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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란세오 Nov 01. 2020

회사와 결혼생활의 사이.

우리를 위해서라는 변명은, 짝꿍에게 변명이 되지 못한다.

후반전==


매일 하는 전쟁은 지옥이다. 

한 부부가 있습니다. 반도와 진주 부부인데요. 어떤 사람인지 구경해 보실래요?


반도: 사회생활 7년 차, 회사를 다니는 영업사원입니다. 얼마나 마당발인지 작지 않은 업계에서도 행사라면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사람이 전부다’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자리라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죠. 고객사들도 이런 남자를 꽤 좋게 봤는지 수시로 저녁을 먹자고 합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술을 그다지 즐겨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죠. 직장에서도 선배들이 영업사원들은 뭉쳐야 된다며 수시로 회식을 하며 기세를 다집니다. 영업사원들은 업무직원도 챙겨야 합니다. 사내 고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평일에 약속이다, 일이다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토요일은 몸이 움직이질 않습니다. 일요일은 다시 업계 사람들과 6년째 함께 하는 운동을 하러 가야 하고요.

이 남자는 사람이 일하는 것과 연 되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이 되지 않는 것이었고, 돈을 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진주: 결혼한 지 5년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꽤 많이 커서 같이 돌아도 다닐 수 있습니다.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을 때도 꽤 얌전하게 앉아 식사할 줄 압니다. 곧잘 키워 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월에 2회 정도 초등학교 강사로 회당 2시간 정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입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시급으로 따지면 작지 않은 비용이기에 꼭 나쁘지는 않습니다. 시수가 더 많으면 좋긴 하겠지만,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 할 수는 없습니다. 일이 없으면 아이와 시간을 보내거나, 집안일을 하면 되니 그다지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닙니다.


종종 아이 낳기 전 하던 일의 친구들과 연락할 때면, 예전 생각이 납니다. 그래도 그 일 하려고 준비를 꽤 오래 했는데. 하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니, 지금에 만족하려 합니다. 나중에 카페나 하나 차려서 커피 뽑으면 재밌을 것 같은데요.


어떤 그림이 펼쳐질까요? 한 번 보시죠!


반도는 오랜만에 저녁 자리가 없는 날이었습니다. 자고 있는 아내에게 오랜만에 같이 저녁을 먹자고 약속하고 아침 일찍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집을 나왔습니다.


진주는 늦잠을 잤지만 아침부터 아이와 시간을 보내느라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합니다. 밥을 먹이고, 옷 입히고, 잠시 놀아주다 어린이 집을 데려다줍니다. 집에 와서 설거지에 청소를 하고 나니 벌써 오전이 끝났습니다. 하루의 낙인 커피 한잔과 영상을 잠시 보며 시간을 갖습니다.


반도는 일을 하다 회사에서 고객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불려 들어가서 한판 호되게 깨지고 배상 문제까지 걸렸습니다. 회사에 복귀해서 빠르게 보고를 올리니 차장, 부장, 이사까지 난리가 났습니다. 그 외에도 밀린 일들을 해내느라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갑니다.


진주는 잠깐 쉬다 장을 보고 밥을 준비합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남편이 일찍 온다니까 ‘맛있는 밥 차려 먹여야지’ 하는 생각에 특별히 장을 보고, 솜씨를 발휘합니다. 이놈에 청소는 매일 하는데, 티도 안나는 것이 돌아서면 왜 이렇게 더러운지 모르겠습니다.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아이가 하원 할 시간입니다. 아이를 데리러 가야겠습니다.


반도는 문제 건을 정리하고 밀린 일을 처리하다 보니 퇴근시간이 늦어질 것 같습니다. 불이 나게 일을 하고 있는데, 부장님이 부르십니다. 


“오늘 영업부 전체 회식이다. 이따 **횟집”

“부장님, 저 오늘 저녁에 약속 있습니다”

“급한 약속이니? 오늘 사장님도 오시고 이사님, 상무님도 다 오신다는데”

“아… 알겠습니다”


아침에 아내와 했던 저녁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회식을 빠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요.


“뚜르르르.. 뚜르르르..”

아내: “여보세요? 벌써 퇴근이야? 오늘 엄청 일찍 나왔네?”

남편: ”어어? 아아, 아직 퇴근은 못했는데.”

아내: “어? 그럼 언제 끝나? 밥 맛있는 거 해놨어!! 기대되지? 빨리 와!”

남편: “나… 오늘 회식이 잡혔어.. 일찍 못 갈꺼같아”

아내: “뭐?? 뭐야, 오늘 일찍 온다고 약속했잖아!! 밥 다 차려놨는데!!”

