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엔 재활용 쓰레기, 싱크대엔 더러운 그릇이 들어찬 날이었다. 신발장엔 눈덩이 같은 먼지 위로 신발들이 행위예술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떡진 머리를 한 나는 겨우 늦잠에서 깨어나 구깃 구깃 펴져 있는 이불 위에 앉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외쳤다. "소방 점검 왔습니다!". 그때의 소름 끼치는 기분이란…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최근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의 기분이 꼭 그와 같았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했음을 뒤늦게 깨닫고 민망해졌다. '적어도 100번은 도전해볼 거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전 실력은 부족해도 끈기는 좀 있는 거 같아요'라고도 했었다. 100번 근처도 못 가서 내던져진 신발 꼴로 널브러질 줄은 몰랐다. 반복되는 실패를 겪다가 생각보다 빨리 슬럼프에 빠져버린 내가 너무 못나 보였다. 나를 손가락질하며 자꾸만 자기 비하의 구멍 속으로 미끄러져갔다.
그러나 저러나, '소방 점검 노크 소리'같은 위기에서 '자기 비하'라는 결말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오히려 좋았을 것이다. 별안간 다시 쾅쾅쾅! 다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 뭐지 이건?
"가스 점검 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절정, 아니면 얄궂은 반전인 건가. 30번 연속 퇴짜 맞은 걸로 모자라, 3번의 시련이 더 찾아온 것이다.
슬럼프가 왔지만 기특하게도 운동을 계속했다. 매트 깔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러다 아킬레스건염이 생겼다.
건강을 위해 착한 간식, 서리태 볶음을 먹었다. 딱딱했지만 맛있었다. 맛에 빠져 내 잇몸이 나약했다는 걸 망각한 찰나, 잇몸 염증이 생겼다.
우울하단 이유로 마구 먹었다. 하지만 곧 정신 차리고 몸을 비워야겠다는 훌륭한 생각을 했다. 40여 시간 단식을 상쾌하게 해냈고 보식을 할 차례였다. 단식하며 간절히 당기던 떡볶이를 매콤하게 해 먹고 차가운 수박도 후루룩 들이마셨다. 급체했다.
이 세 번의 시련 모두, 몸을 쾅쾅쾅 때리는 것처럼 야무지게 아팠다.
건강해보려고 하다가 도리어 병을 얻었다. 잘해보고 싶었는데 도리어 불합격만 잔뜩 얻은 상태를 굳이 상기시켜주는 얄미운 전개다. 게다가 생애 첫 발 반깁스, 생애 첫 오른쪽 잇몸 염증, 생애 첫 급체였다. 어린이도 아닌데 뭐 이렇게 처음 해보는 게 많아. 생애 첫 '벚꽃', 생애 첫 '박장대소', 이런 거면 얼마나 예뻤을까. 연식이 제법 된 아줌마의 생애 첫 '땡땡'에 들어갈 아름다운 단어가 아직 남아 있긴 한 걸까.
급체했을 때 속이 불편한 것보다 더 힘든 건 어지럼증이었다. 참을 수 없이 불편했다. 머리를 조금만 움직이거나 눈을 잠깐이라도 뜨면 온 세상이 빙빙 돌았다. 팔다리의 힘도 다 빠져나갔다. 엄살 좀 보태서 '이게 과연 나을까?' 싶은 불쾌한 느낌이었다.
일하다 30번 연패한 거? 그런 건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원은 소박해졌다. 고개를 편하게 휙휙 돌릴 수 있고, 몇 걸음 떨어진 화장실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는 것. 그거면 더 바랄 게 없었다.
급체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 덜 어지러웠다. 눈을 감고 벽을 더듬어 겨우 화장실에 도착했다. 한바탕 구토를 했다. 좀비처럼 다시 안방으로 덜덜 돌아왔다. 만신창이가 된 느낌으로 이불에 쓰러졌다.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 체감 10분 정도로 느껴지는 10시간의 꿀잠을 잤다. 일어나니 거짓말처럼 몸이 상쾌했다. 뭐지 이건? 이렇게 빨리 나을 전개가 아니었는데? 소소한 반전이었다. 가족들도 눈을 동그랗게 하고 벌써 다 나았냐고 물었다.
급체뿐만이 아니다. 작년에 왼쪽 잇몸 염증 때는 부기가 가라앉는데만 20일 정도 걸렸지만 이번 오른쪽 잇몸 염증은 사나흘 만에 다 나았다. 20대 때 왼쪽 다리에 생긴 아킬레스건염은 수개월 동안 나를 괴롭히며 엄청난 택시비를 날리게 만들었지만 이번 오른쪽 아킬레스건염은 이틀 만에 사라졌다.
그 순간 "쾅쾅쾅!"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마흔 살 아줌마의 '땡땡'에 들어갈 새 단어가 들이닥쳤다. 생애 첫 '급속 회복'. 아름답고 반가운 단어다.
호빵맨 만화로 유명한 야나세 다카시는 <나는 마흔에도 우왕좌왕했다>라는 책을 썼다. 그는 50살에 호빵맨을 그리기 시작했고, 70이 되었을 때에야 드디어 호빵맨을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였다. '나이를 핑계로 자신의 가능성을 줄일 필요가 전혀 없다.'라고도 말했다.
모지스 할머니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76살이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천천히 하세요. 때로 삶이 재촉하더라도 서두르지 마세요." 그녀는 101세까지 살며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마흔 언저리 아줌마의 이야기는 이제 발단에 와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반깁스 없이 걸을 수 있고, 아픔 없이 씹을 수 있고, 어지러움 없이 머리를 흔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다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천천히 삶을 전개해보고 싶은 소망이 번진다. 아픈데도 없는데 못할게 뭐가 있나. 몸이 나으면서 마음도 급속 회복된 기분이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만날 반가운 단어들을 찾아 명랑하게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