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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Apr 28. 2021

살아진다는 것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아침을 맞는 것이 그다지 반갑지 않은 날들이 있다.

밤에 잠이 드는 것이 힘든 때에은, 그렇게 아침도 반갑지 않기 마련이다.

술이나 수면제 없이는 잠이 들지 않는 날들, 잠이 나를 밀어 내는 시간들이 길어지다 보면

아침은 더욱 버겁게만 느껴진다.

겨우 나를 잠에서 밀어내어 미지근한 물을 반잔 마시고 창밖을 보면

갓 결혼한 것 같은 커플, 정장을 입은 남자와 비슷한 옷차림의 여자가 손을 잡고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가로질러 지하철 역쪽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나도 저렇게 새벽부터 일어나 회사에 출근을 할 수 있었는데, 하고 지금의 나로선 무리야 무리.

그러다 물이 조금 남은 컵을 비우고 찬물을 가득채워 얼마전에 산 레몬 유칼립투스와 로즈마리 화분에 물을 주며 긴 하루를 시작한다.

고양이들은 밤새 밥을 다 먹고는 야옹거리고, 아직 아기같은 1학년 아들을 학교에 보내야한다. 아침을 차리고 책가방의 필통을 열어 한글을 쓰느라 닳아진 아이의 연필을 확인하고 물통에 물을 채우고 마스크 걸이에 새로운 마스크를 끼운다. 우격다짐을 하듯 아침을 먹이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이를 들려보내는 그 한시간 반이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진다.


사실, 그러고나면 하루의 피로가 또 다시 밀려든다. 오늘은 해를 받으며 걸어야지 했던 다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밥을 먹고 나른해진 고양이들처럼, 그렇게 또 다시 나도 집밖에 나가는 일이 엄청나게 무서운 일같다.

그냥, 그런 날들이 있는 것이다.

무력함이 일상인 날들이.


지나치게 커다란 슬픔을 만난 이후로부터, 어쩌면 제자리에 머무는 것조차 크게 나아가야 하는 것처럼 많은 힘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냥, 그렇게 되어 버린 걸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왜 나아가지 못하는지, 왜 주저앉아 있는 것인지 왜 도망가지도 못하는 것인지

고민했었다. 그러나, 그냥 그런 날들이 있는 것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에는 깃털처럼 가벼운 일들이 바위처럼 무겁다가 이제 돌덩이 정도로 변했다고 해야할까


아이의 말간 볼따구나, 고양이의 말랑한 발바닥, 갑자기 좋아진 냉모밀이나 지든 이기든 불안하기만 한 엘지 트윈스의 야구같이. 

그래도 아직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남아있다는 것은, 그래도 살아진다는 것


30분짜리 요가 영상을 틀어놓고 낑낑대며 팔과 다리를 중력에 반해 움직여보다가도, 결국 소파에 몸을 처박고 야구를 보고 있는 시간들이 이 시간들이 그래도 내가 아직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라는 것.


엄마에게 전화로 제발 밖에 나가서 햇빛을 쐬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으로 나의 오전 일과를 마무리하고, 읽혀지지 않는 책을 뒤적거리는 것. 치열하게 살아왔던 나에 대해서, 자기 착취에 가까운 완벽주의로 나를 힘들게 했던 과거의 나에게 내 스스로 용서하는 시간이 아닐까


오늘도 어김없이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나는 노트북을 켜면서 와인을 꺼냈다. 혼자서는 와인을 마시지 않기로 로 종일 생각을 했지만 그냥 나는 나를 또 다시 용서하기로 했다. 뭐 내일은 또 어떻게 되겠지.

아빠가 보고싶으면 울면 되고, 몸이 아프면 진통제를 먹으면 되고, 졸리면 커피를 마시면 되고, 잠이 안오면 수면제의 힘을 빌리면 되고, 다시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렵지 않는 시간이 될때까지 나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기로 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숙제를 다하지 않으면 밥도 먹지 않고, 놀지도 않았던 초등학교의 나로부터 끊임없이 좋은 성적을 받고, 자기계발을 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거기서도 좋은 일을 하고, 집은 늘 정갈해야하고, 효녀가 되야하고 좋은 언니이고 싶고,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고, 심지어 길가의 동물에게까지 좋은 인간이고 싶었고 좋은 아내, 그리고 정말 좋은 엄마이고 싶었던 내가, 세상의 단 한명 나자신에게는 좋은 사람인적 있었을까? 그동안의 노력으로 시간의 탑을 쌓아 내 자신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 쉽게 잠들고 또 시간이 무겁지 않은 봄날의 고양이처럼 이불에 마음을 뒹굴거릴 줄 아는 편안한 사람이 되어 있었지 않을까. 


우리 모두에게는 시간이 있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시간이 있었다.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었을텐데, 아빠는 모두를 사랑하는 쪽을 택했고, 결국 병은 갑자기 찾아와서 아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아 가버렸다. 아빠의 죽음이후로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해왔다. 신에 대한 원망에 빠져 무신론에 대한 많은 책을 섭렵하기도 했고, 암에 대한 공포에 압도 당하기도 했으며, 아빠의 삶을 내가 대신 돌아보고 원통해하느라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기도 했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난 다음 이제 나는,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무수한 자기 검열과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한 죄책감,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 잘못한 것 보다 더 가혹한 자책, 나에 대한 스스로의 지나친 기대와 성취에 대한 암묵적인 강요, 모든 것에 답이 있는 것처럼 그 답을 찾지 못하면 안될 것처럼 살았던 지난 날의 나에게 미안했다. 

앞으로 한 1년 쯤은 아니 그 다음에도 계속 나는 이렇게 살지도 모른다. 모든것으로부터의 해방. 시작은 아마도 내 자신의 기준과 의무 그리고 숫자로 뒤덮인 의미없는 것들. 이 세상을 살면서 수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진정한 의미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에서의 수학을 제외하고는) 등수, 성적, 돈, 부동산 가격, 자산...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중에 인간을 속박하지 않는 것도 없고,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는 것도 없다. 


오늘도 나는 성공했다. 하루를 무사히 살아냈다. 아니 하루는 살아졌다. 책도 읽었고 냉모밀도 먹었고, 아이도 무사히 잠들었고, 또 나는 이렇게 무익하고 과장되지 않은 글을 썼다. 

삶은 그렇게도 살아지는 것이다.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기력하게 사는 것. 하루를 그렇게 살아지게 내버려 두는 것.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슬퍼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는 것. 


하루가 무거운 당신들에게도 무기력의 힘이 하루를 살아지게 하기를. 

어짜피 오늘은 사라지는 것이니.


이렇게 사는 때도 있는 것이다. 다른 것들이 나를 잠식하지 않게, 나른하게. 


아빠 오늘도 보고 싶었어. 내일 다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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