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완전히 다른 너와 내가 만나 너가 내가 되고 내가 너가 되는 그 치열함을 즐기는(?) 부부일지도 모르겠다.

40대 데면데면한 부부의 흔한 대화이다.

'이곳이 지옥이라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어요'

죽기 살기로 싸웠던 신혼시절, 함께 죽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아파트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부동산 사장님의 "지금 오고 계시나요?" 전화 한 통에 그 걸음을 멈추고 약속이나 한 듯, 그래도 같이 살겠다며 두 번째 집을 계약하러 간 날의 기억 등 '부부싸움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적나라한 스토리를 모두 오픈하면 브런치북 한 권은 거뜬히 채울 수 있을 듯한데 말이다. 부끄러움은 오롯이 나의 몫인데 남편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컨펌을 먼저 받아야 하겠지?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바로 다음날 이혼할 것 같이 싸우던 우리가 이혼합의서 따위는 한 번도 작성하지 않은 채 곧 11주년이라는 놀라운 업적을 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징글징글과 벙글벙글의 합성어 '징글 벙글' 세월이 꽤 쌓여가는 듯하다. '정말 너랑 끝이야'라는 말만 내던지며 치를 떨게 증오하던 시절에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내와 남편을 강하게 동여매고 있는 보이지 않는 단단한 밧줄의 위대한 힘을..




현재 우리는 데면데면 사랑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 본다. 서로에게 그다지 친밀하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그다지 간섭하지 않을 수 있는 거리, 서로에게 그다지 관심 없는 모양의 사랑 훈련이다. 물론 이런 사랑이 우리가 지난 11년간 해 왔던 사랑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라 익숙지는 않겠지만, 이렇게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바람 한 점 부는 간격을 유지할 수 있다면 덜 투쟁하며 덜 갈등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까 내심 기대해 보면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우리 부부는 그렇게 또 단단해지겠지?


PS) 과연 얼마나 갈지 기대해 봐도 좋다. 개인적인 의견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에 한 표! 던져 버렸으니까 하하하









Dana Choi, 최다은의 브런치북을 연재합니다.


월       [나도 궁금해 진짜 진짜 이야기]

화. 토  [일상 속 사유 그 반짝임]

수       [WEAR, 새로운 나를 입다]

목       [엄마도 노력할게!]

금       [읽고 쓰는 것은 나의 기쁨]

일       [사랑하는 나의 가정]


Copyright 2024. 최다은 All writing and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이전 20화 왜냐면 저는 행복해지고 싶거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