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자기 샐러드 그릇에 사과 농축 식초를 뿌리다가, 식탁 의자 방석 맛도 궁금했는지 거기에도 드레싱을 뿌렸다. 흘린 걸 대충 닦아내고 세탁기에 방석을 돌렸다. 다 빨린 방석을 꺼내보니 왜 여전히 더러운 거야? 귀찮지만 화장실에 들고 가 손빨래로 다시 빨았다. 말끔해진 방석의 물기를 대강 짠 후, 부엌과 뒤 베란다를 지나 집 모퉁이에 놓인 세탁기로 갔다. 방석을 넣고 탈수 버튼을 눌렀다. 왔던 길을 거꾸로 돌아 부엌으로 들어오니 바닥에 떨어진 물이 제법 보였다. 방석 물기를 너무 대강 짰던 것이다. 마른 걸레로 흘린 물을 닦았다. 서있을 땐 몰랐는데 물 닦느라 쪼그려 앉으니 더러운 방바닥이 성큼 확대되어 보였다. 짜증이 확 올라왔다. 더러운 방바닥이라는 존재가 짜증 나고 이것까지 닦아야 되는 게 짜증 났다. 걸레 두 장으로 작은 부엌 바닥을 다 닦고 나니 뭔가 안심이 되면서도 입에선 한숨이 나왔다. 탈수 끝났다고 세탁기가 불러대는 걸 잠깐 무시하고, 면 생리대 하나를 마저 손빨래했다. 걸레까진 못 빨겠다 생각하며 걸레를 전용 세탁 바구니에 툭 던져놨다. 탈수된 방석과 하얘진 면 생리대를 앞 베란다에 놓인 빨래건조대에 널었다. 떨어지는 비 때문에 창틀이 팅- 팅- 소리를 내고 있었다. '빨래 안 마르겠네' 표정 없는 얼굴의 나는 성큼성큼 부엌으로 걸어갔다. 덜 마른 그릇들을 깨끗한 행주로 닦아 상부 장에 넣었다. 큰애는 싱크대 옆 식탁에 앉아 과일과 찐 밤을 먹으며 노트북으로 만화를 보는 중이었다. 둘째는 자기 책상에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했다. 남편은 방에서 유튜브를 보며 쉬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지루한 설거지를 해야 한다. 지루할 땐 뭔가를 듣는 게 도움이 된다. 내가 고른 소리로 귀를 막고 그릇의 물기를 마저 훔쳤다. 식기건조대를 비웠으면 싱크대 안에 들어찬 것들을 씻을 차례이다. 프라이팬 두 개, 냄비 두 개, 밥그릇, 국그릇, 반찬 그릇, 국자, 나무주걱, 숟가락, 젓가락, 티스푼, 플라스틱 볼, 머그컵, 도마, 칼을 초록 수세미로 문질렀다. 옆을 보니 어느새 둘째가 와 있다. 우리 집에서 제일 키 작고 귀여운 사람이다. 나를 볼 때마다 천장을 쳐다보듯 고개를 확 젖히는 모습이 날마다 새롭게 사랑스럽다. 날 올려다보던 아이가 손을 뻗어 내 왼쪽 머리카락을 사르륵 들추고 귀에 꽂힌 이어폰 하나를 뺐다. 자기 귀에 꽂아보고 소리를 판독한 후 나와 눈을 맞추고 웃는다. 이런 걸 듣고 있었네요,라는 표정을 씩- 지었다. 이어폰을 내 귀에 헐겁게 꽂아주곤 자기 책상으로 돌아갔다. 큰애는 난데없이 "엄마 아빠 내일 데이트하러 가세요. 오후에 저랑 동생이랑 집에 있을게요"라고 말했다. 남편 생일을 맞아서 우리 둘이 좋은 시간을 가지라는 따뜻한 배려였다. "아빠 일해야 하잖아"라고 하니 "점심시간에 놀면 되잖아요"라고 대답한다. 말이라도 고맙다며 큰애를 보고 웃어주었다. 길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노동의 굴레를 얼굴에 휘감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표정이 사라져 버리는데, 누군가 날 쳐다봐주고 관심을 가져주면 그 순간은 일시적으로 얼굴 근육이 밝게 움직인다. 남편이 비워준 음식 쓰레기통을 마지막으로 씻고서 드디어 집안일을 끝낸, 아니 오늘은 여기에서 집안일을 멈추기로 한 나는, 드디어 책상 앞에 앉아 읽던 책을 펼쳤다. 몇 줄 읽고 있으려니 둘째가 쪼르르 와서 자기 생일은 18일 남았으며 이러저러한 선물을 받고 싶은데 지금 그걸 인터넷으로 보고 싶단다. 검색해서 보여주니 별로라며 고개를 젓고, 울기 시작한다. 왜 우냐고 물으니 그냥 계속 운다. 생일 선물 고르는 게 어려워서 그러는 거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사람은 이런 이유로도 울 수 있는 거구나. "아직 18일이나 남았잖아. 뭐가 갖고 싶은지 천천히 생각해도 괜찮아." 하지만 아이는 당장 선물을 고르고 싶어 했다. 