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훈 Jul 16. 2020

생선을 좋아하긴 하는데요 낚시는 안 해요

 ‘회’라는 것은 사실 잘라놓으면 그 종류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참치나 연어처럼 그 자체로 무척 특색 있는 색이나 모양을 지녔다면 모르지만, 그 흔해빠진 광어나 우럭도 뭐가 뭔지 모르고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난 음식에 집착하는 인간이다 보니 ‘하얀 건 무채고 그 위에 올라간 건 회이니라’ 하고 먹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 횟집에 가서 모둠회를 시켰다면 반드시 어떤 종류의 생선으로 채워져 있는지 알아야만 했다. 그렇게 생선회에 대한 지식은 차곡차곡 쌓여갔고 진짜 프로만큼은 아니겠지만 잘라놓은 생선회만 보고도 얼추 몇 가지는 맞출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그걸 아는 친구 놈들은 횟집만 가면 이게 뭐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가끔은 일부러 말도 안 되는 생선을 말해주기도 한다. 어디 가서 아는 척했다간 아마 망신살이 뻗칠 테니 생각만 해도 고소하다. 그 녀석들 만큼 친하지는 않거나 아직은 데면데면한 사람들은 백이면 백 같은 것을 물어본다. "낚시하시나 봐요?" 하도 듣다 보니 이게 생선을 잘 아는 것 같아서 인지 아니면 내가 뭔가 낚시하게 생긴 사람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내 인생에 낚시라는 걸 해본 경험은 단 두 번뿐이다. 그중 한 번은 서른이 됐을 무렵이다.(내 첫 낚시는 삼십 년을 살고 나서야 이뤄졌다.) 한적한 바닷가에 있는 낚시가게를 보고 즉흥적으로 낚싯대를 빌려 방파제 어딘가에서 찌를 던졌다. 물론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생전 낚시 한번 해본 적 없는 초짜에게 잡혀줄 맘씨 좋은 물고기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잡힐 거란 기대도 안 했고, 그저 시간 때울만한 소일거리가 필요했을 뿐이었던 첫 번째 낚시의 기억은 나쁘지 않았다. 한적한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낚싯대를 드리우고 이것저것 얘기하는 시간은 즐겁기도 했다. 고기는 못 잡았지만 ‘아, 다들 이런 맛에 낚시를 하나보다.’ 싶었다. 그렇게 관심이 생긴 낚시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건 내 두 번째 낚시 때문이다.


 낚시 애호가인 후배 녀석이 어느 날 연락을 해왔다. 인천 쪽으로 낚시를 가던 도중에 김포에 사는 내 생각이 났다는 것. 마침 한가한 날이었기에 함께 가자는 후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집으로 데리러 오겠다는 후배를 기다리며 난 기대에 부풀었다. 첫 번째 경험에서 낚시의 매력을 느꼈으니 이제 실제로 고기를 잡아 볼 차례였다. 이번엔 베테랑 낚시꾼과 함께 가는 게 아닌가. 나도 손 맛이란 것을 느껴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맘 때의 서해에선 붕장어와 백조기가 주로 올라온다고 했다. 며칠 전에도 붕장어를 낚았다며 보내준 사진엔 후배 녀석의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 말을 듣자마자 붕장어와 백조기를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둘 다 구워 먹으면 맛있는 생선이지만 불을 피울만한 것들을 챙겨가기엔 지나치게 짐이 많았다. 일반적으론 횟감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지만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을 회로 먹지 않으면 대체 뭘로 먹는단 말인가. 칼을 챙겨야겠다 싶어 주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휴대할만한 칼은 과도 밖에 없었다. 그걸로 붕장어와 백조기를 손질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집 앞 마트로 향했다. 다행히 휴대할 수 있게 칼집이 포함된 사시미 칼이 있었다. 가격은 생각보다 좀 있었지만 앞으로 낚시할 때 계속 쓰지 싶어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잠시 후 난 사시미 칼을 집어넣은 가방을 소중히 끌어안고 한껏 들뜬 표정을 지은 채 후배 녀석의 차에 올랐다.

