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보슬한 마음의 간식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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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가 끝날 즈음부터 그림 에세이 작업을 시작했다. 원래 하던 일인 이모티콘 작업으로 다시 돌아가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엉뚱하게도 에세이를 쓰고 싶어 졌다. 슬럼프 겪을 때 했던 생각들을 글과 그림으로 남겨 놔야겠단 생각이 들어서이다. 만약 다음에 또 슬럼프가 온다면 이 기록들이 어떤 식으로든 참고가 될 것 같았다. 잘하면 다른 누군가에게도 내 지질한 침체의 역사가 쓸모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슬럼프 때 한참 동안 게임 중독에 빠졌다던 유명한 소설가의 일화가 나에게 묘한 위로가 된 것처럼.


그간 이모티콘 작업을 통해서는 표출하지 못한 내적 수다를 풀어내 보고도 싶었다. 이런 충동을 실행하는 게 베짱이 같고 철없는 짓 같아서 약간 망설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결국 이렇게 어엿이 딴짓을 하고 있다. 생업 전선이 눈에 밟히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다른 양식을 모아도 괜찮을 거라고 마음을 정리했다.


'프레드릭'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림책이면서, 그 책 주인공 들쥐의 이름이다. 다른 들쥐들이 겨울을 대비해 열심히 양식을 모을 때 프레드릭은 해님 아래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들쥐들이 프레드릭에게 왜 일을 안 하냐고 묻자, 프레드릭은 "나도 일하고 있어.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라고 대답한다. 다른 들쥐들이 양식을 모으느라 바쁠 때 프레드릭은 내내 가만히 앉아 아름다운 색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은다. 마침내 겨울이 왔다. 모은 양식을 다 먹었을 때 들쥐들은 프레드릭에게 "네 양식들은 어떻게 되었니, 프레드릭?"이라고 묻는다. 프레드릭은 들쥐들에게 눈을 감아보라고 한 후 포근한 햇살, 색색 꽃들,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차례로 들려준다. 들쥐들은 감탄하며 프레드릭에게 시인이라고 칭찬했다. 프레드릭은 얼굴을 붉히며 "나도 알아."라고 말하며 미소 짓는다.


그림 에세이 작업은 배를 채우기 위한 양식을 모으는 건 아니다. 그 대신 일상에서 건진 아름다운 순간들, 이야기들, 웃음과 눈물 같은 걸 모으는 일이다. 나는 프레드릭 같은 시인도 못 되고 글과 그림 모두 덜 되었지만 이런 끄적임이 한 조각의 간식이라도 되면 좋겠다. 언젠가 나와 누군가에게 춥고 지루한 겨울이 찾아왔을 때 나눠 먹을 수 있는 마음의 간식 같은 것 말이다.


짧은 몇 글자로 승부 내야 하는 이모티콘 대신, 글자 수 제한 없이 맘껏 떠들어도 되는 에세이, 매끈한 벡터 선으로 그리는 이모티콘 대신 보슬보슬한 색연필화. 길고 추운 마음의 겨울에 제법 잘 어울리는 먹거리가 아닐까 싶다.


사실은 굳이 매서운 계절까지 갈 것 없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벌써 맛있는 간식을 먹는 것 마냥 즐겁다. 글을 쓰는 건 마치 블록 놀이하는 것처럼 유쾌하다. 흐릿한 생각이 또렷한 형태로 차차 쌓여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 재미있다. 글에 곁들이는 그림은 색연필화로 그려보고 있다(실제 색연필은 아니고 태블릿 펜과 컴퓨터로 구현하는 색연필 '느낌'의 그림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그림을 그려봤지만 색연필화는 처음이다. 좋아해 본 적도, 직접 그려본 적도 거의 없다. 이런 화풍이 좋아진 건 최근 김초엽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표지를 본 이후부터였다. 꿈속처럼 보이는 보슬보슬한 표지에 눈이 몇 분간 고정됐다. 색연필 선을 종이에 채워보니 전에 몰랐던 재미가 쏠쏠했다.


이모티콘 작업할 땐 내가 아무리 '완성'이라고 생각해도 회사 측에선 수없이 '미완성'이라고 평가했다, 사람들에게 내어 보일 수 없는 것이라며 수십 번 되돌려 보냈다. 나와 세상의 간극을 맛보며 누적된 그 피로들이 그림 에세이 작업을 하면서 한 겹씩 벗겨지는 느낌이다. 물론 손에 익지 않은 색연필화라서 그렸다 지우기가 셀 수 없다. 종일 그렸던 그림을 싹 엎어버린 적도 많다. 색연필이 주는 포근함과 보슬거리는 느낌을 살리는 것이 유치원생이 인수분해 풀듯 어렵다. 글 쓰는 것, 더욱이 내 이야기를 쓰는 것 또한 순탄치 않다.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된다. 그렇지만 이 작업의 마침표는 내가 찍을 수 있다. 정답은 내 안에 있다. 내가 완성이라고 느꼈을 때 즉시 펜을 놓고, 갓 나온 따끈한 마음의 간식을 사람들에게 내어 줄 수 있다.


이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충동적으로 시작했지만 그냥 지금 해야 될 것 같은 일이다. 그래서, 쉽지 않고 낯선 작업임에도 틈만 나면 엉덩이가 아프도록 컴퓨터 앞에 성실하게 앉아 있는다. 봄, 여름, 가을 내도록 가만히 앉아 양식을 모으느라 엉덩이가 무척 아팠을 프레드릭을 가만히 흉내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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