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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제이 Mar 26. 2020

서른하나 평범한 직장 다니는 여자의 혼자 산타는 이야기

나 혼자 산 탄다(1)

내 나이 서른을 기점으로 인생의 터닝포인트 같은 취향이 생겨버렸다. 그것이 바로 등산이다.

서른 이전의 나는 등산이라는 취미생활을 가지리라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일단 운동과는 전혀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었다. 사무실에서 9-6시의 근무를 마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폰을 만지면서 살짝 빈둥대다가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고는 다시 침대에 누워 잠들 때까지 폰을 만지작거리던 지극히 평범하고도 무기력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물론 이 루틴에 운동이 끼어들 틈이라곤 없는 게 당연했다. 그래 왔던 내가 갑자기 등산이라니? 등산의 등자도 꺼낼일이 없던 일상에 갑자기 등산이 끼어들게 되었으니 내 입에서 등산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주위 사람들이 참 의외라는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젊은 여자 혼자 등산이라니? 처음에는 웬 등산이야? 라며 갸우뚱하던 사람들이 혼자라는 말까지 듣게 되면 그것 참 청승맞구먼 싶은 눈으로 쳐다보기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시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등산을 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등산은 정년을 채운 중년 부부가 취미 생활로나 접할만한 운동이라는 인식이 있어왔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스포츠라는 고루한 인식이 어쩌면 등산은 젊은이에게는 맞지 않는 취미생활이라는 고리타분한 편견을 갖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러한 편견이 깨지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기 맑고 햇살 따스하던 어느 가을날 새로 깨어난 등산 본능이 나를 산으로 이끈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날의 아침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등산은 단어마저도 낯선 어르신들의 운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심지어 아주 먼 옛날에 친구와 무방비상태로 태백산에 올랐다가 하산한 이후 약 일주일간을 근육통으로 몸져누웠던 것을 떠올려보면 등산은 다시는 못해먹을 운동임이 분명했고, 일명 저질체력인 나에게는 부적합 딱지가 붙은 운동임이 자명했다. 그랬었던 등산이었는데 왜 갑자기 그날따라 등산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것인지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봐도 의문이다. 단지 날씨가 좋아서였을까? 그렇다기엔 태백산 이후 전혀 산을 타본 기억이 없었고 등산 따위 절대 못해먹을 운동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지난날의 나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등산은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더없이 좋았던 어느 날 무작정 도봉산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고 평소에 신고 다니던 낡은 운동화에 반팔과 바람막이를 껴입었던, 누가 봐도 집에 있는 옷 대충 걸쳐 입고 온듯한 모습으로 생전 처음 도봉산역에 당도하였다.


도봉산역에 처음 도착하여 접한 풍경은 실로 놀라웠다.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서울의 진귀한 풍경을 목도한 기분이랄까. 도봉산에 당도하기도 전에 온갖 먹거리와 등산용품들을 판매하는 상점과 상인들을 접하며 온 몸이 등산 스피릿(기운)으로 샤워를 하는 기분이었다. 등산을 하기도 전에 등산하는 기분에 취하게 만드는 도봉산 입구의 광경은 뇌리에 강력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렇게 도봉산 입구를 지나 도봉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간 평지조차 긴 시간의 보행을 허락지 않았던 다리가 급격한 경사를 받아들일 리가 만무했다. 크고 작은 바위로 이루어진 급격한 경사의 오르막길을 오르자 다리는 근육통을 일으켰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평소 땀도 잘 나지 않던 몸에서 비 오듯 땀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다리는 어느새 감각을 잃은 듯 태엽 풀린 장난감처럼 무의식적인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도대체 정상은 어디일까...... 과연 정상에 오를 수는 있는 것일까...... 자조 섞인 질문을 끊임없이 주고받던 시간 동안 두 다리는 끊임없이 위를 향해 오르고 있었다. 정말 힘든 순간에는 바위에 잠깐 기대어 멈춰 서기도 했다. 같이 오르는 사람이 없으니 등산 페이스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등산 왕초보에다가 체력도 한 저질 하는 나의 속도에 맞추려면 상대방은 속에서 천불이 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방 눈치 보는 일 없이 힘들면 잠시 쉬었다가 멈추어 갈 수 있는 것이 나 홀로 등산의 큰 장점이었다.


산을 오르는 데에는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다. 누가 등산을 같이 가줄까 하는 고민도 필요 없었다. 그냥 혼자라도 산에 오르면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물론이거니와 직장 동료들조차 내 또래의 사람들은 등산을 반겨하지 않았다. 처음 등산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 동행을 찾느라 시간을 지체했다면 등산은 어쩌면 내년의 날 좋은 어느 날로 미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면 지금 이 순간 얼굴의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지 못했겠지. 아마도 등산과 사랑에 빠져버린 건 바로 그 순간인 것 같다. 얼굴의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잠깐 뒤돌아 봤을 때 펼쳐졌던 아름다운 풍경들. 그 풍경들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삭막한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서울에 이러한 풍경이 있음에 감사했고 튼튼한 두 다리로 열심히 오르막을 올라 맑은 두 눈으로 이 풍경을 직접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역시 첫 산행에 정상을 찍는 것은 무리였던 것일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처럼 첫 산행에서 신선대 정상을 오르는 건 체력의 한계로 포기하게 되었고 아쉽게나마 정상 아래에 위치한 마당바위까지 오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도봉산의 넓은 품속과도 같은 널찍한 마당바위에 앉아 쉬며 숨을 고르고 김밥을 까먹으며 생각했다. "아 행복하다......" 정말이지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만족감과 행복감이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만족감으로 고양되어갔다. 옆에 누군가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나 혼자 앉아서 김밥을 까먹었지만 다른 등산객의 눈치가 보이지도 않았다. 오롯이 내 두 다리로 땀 흘리며 올라온 마당바위에 앉아 까먹는 김밥이 너무 맛있어서였을 것이다.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하산길은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졌다. 살방살방 산을 내려오며 또 생각했다. "날이 좋으니, 날이 적당하니 다음에 또 산에 오르자!" 다음 산행은 반드시 정상을 찍겠다는 목표와 함께.


물론 이 다짐은 현재 진행형이다. 등산은 생각지도 않았던 지난날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혼자 하는 등산이라니. 예전이라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나 홀로 등산이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제야 등산의 참맛을 알게 된 것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질 만큼 등산이 너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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