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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Jun 07. 2021

다시, 이팝나무 꽃이 필 때까지

아빠 냄새

딱 1년하고 이틀전 오늘,

아빠가 시티결과를 듣고 바로 대학병원으로 가셨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자 마자

숨이 차게 뛰어서 아빠 진료 시간에 맞추어 병원에 도착했다.

대기실에 기다리던 아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일해야지 왜 왔냐고 물으셨고,

나는 의사의 소견서를 빼앗듯 들고 복도 한 쪽으로 가서 소견서에 적힌 생소한 글자들을 읽어내려갔다.

암, 전이..그런 내가 알만한 영단어앞에 생소한 장기의 이름이 있어 인터넷에서 그 단어를 찾았을때

심장이 쿵 내려앉았고 현실감각이 없어졌다.

췌장암.

그 무서운 단어, 우리에게는 절대 올리 없을 것 같았고 드라마에서 시한부선고를 받은 주인공들만 걸릴것 같았던 그 병명.

아빠를 따라 들어간 진료실에서 의사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환자에게 병명을 말해주어서는 안될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제부터 보호자분들이 공부 많이 하셔야 할 거에요'라고 말했다.

전원해간 큰 대학병원에서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췌장암 4기, 수술불가 간전이... 내가 교수에게 간이식이 안되냐고 했을때, 이미 전이된 부분이 간 전체인데 간을 다 들어내고 어떻게 사냐고 되물었었고, 의사들은 하나같이 기대여명이 항암안하면 3개월, 항암하면 6개월에서 1년이라고 말했다.


아빠는 항암을 택했고, 마지막 12번의 표준항암을 다 할 때까지 아무런 불평도 짜증도 없이 그 모든 과정을 살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해내셨다. 그렇지만 의사들의 거짓말같은 말들은 거의 맞는 편이었다. 아빠는 그렇게 진단 후 7개월여만에 해를 넘기지 못하시고 먼 길을 떠나셨다. 물론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아빠가 어디 외국에 가 계신것 같고, 아빠의 납골당에 들릴때마다 그 작은 유골함에 아빠가 담겨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지만.


며칠전 엄마집에 갔을때, 동생들이 아빠 가디건에서 나던 아빠 냄새가 점점 옅어져간다면서 슬퍼했다. 아빠가 제일 자주 입으셨던 가디건에서는 정말 아직도 아빠 냄새가 났다. 이제 6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보드라운 아빠 냄새가 희미하게나마 아빠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얼굴을 파묻고 아빠 냄새를 맡아 보았다.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도 환자의 냄새가 아닌 좋은 향기가 나던 아빠. 말갛고 이뻤던 아빠의 야윈 얼굴이 떠 올랐다. 보고싶다. 못본지 이제 6달이 지나간다. 기억의 편린들은 자주 마음을 뚫고 나와 어쩔 줄 모르는 아픔을 준다. 있었는지도 몰랐던 아빠의 건강한 목소리가 담긴 동영상을 처음 볼 때 마치 아빠가 다시 살아올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무디어지게 마련인데, 좀처럼 아빠의 빈자리는 채워지지가 않는다. 아빠의 사진을 시간 역순으로 보면서, 우리 아빠가 정말 많이 아팠겠구나...이제는 그래도 아프지 않겠지 하며 위안을 삼는 것도 잠시일 뿐.


슬픔과 우울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 무척 노력을 한다. 어떻게해도 나는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없으니까. 아빠가 살아돌아오는 일 같은 것은 내게 일어나지 않을테니까. 나는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니까.


작년 크리스마스 날, 아빠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겨우 생을 붙들고 있을때, 나는 병실에 누워있는 아빠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손을 잡고 잠시 잠이 들었었다. 그 날 아빠의 손은 아직 따뜻했었는데, 그 손길의 온기가 아직도 생생히 내 기억에 머무르고 있다.


언제까지 아플까

언제까지 그리움이 슬픔이기만 할까

영원한 슬픔이라는 것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제도 난 슬픔을 베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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