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존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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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존에 진입한 머리를 싹둑 자르고, 짧아진 머리칼을 팔락이며 집으로 가는 길. 오늘은 꼭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었다. 미용실에서 집까지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굳이 잰걸음으로 걸었다. 거의 일주일째 태블릿을 켜지조차 못해서 손이 안달 난 상태였다. 오전엔 청소, 빨래, 식단 일기 두 개 쓰기, 점심 차리기로 시간을 다 썼지만, 오후엔 남은 집안일 얼른 마무리하면 그림 그릴 각이 나올 것 같았다. 점심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면서부터 마음이 들떴다. 손으론 집안일 마무리를 하면서 머릿속으론 벌써 새로운 그림의 스케치를 시작했다.


마침내 책상에 앉아서 태블릿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아이들이 쌓아둔 알록달록한 그림책 탑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얘들아 이 책들 벌써 다 본 거야?" "네에~" 며칠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다 준 스무 권의 책이었다. 코로나로 어디 놀러 갈 상황도 아니고 친구들도 못 만나는지라 아이들은 좁은 집에서 나날이 너무나 심심하다. 그나마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덕에 무시무시한 심심함을 쪼끔 달래는 중이다. 다만, 예전의 신속 · 간편한 과정에 비하면 대출 단계가 복잡해졌다. 예전엔 아이들과 도서관에 가서 보고싶은 책을 즉흥적으로 팍팍 뽑아왔다. 지금은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책 제목을 검색해서 신청하고, 오늘 예약 신청하면 내일 수령할 수 있다. 예전엔 1인당 10권씩 대출했는데 지금은 5권씩만 대출 가능하다. 제일 힘든 건 어떤 책을 대출할지 고르는 일이다. 온갖 초등 추천도서 목록은 이미 다 써먹은 지 오래여서, '자료 검색 옵션'의 등록일, 표제, 저자, 발행자, 발행 년의 오름차순 내림차순을 번갈아 클릭해가며 아이들이 안 읽은 책을 삽질하듯 뒤져야 한다. "얘들아 이 책 읽어봤어?"라며 물어보고, 안 읽어봤다고 하면 온라인 서점에서 그 책을 검색하여 아이들에게 취향 여부를 묻고(도서관 홈페이지엔 책 소개는 전혀 안 되어 있다), 아이들이 최종 OK 해주면 대출 예약을 건다. 이걸 스무 번만 하면 된다. 한 번에 스무 권 꽉 채워 빌려도 순식간에 읽어버려서, 이 일은 2,3일 사이로 반복된다. 어쨌든 코로나 시대의 도서 예약 대출은 진심으로 고마운 서비스인 동시에 시간과 품이 드는 일이다. 그림 그리는 걸 살짝 미뤄놓고 수십 분에 걸쳐 아이들 책을 신청했다.


이젠 정말 그림을 그려야지- 할 때 둘째가 다가왔다. 생일선물 이야기를 또 꺼냈다. 보름도 더 남은 생일인데 한참 전부터 연일 자기 생일 선물을 고른다. 문제는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번복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오늘은 그 증상이 심화되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장난감 하나를 한참만에 골랐는데 몇 분 있다가 다시 와선 그 장난감이 싫어졌으니 다른 걸 고르겠단다. 그래서 또 수십 분에 걸쳐 다른 걸 골랐다. 하지만 또 몇 분 후 재차 와서 아무래도 그것도 싫다며 다른 걸 고르겠단다. 또 골랐다. 조금 뒤, 다시금, 싫단다.


