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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권재 Jul 30. 2023

[도서 리뷰]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

 책을 읽읍시다 3편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 민음사(2020)


마음을 둘러싼 두 세계의 환상적인 셔플링



* 작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루키의 상상력

주인공이 지하 동굴에서 결국 박사를 만나, 사건의 경위를 속속들이 알게 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박사와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읽으며 어이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너무 천재 같아서 정신이 멍했다. 내가 소설가가 된다면 이런 기발한 설정을 절대 떠올릴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루키의 설정은 기발할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 치밀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 지금도 소설의 사건이 허무맹랑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조직과 공장을 둘러싼 사건들이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셔플링을 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다. 박사의 말처럼 사고 시스템을 실제로 영상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토리를 많이 접한 사람은 정말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두 가지로 나눠서 사용할까?


내 마음을 찾아줘요

결국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하나의 이야기로 결합된다. “세계의 끝”은 박사가 주인공의 사고를 재편집해 만든 새로운 사고 회로였다. 주인공의 뇌에 두 가지의 정신 세계가 존재한 것이다. 처음에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더 쉽고 재미있게 읽혔다. 야미쿠로나 비정상 체구 이인조, 통통한 여자가 나타나며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그러나 작품이 막바지로 향할 수록 세계의 끝에 몰입하게 된다. 마을과 그림자의 의미가 드러나며 이야기의 방향이 삶의 근원적인 물음으로 향한다. 사랑은 어떤 힘을 가지는가. 삶에서 음악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그중 소설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물음은 바로 이것이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무엇인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발생한 모든 일은 마음의 문제로 집중된다. 주인공인 “나”는 그림자를 데리고 도망쳐서 탈출구인 웅덩이에 다다른다. 그림자가 얼른 웅덩이로 뛰어들자고 재촉하는데 내가 갑자기 여기에 남겠다고 한다. 나는 나의 세계를 버리고 그림자와 함께 도망치는 건 무책임한 일이며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림자를 죽여서 마음을 없애고 마을에 남아있을 생각도 없다. 결국 나는 마을의 숲에 살기로 결정한다. 숲은 마음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기약없이 힘들게 일하며 사는 곳이다. 나는 여태까지 살아온 것처럼 힘겹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방식대로 살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나”는 평생 나로서만 살아왔다. 그렇게밖에 살지 못했다. 작중에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도 나는 키가 비뚤어진 배처럼 반드시 같은 장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은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나 자신은 늘 거기에 있으면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며 살았다. 그렇게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웅덩이에 들어감으로써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웅덩이를 선택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지 못해도, 후회를 반복할지라도 나로서 살아가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필연적인 불행 앞에서도 주인공은 “나”라는 개인의 존엄을 지키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내게는 책임이 있어.” 나는 말했다. “나는 내 멋대로 만들어 낸 사람들과 세계를 그냥 내버려 두고 가 버릴 수는 없어. 미안해. 정말 미안하고, 너와 헤어지는 것도 괴로워. 하지만 나는 내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해. 이곳은 나 자신의 세계야. 벽은 나 자신을 둘러싸는 벽이고, 강은 나 자신 속을 흐르는 강이고, 연기는 나 자신을 태우는 연기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준 책이다. 나는 이렇게 좋은 책을 쓰고, 만들고, 알리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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