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를 검색했더니 여러 추천 목록이 떴다. 30번 연패로 슬럼프에 빠진 내 마음에 뭐라도 밝은 걸 묻히고 싶었다. 「미스 리틀 선샤인」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선샤인이라니. 좋아, 제목부터 밝다. 콩가루 집안 가족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답 없는 괴짜 할아버지 한 명이 나오는데, 갑자기 돌변해선 어록 같은 걸 툭 툭 던진다.
사업에 실패한 아들에겐 "결과야 어떻든 네 힘으로 노력했다는 게 중요해. 넌 도전했고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해.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위로한다. 분노로 가득했던 아들의 표정이 감동으로 차오른다. 대회를 앞두고 자신 없어서 눈물을 보이는 손녀에겐 "진짜 패배자는 질까 무서워서 시도도 안 하는 사람이란다. 넌 노력하잖아, 안 그래? 그럼 패배자가 아니야. 내일 신날 거야, 알았지? 남들이 뭐라든 신경 쓸 것 없다. 잘 자라, 공주님. 사랑한다."라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울던 손녀는 햇살처럼 밝게 웃는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좋았다.
연속된 실패로 슬럼프를 앓아보니 어린 시절의 마음 앓이가 쓸데없이 떠오른다. 거절에 대한 경험이 많았던,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그때가 슬럼프를 겪는 상황과 슬쩍 닮아서인가 보다.
낙숫물이 댓돌도 뚫는다는 말이 있다. 댓돌이면 좋았을 테지만 어려서 나의 멘탈은 설탕 뽑기처럼 바삭했다. 내 가까이엔 작은 물방울 같은 사소한 퉁명스러움이 있었다. 그 물방울은 바지런히 떨어졌다. 자잘한 물방울에 부서지고 녹는 내 마음이 당황스럽기도 부끄럽기도 또 아프기도 했다.
처음으로 자기 비하를 기록한 게 아홉 살 때다. 그날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책상에 앉아 2학년 일기장을 꺼내서 이렇게 썼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모두 날 귀찮아해, 나랑 시간을 보내주는 사람이 없어, 나를 싫어하는 걸까, 내가 귀찮은 걸까, 나는 사랑스럽지 않은가 봐, 이런 생각을 하며 일기를 썼다. 그러다 슬퍼서 엉엉 울었다.
초등 고학년을 향하던 어느 날엔가 어떤 실패를 한 적이 있다. 그날 내가 들었던 잊을 수 없는 최악의 말이 "다음엔 더 잘해라."이다. 겨우 이런 말을 최악이라고 꼽다니 참 곱게도 자랐구나 싶을 거다. 누구든 들을 수 있는 흔한 말이다. 여러모로 어수룩한 나 같은 아이라면 마땅히 들어야 했을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내 마음은 백 층이 넘는 건물이 땅을 향해 잡아당겨지듯 무너졌다. 마음 부스러기들이 지면에 광범위하고 얇게 퍼지면서 들러붙었다. 그날의 노려보는 눈과 소리치던 목소리보다도, 차분한 마침표 같던 저 일곱 마디가 가장 힘겨웠다. '사랑받을만한 사람인가'라는 테스트에서 공식 불합격 통보를 받아버린 것 같았다.
내 주위 어른들은 대부분 좋은 분이셨다. 하지만 소설 『길리아드』의 주인공이 말했듯 "보통 부모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다. 나의 어른들도 그랬을 뿐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나오는 모리 교수님은 "어머니는 우리를 안아 주고 흔들어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 그렇지만 사실 어머니가 아무리 많이 해 줬어도 부족하지... 우리 대부분은 충분히 그 애정을 받지 못했지"라고 했다.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그 어른들 아래에서 자라는 새로운 아이들 역시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한다. 나도 그 도돌이표 안에 포함된 흔한 어린이였을 뿐이다.
"괜찮아. 네가 자랑스러워. 사랑해." 이런 말은 영화 주인공의 차지이고, '더 잘해'야 하는 흔한 어린이가 저런 말을 듣는 건 NG라고 여겨졌다. 내 상태는 늘 괜찮지 않으며, 모자랐고, 못났다. 그렇기에 저런 고운 말을 듣는 건 부당한 일이라고 단단히 믿게 되었다. 나의 한심함을 인정하면서도 어쩐지 마음은 너무 아팠다.
많은 시간이 흘러서 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어른 한 명을 만났다. 이상하게도 그는 내가 실패했을 때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괜찮아요. 쉬세요. 당신은 좋은 작가에요. 사랑해요. 예뻐요. " 그가 해주는 고운 말들이 더없이 좋았다. 한 글자도 잊기 싫은 최고의 대사였다. 네가 저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느냐고 마음속의 아픈 신념이 가끔 치고 올라오기도 했다. 자괴감과 행복이 복잡하게 뒤섞였지만, 내 손은 대책도 없이 그의 말들을 부지런히 주워 마음에 쏙쏙 넣어두었다.
최근의 생애 최다 연속 실패는 어떻게 보면 그의 탓도 있다. 만약 내가 첫 실패했을 때 그가 "더 잘해봐요."라고 했으면 난 두세 번 도전하다 말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괜찮아요, 좀 쉬세요, 경쟁률이 세서 그런 거예요."라고 말하며 안아주었다. 이런 물렁한 말들은 이상한 힘이 있어서, 마음을 후다닥 회복시켰다. 그렇게 다시 힘내고 또 힘내다 보니 수십 번 넘는 도전을 하게 된 것이다.
이병률 시인은 「왜 그렇게 말할까요」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왜 말은 / 마음에 남지 않으면 / 신체 부위 어디를 떠돌다 / 두고두고 딱지가 되려는 걸까요" 아픈 말을 많이 듣다 보면 맷집이 늘거나 굳은살이 배겨서 덤덤해질까? 지속적인 충격을 받는데 약해지지 않고 배길 신체 부위가 있긴 있을까?
어린 시절 내 맘에 생겼던 딱지들은 이미 떨어져 나갔고, 새 살이 돋아 회복되었다. 어떤 부위는 아주 말끔하게, 어떤 부위는 실금 같은 흉터를 남기고서. 지금도 어떤 말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아픔에서 후다닥 회복한다. 마음의 굳은살 때문이 아니라 보호막 때문이다. 적금처럼 차곡차곡 모은 물렁한 사랑의 말들이 뾰족한 말들을 신통하게 막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