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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미모미 MomiMomi Apr 07. 2020

맥스 에너지~~!!!

계단 한 개에 100만 원~

맥스 에너지-계단 한 개에 100만 원

우리 가족 주말은 테마가 분명하다. 토요일은 각자의 오락을 즐기는 엔터 데이, 일요일은 힘든 것을 함께하는 추억 데이다.


토요일은 아이들이 숙제를 마치면 곧바로 엄마 아빠의 핸드폰을 하나씩 차지하고 질리도록 게임을 할 수 있다. 내가 볼 땐 질리도록 이지만, 아이들은 결코 질리지 않는 것 같다.


핸드폰이 아이들 차지이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책을 읽거나 주중에 못한 일들을 빠르게 해치울 수 있다.

일요일. 힘든 일을 통해 추억을 쌓는데 목적이 있기에 주로 우리가 선택하는 일정은 등산이다. 아침 일찍 채비를 하고 등산길에 오른다. 우리 가족이 찾는 산은 보문산이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왕복 2시간 정도면 등산이 끝나기에 아이들도 함께 하기 좋은 등반 코스다.

보문산 등반코스는 경사가 완만한 팔각정 코스와 등반 내내 경사가 심한 시루봉 코스가 있다. 우리 아이들은 경사가 심하더라도 빠른 시간 안에 마칠 수 있는 시루봉 코스를 더 좋아한다.


경사가 엄청 가팔라서 등산 초반부터 숨을 헉헉댄다. 특히 운동부족이 심한 나는 늘 꼴찌다.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친다.


제주 살이 하는 동안 한라산 등반으로 다져진 아이들의 체력은 걸어가기도 벅찬 가파른 산길을 뛰어다니게 한다.

둘째 아들 녀석은 전날 만끽한 ‘브롤스타즈’라는 게임 캐릭터에 취해 “맥스 에너지”를 외치며 산을 뛰어다닌다.


숨쉬기도 벅찬데 맥스 에너지라는 구령을 쉬지도 않고 외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설마 저 구령이 힘을 주는 걸까?

저 구령을 외치면 진짜로 에너지가 맥스로 올라가는지 궁금했다.

등반 내내 어서 꼭대기에 가야지 하는 생각 하나로 숨쉬기도 벅차 주변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들을 비롯한 선두 그룹을 쫓아가기도 바빠 말 한마디 없이 오로지 발길만 재촉하는 등반을 했다.


누군가 등산을 인생에 자주 비유하지만 어쩜 그리 정확한지!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등산을 하는 방식이 너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생을 왜 사는 걸까? 왜 등산을 하는 걸까? 오로지 목표 그거 하나 보고 이렇게 숨만 차는 인생 등반 길을 오르고 있는 것일까?

진부한 말 같지만, 산 꼭대기보다 등산 과정을 하나하나 즐기라는 말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상의 순간은 한순간이고 막상 성취감 이외에 지속되는 어떤 뿌듯함은 별로 없다. 정상에 도달하면 하산할 일 밖에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등반 길은 어떤가?


우선 등반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며 조금만 시선을 확장하면 다채로운 경험들을 안겨준다. 이 많은 경험의 시간을 단순히 순간의 기쁨 정상 하나만 바라보고 헉헉대며 올라가기엔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이 등반 길을 즐길만한 ‘맥스 에너지’가 있지 않을까?

발걸음을 떼게 하는 맥스 에너지는 다양하다.


오늘은 대놓고 한 가지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기로 했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피식 웃는다. 비웃는 건인지, 기발해서 본인도 몰래 써먹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문산 고촉사를 지나 시루봉을 오르다 보면 끝이 없이 오르막 계단이 펼쳐진다. 몇 백 개의 고난의 계단을 거치면 마침내 극락세계를 맞이할 수 있다는 교훈이라도 주듯이 숨이 턱밑을 지나 머리 위로 연기처럼 피어나게 하는 계단이다.

나는 이 계단을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래서 상상하기 시작했다.

급할 때 가장 빠르고 효과가 좋은 것은 역시 돈이다.


