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거울에 비친 끔찍한 진실
고대 이스라엘 예언자였던 이사야는 자신의 직무로 부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대면한 후 이제 죽게 되었다고 울부짖었어. 사도인 바울은 기독교인을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상에서 신적 존재와 조우하자 일시적으로 눈이 멀고 말지. 나는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과의 대면이 마치 자신과 세상의 본모습을 어떠한 왜곡이나 꾸밈도 없이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 앞에서는 일에 비견될 수 있다고 생각해.
절대 선인 하나님 앞에선 개별 인간은 결국 그 절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유한성과 불완전함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된다는 거지. 그들이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눈이 멀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진실의 거울 앞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이 그만큼 추악했기 때문이었을 거야.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대부분은 사람들은 때로 두렵고 고통스러운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행복한 거짓의 껍질 안에서 편안하게 살아(죽어)가 기를 선호하는 것 같아. 그리고 불편한 진실이 조금이라도 얼굴을 비치려고 할 때마다 부르기만 하면 언제나 그 진실을 억누르고 거짓으로 쌓은 평화를 지켜줄 '램프의 지니'나 ‘해결사 하나님'을 그들의 신으로 원하는 것처럼 보여.
그러나 나는 성경에서 증언하는 하나님이 충격적인 진실을 대면하게 해주는 진실의 거울이거나 죄수의 벽에 구멍을 뚫어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을 느끼게 해주는 분이라고 믿어. 그리고 자신이 마주한 운명이 쓴 가면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한 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믿음 좋은' 교인들보다 그 가면 아래 숨겨진 진실의 맨 얼굴을 집요하게 추적해 끝끝내 마주하고야 마는 오이디푸스 왕이 성인이 된 세상에서 ‘(램프의 지니나 해결사의)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제자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단다.
#끔찍한 진실에서만 머물고 있다면 결론은 비극이다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 삶을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할까?
교회에서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과연 믿음인 걸까?
회사를 그만두고 '교회라는 세상'에서 치우쳐 지내면서 나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질문들을 풀어나가면서 나 또한 충격적인 진실을 대면하는 진실의 거울 앞에 (하나님) 마주한 경험을 만나게 된다. 나의 유한성과 불완전함의 적나라함을 만났던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시간들. 역설적으로는 매우 감사한 기억이다.
참으로 괴로운 것은 그날을 시작으로 순간적 분노를 참지 못하고 뱉었던 말들을 후회하는 일, 밀려오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행동들을 뒤로하고 자책하는 일,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는 사건… 하루가 멀다 하고 경험하게 되는 나의 불완전함에 대해 지속적인 깨달음이 있고 '저지르고 후회하고'를 매번 반복하는 일상이 이어지는 것 같다.
충격적인 진실을 매일 대면하는 일이 이토록 괴로우면 하나님이라는 진실의 거울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나를 만나주신 것이란 말이냐? 아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오늘 또 깨닫게 되는 불완전하고 실수가 많은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여전히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시선을 돌릴 수 있는 것.
나의 불완전하고도 불편한 진실에만 얽매여 산다는 것은 결국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손으로 눈을 찔러 눈먼 떠돌이 거지로 영원히 방랑하는 길을 택하게 되는 것처럼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 가지 교훈
어제 교회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너는 생각의 틀이 없어서 그것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것이 아닐까?"라는 말에 동의가 되었다. 생각의 틀이 없어서 편견과 선입견으로 타인을 대하지 않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지만 또 생각이 틀이 없기에 한 번 빠진 질문들의 미로에서 벗어날 길도 없다는 것을... 나 같은 이는 생각의 질서를 잡아가야 할 필요를, 그 지혜의 틀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내가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에 대해(일의 결과) 집착하지 않고 오늘을 허락하심에 감사하며 주어진 시간을 알뜰하게 살자는 다짐이다.
외과의사 친구의 말을 빌려보면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생명을 살리려 노력해도 어떠한 피지 못할 사정으로 하늘나라로 가시는 환자들을 보며 예전에는 자책도 많이 하고 우울이 올 정도로 힘이 들었는데 결국 살 사람은 살고 갈 사람은 먼저 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면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겠구나..라는 겸손한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수술 실력이 뛰어나 환자를 살렸고 내가 못해서 환자를 죽였구나'라는 나로부터 기인한 생각들에서 조금은 자유롭게 되었다는 말이 그가 삶과 죽음을 매일같이 오가는 일상을 경험하고 있는 직업이기에 더욱 힘이 있게 느껴진다.
#새로운 시작
일상의 변화가 시작된다. 오늘부터 첫 출근이고 해야 하는 일이 내년 3월 개강을 목표로 스케줄이 꽉 잡혀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하고 돌아와서는 아이를 케어하고 집안을 돌보며 강제로 시간을 알뜰하게 써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렇기에 감사하다. 오늘 하루에 마땅히 필요하고 깨달아야 할 것들을 깨닫게 되는 지혜를 주시길 기도한다.
'말도 안 되게' 다시 일하러 나갈 수 있는 경험이 허락되었으니까. 오늘만 사는 이처럼 오늘을 기쁘게 살아낼 수 있기를, 매일 나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오늘은 누군가에게 덜 상처 주고 덜 아프게 할 수 있기를, 그러한 매일의 경험이 쌓여 나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더욱 사랑할 수 있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