내 무릎에 앉은 20 몇 킬로의 아이는 공룡 인형, 최강 왕 동물, 공룡메카드, 터닝메카드, 로봇 장난감, 판다 인형, 스컹크 인형 등 수많은 키워드를 불러대며 검색해 줄 것을 주문했다. 결국 심해 생물 어쩌고 하는 책이 어렵사리 낙찰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 당장의 낙찰일 뿐이다. 어제와 그제, 아이는 나에게 와서 그제와 그끄저께 고른 생일선물을 번복했었으므로. 그러는 사이 벌써 저녁 9시를 넘겼다. 우리 집 아이들 취침 시간은 보통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다. 9시 30분에 자는 것과 10시에 자는 것은 아침 기상의 시각과 컨디션에 제법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9시부턴 나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9시 반에는 자거라." 하지만 아이들은 밤이 될수록 왜 그리 바빠지는 건지. 컴컴한 데서 쪼그려 앉아 책을 보며 시력을 갉아먹고, 오늘 해야 할 분량의 공부를 뒤늦게 벼락치기로 하고, 둘이서 갑자기 춤을 계발하기도 하고, 태평스럽게 장난치고, 떠오르는 온갖 생각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한다. 왜 잘 시간만 되면 이러는 거냐, 낮에 훤할 때 미리 해야지,라고 잔소리가 확장된다. 시간은 술술 흘러 10시. 잘 준비를 마친 둘째가 "엄마 지금 잘까요?", "빨리 자. 9시 30분에 자라고 했잖아", "지금 10시인데요?"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대화야. 그러니까 빨리 좀 자라고. 겨우겨우 불을 껐는데, 이젠 큰애가 다리 아프다고 약을 달란다. 우리 집 애들은 성장통이 심한 편이다. 유아기 땐 너무 심해서 데굴데굴 구르며 울기도 했다. 약을 너무 쉽게 복용하는 건 지양하지만 이럴 땐 진통제 외엔 답이 없다. 큰애에게 몸무게를 물어본 후 그 몸무게의 최저 용량으로 제안된 진통제 양을 계량하여 준다. 둘째도 벌떡 일어나 물을 마시겠단다. 집안에 있던 물을 다 마셔서 베란다에 있는 새 물을 들고 오려던 둘째가 "으악!" 하며 집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벌레의 더듬이와 다리를 보았다며 몸서리쳤다. 남편이 출동하여 베란다를 다 뒤져보지만 벌레는 온데간데없었다. "분명히 있었다고요! 내가 봤다고요! "라며 아이는 억울해 했다. 벌레가 발이 빨라서 얼른 도망간 것이라고, 베란다 문 꼭 닫고 자면 되니까 너도 얼른 자라고 몇 번이나 말한 끝에 겨우 둘째를 눕혔다. 빨지 않고 그냥 던져둔 더러운 걸레 생각이 쑥 떠올랐다. 내가 거기 더러운 걸 방치해놔서 벌레가 나온 건가. 아니다, 괜히 내 탓하지 말아야지... 남편과 둘이 살던 신혼집에선, 밤에 누우면 목덜미로 송충이 같은 벌레가 기어갔었다. 큰애가 갓난아기 때 살던 집엔 날아다니는 대왕 바퀴가 많았다. 둘째가 아기였을 때 살던 집에선 쥐가 나왔다. 그에 비하면 이 집은 양호한 편이다. 다만 밤이 되면 모기가 극성이고, 베란다와 화장실에서 종종 중형 바퀴벌레가 나오는 게 신경 쓰인다. 벌레 소동이 끝나고 10시 반이 되어서야 온 집이 조용해졌다. 누워서도 속닥거리던 아이들이 마침내 잠들었다.
드디어 자유다. 숨을 후우 내쉬며 책을 읽으려는데 갑자기 발이 너무 간지럽다. 모기가 내 발과 다리를 순식간에 네 방 물어뜯었다. 벌레 소동이 아직 안 끝났다니. 지금 바깥 기온 19도인데 모기 왜 있어? 오른손으로 모기채 잡고, 왼손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움켜쥐고, 눈을 홉뜨고, 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한참 지나서 스피커에 앉아있는 모기 발견. 신..중...하....게.....!! 탁! 잡았다, 잡았다. 근데 찌부러진 모기에서 피가 하나도 안 묻어 나온다. 범인이 아니라 용의자를 잡아버린 것이다. 내 피 먹은 놈은 끝내 찾지 못하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고요하다.
