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훈 Jun 04. 2020

혼자 밥 먹으면 안 되나요?

 언제부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서로의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만 하는 사이의 사람들과 식사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일로 만난 사이라는 이야기다) 대단히 가까운 사이거나, 처음부터 식사 약속을 잡은 게 아니었다면 대체로 식사 시간 전에 용무를 끝내는 편이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그 뒤는 대게 이런 식이다. “식사 같이 하시면서 자세한 얘기 좀 더 하시죠라거나 “식사하실 때 됐는데 어떤 거 좋아하세요?" 같은 말. 하나 안타깝게도 식사를 하면서 자세한 얘기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후자의 질문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내가 초밥을 좋아한다고 해서 "전 일 인분에 십만 원쯤 하는 초밥 오마카세를 먹고 싶어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적당히 좋아하는 음식이면서 너무 멀지 않은 곳에 그 메뉴를 하는 식당이 있어야 한다. 사준 다는 사람의 주머니 사정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더욱 그렇다. 혼자 먹을 때도 어려운 것이 적당한 메뉴 고르기인데 이렇게 많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식사자리는 차라리 수학의 7대 난제 풀이에 도전해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가까운 사이의 친구라고 해도 혼자 먹는 밥보다 좋을 리 없다. 밥이나 같이 먹자는 이야기는 사실 그냥 내가 밥 먹을 때 앞에 앉아 있어 줘’라는 것에 가깝다.(물론 남자 동성친구’ 일 경우에 말이다.) 단순히 앞에 앉아만 있어줄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기 위해 많은걸 감수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난 전국에 백만 명쯤 될 것으로 추정되는 오이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하는 사람이다.(생각보다 많다. 정말이다. 편식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친구는 시원한 오이 고명을 올린 평양냉면을 먹고 싶어 한다. 좋다, 까짓 거 오이 빼 달라고 하면 된다. 호기롭게 냉면집에 들어가 주문한다. ”이모님 여기 물냉 2개 주시는데요 하나는 오이 좀 빼고 주세요 꼭 이요!” 이모님은 미소로 화답하며 주문서를 들고 가셨다. 주방에 따로 전하시지는 않은 것 같지만 괜찮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최첨단 기술의 포스시스템은 주방에 나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전달해줄 것이다. 조금 불안하지만 괜찮다. 지금은 2020년이 아닌가. 그러나 이모님이 들고 온 냉면 속엔 야속하게도 모두 오이가 들어있다. “아 이모님 저 오이 빼 달라고 했는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면 이모님은 한 그릇을 친구 앞에 놓아주고 나머지 한 그릇을 들고 어딘 가로 가신다. 그리고는 금세 오이가 빠진 냉면 그릇이 내 앞에 놓인다. 그 냉면은 분명 위에 있는 오이만 슬쩍 들어낸 것임을 알고 있다. 역한 오이향(내 기준에서의)이 진동한다. 고개 들어 친구의 표정을 살핀다. 내가 여기서 새로 해달라고 진상을 부리면 당장이라도 한마디 할 것 같은 지친 표정이다. 난 그냥 젓가락을 든다. 행복하지 않은 식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내 똥 씹은 표정을 쳐다보며 식사해야 할 친구 또한 그럴지 모른다.

 한 가지 예를 들었을 뿐이다. 그 식사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수만 가지쯤 더 있다. 그에 반해 혼자 냉면을 먹었다면 어떨까? 이모님은 하나는 일반이고 하나는 오이를 빼 달라고 하는 복잡한 주문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오이를 뺀 물냉면 한 그릇 만의 주문은 그 요청 사항을 잊을 확률을 무척 낮춰줄 것임에 틀림없다. 음식을 만드는 단계부터 오이를 올리지 않은, 그야말로 메밀향과 육향만이 가득한 백 퍼센트 내 취향의 냉면이 내 앞에 서빙되었을 것이다. 그 냉면과 함께하는 식사시간이 행복할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상황이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냐고? 맞다. 물론 친한 친구와 함께 식사를 했을 때 행복할 수 있는 경우도 수만 가지쯤은 될 것이다. 일로 만난 사이라고 해도 어쩌면 식사자리에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반드시 혼자 먹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함께 먹는 밥에 대해 폄하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혼자 먹는 밥에 대한 심리학적, 사회학적인 접근을 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그런 엄청난 건 할 수도 없다.) 그저 혼자 먹는 밥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뿐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식사인가

 

 

 잠시 직장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다. 일 보다도 힘들었던 건 점심시간이었다. 모두 같이 모여서 점심을 먹는 것이 대단히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택지가 없는 것은 괴로웠다. 혼자 밥을 먹고 싶어 한다는 이유만으로 난 특이한 놈’, ‘사회생활 못하는 놈이 되었다. 결국 나중엔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다이어트한다는 이유로 혹은 속이 안 좋아서 따위의 거짓말. 나중엔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고작 혼자 밥을 먹겠다는 이유만으로 거짓말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 밥을 먹겠다고 선언하는 것보단 나 혼자서 그 자괴감을 견디는 편이 나았다. 그들은 오늘은 속이 안 좋아서 안 먹겠습니다.”엔 관대했지만 오늘은 혼자 먹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엔 그렇지 않았다.

 딱히 아웃사이더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누구에게나 살갑게 다가가서 사랑받는 타입은 아니지만 혼자 겉돌아서 좋을 게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가끔 혼자 밥을 먹겠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 일인지는 납득하지 못했다.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직장 생활을 하지 않기에 회사원들의 점심 문화가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은 반드시 선택지가 있기를 바란다. 왜 혼자 먹으려 하냐고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으면 한다. 갑자기 미친 듯이 먹고 싶은 것이 생겼을 수도 있고, 오늘은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오롯이 먹는다는 행위에 집중하고 싶은 날 일수도 있다.

 만약 그 누구도 왜 밥을 혼자 먹느냐고 물어보지 않는 세상이 된다면 절반쯤은 이 분의 공일 지도 모른다. 언제나 고독한 그분의 이야기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시간과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배를 채울 때 잠시 동안 그는 이기이고 자유로워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고독한 행위,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힐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의도치 않게 깨달은 기본이란 이름의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