남편: “나도 일찍 가고 싶은데, 도저히 뺄 수 없는 자리야. 저녁을 먹고 가야 될 거 같아”

아내: “그럼 회식을 못 간다고 해야지!! 나랑 먼저 약속을 한 거잖아.”

남편: “그렇다고 회식을 안 갈 수가 없어. 오늘 상무랑 이사도 온다고 전부 콜 받았단 말이야”

아내: “이게 한두 번도 아니고!! 맨날 나만 기다려야 돼? 거기 간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오라고!!!”

남편: “내가 이걸 하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라고, 나도 집 가서 쉬고 싶은데 갑자기 회식이 잡혀서 오라는데. 나도 이렇게 살기 힘들다고!!”

아내: “아 됐어, 또 거기 가면 한밤중에 올 거 아냐, 취해서 오는 거 꼴 보기 싫다고!!”

남편: “너는 오늘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 “

뚝- 뚜.. 뚜.. 뚜..


띠리리링, 띠리리링, 다시 걸리는 신호음 뒤에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남편은 불편한 마음을 이끌고 회식자리에 들어갑니다.


남편은 회식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집니다. 그동안 거래를 위해 낮에 싸운 업체에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담당자 개인 기분 맞춰가며 이 부탁 저 부탁해가며 기분 맞춰줬는지, 오늘 가서 인간 이하의 욕을 먹은 것 등등 이야기를 하고 나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듯했습니다.


아내는 실컷 몇 시간 동안 장을 보고 요리를 했던 시간이 아깝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자던, 드라마를 봤으면 시간이라도 아깝지 않았을 텐데. 무엇보다 남편이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곧 12시가 다 돼가는데, 끝났다는 연락도 받질 못했습니다. 속은 상하지만 걱정이 되니 전화를 해봅니다.


“뚜… 뚜… 뚜… 뚜…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뚜… 뚜… 뚜… 뚜…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뚜… 뚜… 뚜… 뚜…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전화를 안 받아? 미쳤어?’

아내는 화가 뻗쳐, 톡을 보냅니다.


‘지금 제정신이야? 오늘 약속도 어겨 놓고서,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전화도 안 받아. 당장 전화해라’


남편은 회사 근처의 1차 횟집, 2차 맥주, 3차 포장마차까지 왔습니다. 오늘 받은 ‘스트레스’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윗사람들에게 ‘딸랑딸랑’까지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전 남편은 주머니에 진동도 느끼지 못했죠. 그러다 문득 휴대폰을 쳐다보고, 기겁을 합니다. 부재중 전화에 아내에게 온 ‘미쳤어?’. 가장 공포스러운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술이 번쩍 깨는 것 같습니다. 화장실로 가서 아내에게 전화를 겁니다.


“야!! 왜 전화를 안 받아!!”

“아니, 미안, 미안, 지금 거의 다 끝나가는데..”

“뭐? 끝나가? 그런 소리가 지금 나와? 당장 나와라, 바로 택시 타고 전화해”

“아니, 거의 다 끝나가고, 여기 아무도 안갔….”

뚝-


‘거의 다 끝나가는 것 같은데, 어쩌지, 아무도 안 갔는데, 또 나만 갈 수도 없잖아,  곧 끝나겠지, 조금만 버텨보자’


곧 끝날 줄 알았으나, 그렇게 20분이 흐릅니다. 그리고 슬슬 사장님이 한마디 하며 마무리를 지어갑니다. 그러는 중 문자가 하나 들어옵니다.


‘지금 바로 출발 안 하면, 문 잠근다’


다행히 곧 끝나 헐레벌떡 택시를 잡아탑니다. 택시 기사님께 서둘러 주십사 말씀을 드립니다.

집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번호키를 누르고 손잡이로 문을 열었습니다.


‘덜컹’ ‘??’ ‘덜컹덜컹’

문이 잠겨있습니다.

취했음에도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 앞에 한참 서있습니다.

전화를 걸어봅니다.


“뚜… 뚜…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한참을 문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덜컥, 끼익.. ”


냅다 뛰어서 문을 열었더니, 아내의 눈에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미안..”

“아주 한 번만 더 늦게 와!!”



이 생활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진주와 반도 부부의 하루에서 보았지만, 결혼한 부부도 생각보다 짧은 시간을 만나게 됩니다. 반도와 진주 부부는 단 30분의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준비하는 시간, 운이 좋아 일찍 퇴근하면 집에 도착해서 밥 먹는 시간. 길어야 네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문제에 싸울 일이 산더미입니다. 이 문제들을 현명하게 헤쳐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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