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있다. 망가진 모기장 지퍼를 수리할 수 있고, 피아노를 조금 칠 수 있고, 채소의 두께를 일정하지 않게 썰 수 있다. 무엇보다 잘하고 좋아하는 건 그림 그리기이다. 그리는 일을 좋아하지만 내 그림은 그다지 반짝거리지 않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하니 세상은 목재로 지어지지 않았나 보다. 열 번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도끼를 휘둘렀지만 금강석 같은 세상은 내 그림에 불합격을 성실히 통보했다. 단단하고 반짝이는 건 세상 혼자 다 해버렸다. 연쇄 실패로 서른 번 내리 두드려 맞은 손은 가을 낙엽처럼 바스러졌다. 반짝이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 넌더리가 났다. 상품화에 낙방한 손은 끝없는 도전으로 떠밀리던 자신을 수호하려고 다른 것을 계발했다. 자판을 두드리는 것. 평가절하된 자신을 글자 속으로 피신시켰다. 그 글에 어울리는 보슬보슬한 그림을 덧붙였다. 여기 모인 설익은 에세이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를 토닥이기 위해 시작한 작업이지만 쓸수록 다른 사람들 생각도 났다. 계속해서 거절당한 사람들. 세상 속에서 함부로 재단되고 무례한 대우를 받고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공간을 얻지 못한 사람들. 자신에 대한 확신은 옅어지고 눈앞에 펼쳐진 안개는 짙어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생각났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므로.
내 글과 그림이 그들에게 마음의 간식 같은 게 되길 바라며 쓰고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