배고프다.
졸리다.
근데 아직은 자기 싫다. 내일 아침 눈뜨면, 또다시 문단 나누기 따윈 없는 줄줄이 사탕을 닮은 노동의 하루가 물밀듯이 몰려올 텐데. 겨우 맞이한 한 줌 진공의 시간을 잠으로 깎아먹기엔 애통하다.
떡볶이도 생각나고, 달달하고 짭짤한 과자 생각도 나고, 배가 꼬르륵거리는 나는, 글쓰기에 대한 책을 펼쳤다.
읽고, 그리고,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 대책도 없이 비非경제적인 삶의 봉우리에 서있다. 내 시간을 마음껏 이것들에 소비 중인데, 마음껏이라기엔 심하게 틈새 시간이라 억울하긴 하다. 아무튼 저 세 가지 중 가장 낯선 게 글쓰기이다. 막 뭔가를 쓰고 싶다가도, 뭘 · 어떻게 · 왜 써야 하는지 뚝- 하고 모르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번 주는 특히 그랬다. 글 한 편을 계속 고치고 수정하는데도 한결같이 개떡같아서 이걸 어떡하나 싶어 급히 글쓰기 관련 책을 세 권 대여했다.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 책에 이런 말이 나왔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조건을 배제하고 나오는 말들은 공허하다." "삶에 밀착한 경험에서 좋은 글이 나온다" 나한테 하는 소리 같아서, 뭔가 들킨 사람처럼 어깨가 움찔했다. 내 상황과 경험을 쓰는 것이 참 어렵고 막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10 몇 평의 집안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지루한 경험을 겪고 또 겪는 내 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그런 흔한 이야기를 적는 게 나에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고단함이 되풀이되는 삶의 지루함에서 탈출하고 싶다. 지루함이라는 감정보단 뭔가 밝은 감각과 의미들로 나의 노동을 물들임으로써 거기서 탈출하고 싶다. 물론, 지루한 노동의 개수를 갈수록 줄여 나감으로써 탈출하고도 싶다. 틈새 시간을 악착같이 펑펑 소비하며 책 · 그림 · 글에 집중하는 건, 그것이 나를 좁은 물리적 공간에서 광대한 정신의 제국으로 옮겨놓는 짜릿한 탈출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만난 제국의 길잡이는 '너의 지루한 상황을 글 속에서 배제하지 말라'라고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성실하고도 긴가 민가 한 학인이 되어 미주알고주알 내 삶과 밀착된 글자들을 여기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12시쯤 되니 눈이 너무 피로하다. 이젠 자야 한다. 자기 전엔 화장실 다녀오는 게 필수. 깜깜한 화장실에 들어가는 건 늘 긴장된다. 화장실 불을 켰다. 화장실 문이 화장실 벽에 꽝 부딪혀서 식구들 잠을 깨우지 않을 정도가 되도록 예술적인 힘 조절을 하여, 문을 휙 열어젖혔다. 눈을 크게 뜨고 화장실 바닥에 기어 다니는 게 없는지 빠르게 스캔한다. 다행히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볼일을 마친 후 모기장 안에 깔려 있는 이불 위로 몸을 눕혔다.
촘촘한 보호막 아래, 푹신한 매트 위에, 따스한 이불과 편안한 어둠을 덮고 누운, 초콜릿처럼 달콤한 시간. 밖에선 풀벌레가,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슬레이벨 같은 소리를 일정한 박자로 베풀고 있었다. 마음을 한없이 편하게 해주며 졸음을 가속시키는 노래였다. 정신이 흐릿해진다. 반듯이 누운 내 위엔 원터치 모기장의 살이 X자로 호를 그리고 있다. X. 고차방정식 같은 내 삶의 미지수가 저기도 있었구나. 안 그래도 수포자라 골치 아픈데 이 시간까지 방정식을 풀 기운은 없다. 저 X를 없을 무無를 뜻하는 기호로 바꿔 생각해본다. 모기장 안에 누운 나에겐 삶의 고민을 붙잡을 기운도 없고, 날 물어뜯는 벌레의 엥-엥-소리도 없고, 쓰다 만 엉켜버린 글, 더러운 빨랫감, 꾀죄죄한 방바닥도 없다. 잡다한 짐이 보이지 않아 잠만 자면 되는 깜깜한 하루의 끝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핸드폰 메모 어플에다 '난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다'라고 자랑처럼 몇 글자를 쓰다가, 나도 모르게 마취에 빠지듯 잠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