     

 베테랑 낚시꾼이 포인트로 잡은 곳은 장봉도라는 인천의 섬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장봉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는 곳인 삼목선착장 근처의 방파제였다. 난 ‘이왕 온 거 섬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냐.’ 했다. 하지만 후배는 ‘일단 들어가면 배 시간 맞춰서 낚시해야 하니 여기서 느긋하게 하는 게 좋다.’고 했다. 아무것도 못 잡았던 첫 번째 낚시의 장소가 방파제였던 것을 기억한 내 불안한 표정을 느꼈는지 후배는 ‘여기서도 충분히 잘 잡히니 걱정 말라’며 날 안심시켰다. 이제 겨우 두 번째 낚시를 온 초짜가 뭘 알겠는가. 머릿속엔 여기서도 잘 잡힌다는 말 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낚시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날이 어둑어둑 해질 즈음까지 우리는 붕장어와 백조기는커녕 불가사리 한 마리도 못 봤다. 생선을 잡아서 회 처먹을 생각에 한껏 들떠있던 낚시 초보는 점점 지쳐갔고, 베테랑 낚시꾼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발밑의 담배꽁초가 급격하게 늘어갈 무렵 후배는 결심했다는 듯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아 뭐야, 이제 가는 거야?”

 “형 오늘 여기는 아닌가 봐 밤낚시는 진짜 백 프로 잡히는 데 있어.”

 못 미더웠지만 또 뭐 어쩌겠는가. 다시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은 방파제가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후배는 조류가 어쩌고 저쩌고 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엔 그저 ‘밤낚시’와 ‘백 프로’라는 단어밖에 없었다.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세팅을 하고 낚시의자에 가만히 앉았다. 고요한 밤바다 풍경은 맘에 들었지만 이 시간이라면 잡아 놓은 생선들을 다 회 떠서 소주 한 잔 하고 있어야 했다. 이 그림 같은 풍경은 그렇게 봐야만 했던 것이다. 바로 그때, 낚싯대가 흔들렸다. 낮에 했던 낚시에서 바람에도 낚싯대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라 시큰둥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낚싯대는 한 번 더 흔들렸다. 바람은 느껴지지 않았다. 낚싯대 끝에 달린 종에서 소리가 났다. 후배 녀석은 내 낚싯대를 가만히 보더니 말했다. “형! 잡아채!”

     

 난 재빨리 낚싯대를 들고 릴을 감기 시작했다. 약간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한참을 감아올리자 바늘 끝에 걸린 그것은 저 멀리서부터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게로 왔다. 갑자기 오늘의 고생이 모두 사라지는 듯했다. 다시 한번 ‘아, 이 맛에 낚시를 하는구나.’ 싶었다. 늦었지만 내가 상상하던 밤을 보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붕장어인지 백조기인지, 아니 뭐든 상관없었다. 어떤 식으로 해체해야 할지 재빨리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이윽고 낚싯줄은 모두 감겼고 그 끝엔 대체 뭔지도 모르겠는 해초더미가 걸려있었다. 그 순간에 내가 했던 말은 이곳에 쓸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 심한 욕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난 칼집에서는커녕 가방에서도 나오지 못한 사시미 칼을 생각했다. 아마 다시는 쓰지 않을 것 같은 그 녀석의 가격표를 떠올렸다. ‘형, 낚시는 이럴 때도 있는 거야.’라고 뻔뻔하게 말하는 저 녀석의 뒤통수를 칼자루로라도 한 번은 때려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후배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잡지 못한 것보다 먹지 못한 것이 더 화가 났던 나는 낚시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자체적인 결론을 냈다. 난 주방 서랍 어딘가에 사시미칼을 집어넣으며 다시는 낚시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일엔 케이크를 먹어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