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도 개처럼 이름을 부르면 꼬리를 흔들며 주인에게 달려올까? 개와 고양이는 네발 달린 것 빼고는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이름을 부르면 쳐다보고 오라고 하면 달려오는 고양이가 있다. 통계적이진 않지만, 내가 만난 집사들은 대체로 고양이가 자신의 이름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럼 고양이는 진짜 자신의 이름을 알까?
김영하 님의소설 작별인사에 AI 고양이가 나오는데 이름이 데카르트다. 철학자의 이름을 딴 고양이 이름이 맘에 들어 우리 집 고양이를 "데카르트"라고 불러봤다. 두 글자의 이름인 소금아~ 두부야~ 뭉치야~ 니체야~라고 부르면 쳐다보던 녀석이 "데카트르" 또는 "넬라판타지아"라고 불렀더니 쳐다보질 않는다. 후추야라고 부를 때의 음정인 솔솔솔과 같은 음으로 불렀는데도 반응이 없다.
다시 "후추야"라고 부르니 반가워 쳐다본다. 역시 네 이름은 후추가 딱이다. 고양이가 보이지 않으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다.걱정되어 조심히 이름을 불렀더니저 멀리서 엉덩이를 흔들며 요염하게 걸어오다 기지개를 펴는데 그 모습이 정말 미치듯 귀엽다. 심장 폭행범 고양이가 자꾸 보고 싶어 쉬려고 숨어있는 고양이를 자주 부르곤 한다. 고양이가 이름을 부르면 쳐다보고, "이리 와"라고 하면 오는 훈련은 고양이의 이름을 인식하게 하는 훈련이라 집사들이 꼭 해야 할 훈련이다. 그렇다면 제목처럼 고양이는 자기 이름을 알까?
답은 아니다. '후추야'라고 해도 쳐다보고 '소금아'라고 해도 쳐다본다. 땡땡아~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소리에 솔솔솔의 음정만 붙인다면 고양이는 쳐다본다. 그럼 고양이는 자신의 이름을 모르는 걸까?
뭐라고 부르던 말던 고양이는 주인이 자신을 찾는다는 걸 인지하고 반응한다. 그걸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고양이님에게 감히 이름 따위를 기억하느냐, 마느냐 테스트를 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불러서 와주는 것만으로도 집사는 행복하기 때문이다.
고양이 이름은 단순할수록 좋다. 고양이가 이해하기 쉽게 두 음절로 짓는 것을 권하고 싶다. 땡땡아라고 불렀을 때 반응하는 이름으로 짓는 것도 좋다. 고양이를 입양한 날 수많은 귀염 깜찍한 이름을 모아 고양이를 부르고 반응하는 이름으로 최종 결정을 했다.
요리에 없어선 안 될 후추는 최고의 향신료다. 후추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면 인도에서 생산된 후추는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통해 전 유럽으로 공급되었다. 후추를 접한 유럽인들은 열광했고, 100배의 가격으로 비싸게 형성되기도 했다. 왕실과 귀족들의 전유물이 된 후추는 부르는 게 값이 되었고, 검은 황금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후추로 인해 엄청난 부를 얻게 되었고 그것이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우리 집 고양이 후추가 성깔이 까탈스럽고 똑똑하며 관찰력이 뛰어나고 집사와 애정이 깊은 이유가 바로 최고의 향신료 같은 존재라서 그런가 보다.
이름과 외모는 고유성을 드러내는 최전방에 서 있다. 내가 만든 게 아니어서 누굴 탓할 수도 감사할 수도 없지만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고 중심 가치를 둘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내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남도 내 이름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한 적이 없다. 예쁘장한 이름이 싫어 중성적인 이름으로 개명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부모님에게 부탁해 작명소에서 돈을 지불하고 개명할 이름을 받기도 했었다. 받은 이름이 유나, 수빈이, 등등 실제 이름보다 더 소녀스런 이름이어서 바꾸지 않기로 했다. 학창 시절엔 내 이름이 싫어서 친구들에게이름을 다른 방식으로 부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맨 마지막 자를 빼는거다. 김연아라면 김연 이렇게 부르기인데 한 글자만 빼도 이름의 이미지가 확 달라진다. 난 그게 좋았다.
내 이름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 이후로 내 이름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 한 모임에서 자신의 이름을 멋지게 풀어 소개하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하기 싫지만 억지로 내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했다. 내 차례가 되어 앞에 나가 발표를 하는데,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껴졌다. 아름다움이 빛나는 사람. 내 이름 풀이다.
내 삶의 목표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인데, 내 이름에 그런 뜻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평생 이름을 싫어하며 살았다. 억지로 가치를 부여했을 뿐인데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 이름을 나 스스로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누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좋아하겠는가! 적어도 세상에 나 한 사람 정도는 내 이름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 억지로 내 이름에 가치를 부여하자. 남들 앞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멋지게 발표해 보자.
후추야~ 내 고양이 이름은 한 때 최고의 가치를 누린 향신료였고, 그로 인해 베네치아는 부를 얻어 르네상스의 시작이 되었다. 르네상스를 빛낸 수많은 예술가보다 더 매력적인 나의 고양이 후추는 이름처럼 빛나는 황금의 삶을 살 것이다. 내가 매일매일 사랑을 담아 불러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