계단 한 개당 100만 원이라는 가치를 부여했다. 즉, 계단 한 개를 오를 때마다 내가 인생에서 벌 수 있는 돈이 100만 원씩 증가하고, 가장 위기가 찾아오는 산 중턱에서는 한 개당 1000만 원, 정상 막바지에는 한 개당 1억이다. 순전히 내 마음대로다. 왜냐하면 나의 등반 길에 대한 가치 측정은 나의 것이니까.

계단을 한 개씩 오를 때마다 100, 200, 300, 400…… 1억, 2억, ……. 내가 인생 등반 동안 벌어들이는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숨을 헉헉대고 정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막 샘솟았다.


웃기면서 신기했다. 역시 아들이 맥스 에너지를 외치는 이유가 있었다. 아들이 모으는 트로피와 내가 벌어들이는 억대의 돈은 역시나 신바람 나게 하는 맥스 에너지였다. 우후훗.

맥스 에너지를 충전하여 트로피를 득점하는 아들처럼 나는 인생이라는 산을 오르며 나의 자신을 불려 가고 있었다. 너무 속물이라고 비꼬면 어떠한가?

상상은 인생이 주는 또 하나의 보너스다.


돈이 싫다면 (설마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이런 것도 좋을 것이다.


책을 쓰고 싶은 작가는 계단 한 개당 자신이 쓸 작품의 수, 발명가는 발명품의 수, 다독 가는 평생 읽을 책의 권수, 선한 영향력을 뿌리고 싶은 사람은 선한 행동의 수 등등 계단을 오를 수 있는 맥스 에너지는 무궁무진하다.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등반이 한 결 가벼워졌다.


땅 위로 노출되어 등반객들이 넘어지지 않게 도와주는 앙상한 나무의 뿌리가 눈에 들어왔고, 때에 맞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데려온 봄 향기도 맡을 수 있었다. 군데군데 피어 오른 이름 모를 들꽃에게도 눈길이 갔다.


오르다 지치면 선두그룹이 치고 나가는 것과 상관없이 나만의 휴식을 취할 여유도 생겼다. 그러자 눈 앞에 내가 살고 있는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만치에서 위에서 바라보는 시내는 정말 작아 보였다. 먼 우주에서 지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보다 더 작겠지?  


어쩌면 창조주는 현실에 얽매여 나의 작은 우주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전체의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을 선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 가족의 구성원, 시민, 대한민국의 국민. 지구인을 넘어 우주에 살고 있는 우주의 일원이다.


인생 계단 오르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내가 우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주 까먹는다.


일요일 추억 데이.

오늘도 산 한 개를 넘었고 가족과 추억을 쌓았다.


인생에서 넘어야하는 작은 산들은 어쩌면 산이 아니라 ``인지도 모르겠다.


힘들고 복잡하고 하기 싫은 것들을 까다롭게 가려내는 나, 그리고 그것들이 어서어서 지나쳐 가기를 바라는 나 말이다.


우리가 이 우주에 온 이유는 ‘나’라는 산을 넘고 넘어 진짜 나에 도달하기 위한 여행이 아닌가 한다.


긴 우주 여정 속에 내가 지녀야 할 나침반은 ‘긍정의 상상’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압박해 오는 현실에서도 최고의 시나리오를 써낼 수 있고, 가시밭길 가운데에서 꽃 길을 그려낼 수 있는 상상력 말이다.


우주에 도착한 기념으로 제일 선물을 많이 받은 사람은 아마도 어두운 장막 뒤에 감춰진 상상의 보물을 현실세계로 부지런히 옮겨온 사람일 것이다.


이 사람은 미래를 붙들고 현재를 양보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물지도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오늘 주어진 자신의 보물을 이래저래 따지지 않고 ‘네’ 긍정한다.


나는 이 긍정의 사람을 흉내라도 내보고 싶다. 까다로운 마음이 이것은 이래서 싫고, 저것은 저래서 싫다고 지껄이기 전에 여러 당근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맥스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다.


긍정의 나침반과 맥스 에너지는 어제는 보지 못했던 바람과 꽃을 오늘 보게 해 주었듯이, 내일은 오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줄 것이라 믿으면서 ‘네’ 대답하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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