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다. 하지만 뛰어나진 못하다. 학창 시절, 첫 그림 실기 시험 결과는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부모님 뜻을 어기고 내가 고집해서 정한 세부 전공 성적이었다. 성적표를 본 어른께서는 "지금이라도 전공 바꿔!"라고 호통치셨다. 귀에 퍽! 꽂힌 소리가 따끔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뭔 똥고집인지 나는 전공을 유지했다. 다음 실기 시험 결과, 꼴찌에서 네 번째를 쟁취했다. 좋았어, 난 발전하고 있다! 는 개뿔. 눈치가 머리카락 개수만큼 보였다.
그 후로도 찬란한 흑역사들이 이어졌다. 공모전엔 셀 수 없이 떨어졌다. 전시 심사에서도 여러 번 떨어졌다. 그림책 일러스트 알바 구하다 떨어졌다. 그래픽 관련 아르바이트하다가 월급 못 받고 잘리면서 '00씨가 여기서 한 일이 뭐가 있어요?'라는 굴욕의 말도 들어봤다. 디자인 관련 취업 면접에서도 떨어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차라리 백역사로 보이게 만든 참된 흑역사를 쓰게 되었으니, 바로 연속 30번 불합격 사건이다. 최근 2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이모티콘을 만드는 일을 했다. 모 플랫폼에 이모티콘을 제작해서 제안하면 심사를 거쳐 승인 또는 미승인의 결과를 통보받는 식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딱 떨어지는 숫자 30, 연속 서른 번의 미승인을 받게 됐다(2년간 나의 총 미승인은 63건, 승인은 6건이었다.).
원래부터 뭘 눈부시게 잘한 적은 없었으니까 미승인을 연속으로 받으면서도 심하게 낙담하진 않았다. 그저 다시 고쳐보고, 새로운 걸 그려보면서 계속 문을 두드렸다. 가뭄에 콩 나듯 떨어지는 승인 통보는 또 다른 승인을 갈망하게 되는 희망고문이기도, 도전의 관성을 이어가게 하는 당근이기도 했다.
근면 성실하게 나의 노동력을 공중분해시키던 중 연속 스물몇 번째 미승인을 받은 날이었던가. 빨간색 글자 세 개 '미승인'을 보는 순간 그림에 대한 의지가 툭 끊어졌다. 마음이 당황스럽게 와르륵 무너졌다.
학창 시절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3번째 실기 시험에선 꼴찌에서 여섯 번째의 성적을 거뒀다. 어디 내놓을 순 없는 실력이었지만 나는 노력했고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30번을 도전하면서 계속 탈락한 것이다. 생애 처음 겪어보는 연속 서른 번의 거절이 마음에 퍽 하고 꽂혔다. 슬럼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