아이가 오고 갈 때의 틈으로 작은 시간 조각이 생겼고, 난 그거라도 주워야 했다. 삶의 다양한 배역을 맡으면, 손바닥으로 잔 먼지를 조심스레 쓸어 모아 두꺼비집을 짓듯 살뜰하게 시간을 다루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사금파리 한 조각 같은 시간을 주워 깨작깨작 그림을 그리는 수밖에 없구나. 초침의 작은 움직임과 태블릿 펜의 까딱임이 리듬을 같이 한다. 연속적인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이 생활은, 아무리 겪어도 적응이 잘 안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놓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사지를 푸드덕거리지만, 공과 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집안에서의 내 모습은, 불시에 방문하는 손님을 위해 24시간 대기하는 GS25나 CU 같은 편의점에 가깝다. 채소를 썰다가도 아이가 내는 난센스 퀴즈를 풀어야 하고, 다림질을 하다가도 김춘추가 무열왕이 맞는지 아닌지 가르쳐 줘야 하고, 그림을 그리다 말고 고릴라가 초식인지 육식인지 대답해 줘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뾰족한 해답이 있는 건 아니다. 이 집은 나만의 집이 아니고 나는 나만의 내가 아니다. 내가 집중해서 그림 작업을 하거나 쾌적하게 책을 읽고 싶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지금부터 몇 시까진 엄마에게 접근하지 말라던가 찍소리도 내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요구하고 싶진 않다. 내가 시범 삼아 어릴 때 그런 말을 많이 들어봤더니 참 별로였기 때문에. '조용히 있어라,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저리 가라'라는 말에 잘 순종할수록 어른들은 비로소 날 좋아해 주는 것 같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은 '빅 브라더'에 대하여 "그는 나처럼 실체가 있나요?"라며 묻고, 오브라이언은 "자네는 존재하지 않는다네."라고 답한다. 1980년대의 어느 날, 미소 지은 내 어른은 나를 가리키며 "쟤는 집에 있을 때, 마치 없는 애 같아."라며 자랑처럼 말했고, 그걸 듣는 또 다른 어른은 "어머 너무 좋겠다."라고 부러워했다. 그날이 다섯 살이었는지, 여섯 살이었는지, 아무튼 아주 어렸던 나에게 그 대화는 깊이 있게 각인되었다. 그때부터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삶을 추구했다. 그 당시 내가 숨 쉬듯 했던 공상은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나의 모습이었다.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내가 여기 있다고 외쳐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는 나에게, 구조선은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아이의 심심하고 허전한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 어린이를 향한 어른의 다정한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 일을 하다가도 아이들이 다가올 땐 할 수 있는 한 받아주고 싶었다.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해내는 적응 안 되는 생활이 내 것이라 인정하며, 감사히 살아내는 것이 소명召命이라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런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알기는 안다. 그런데도 가끔은 오늘처럼 북받치는 것이다.


맘에 쏙 드는 것을 찾아내지 못해서 지쳤는지 둘째는 울기 시작했고, 울음은 갈수록 격해졌다. 아이가 생일선물을 뒤집을 때마다 내 마음도 슬슬 뒤집어졌다. 하지만 우는 이유, 계속해서 고르고 바꾸는 이유를 알기에 화낼 수 없었다. 아이를 안고 물었다. "생일 선물 고르는 게 어려워?" 끄덕끄덕. "너무 심심해서 재밌는 장난감이나 책을 사고 싶은데, 아무거나 사면 계속 심심할 것 같으니까 자꾸 바꾸는 거야?" 끄덕끄덕. "아직 생일 많이 남았으니까 계속 바꿔도 괜찮아. 그런데 오늘은 벌써 여러 번 골랐으니까, 또 바꾸고 싶으면 이젠 내일 찾아보자." 아이는 통곡한다. 그래, 얼마나 심심할까. 박물관도 도서관도 학교도 자유롭게 갈수 없고 친구를 집에 데려올 수도, 친구 집에 놀러 갈 수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이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저 슬픔을 내가 다 해결해 줄 순 없다는 현실에 무력하고 피로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이어질수록 내 목구멍에선 무언가 꽉 걸린 느낌이 커져갔다. 그때 남편이 퇴근했다. 벌써 저녁 차릴 시간이 되었다고? 태블릿엔 겨우 선 몇 개 그은 형편이었다. 어느새 낮이 다 끝났다는 게 어이없었다.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식도인지 기도인지, 어디선가 마치 검은색일 것 같은 뻑뻑한 덩어리가 급속 팽창했다. 부스스 일어나 옷을 비틀비틀 갈아입었다. 둘째가 울다 말고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 엄마 어디 가요?" "... 모르겠어." 큰애도 물었다. "어? 엄마 어디 가요?" "몰라." 남편에게 산책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둘째가 신발장 앞까지 와서 다급하게 또 물었다. "엄마 언제 와요?" "몰라, 몰라."


갈 데도 모르면서 그냥 나왔다. 눈물이 막 막 나왔다. 검정 벙거지와 마스크 덕에 눈물이 곧잘 숨겨져서 다행이었다. 나사 한 개 빠진 사람처럼 아무렇게나 아무 곳으로 걸었다. 왜 겨우 이따위 작은 일에 북받치고 난리지? 와, 도대체 무슨 포인트 때문에 우는 거야. 알 수 없는 무거운 마음을 큰 숨으로 푹푹 덜어냈는데 꽉 막힌 목 때문인지 빨리 편해지지 않았다.


이 하루를 살아보라고 오늘 치 생명을 주신 분을 호출했다. 걸으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내 기도는 언제쯤 고차원적이 될까. "그때에 그들이 고통 가운데서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시 107:7)" 무인도 모래밭에 돌멩이로 SOS를 삐뚤빼뚤 늘어놓은 것 같은 기도와 그런 기도조차 외면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몇 분 걷다가 골목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 맞은편 건물 위에 걸린 해가 벌건 햇빛으로 나를 확 밀어냈다. '이 빛이 있는 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오늘은 반드시 꼭 그리고 싶었다고!' 날 밀치며 하루의 끝으로 달아나는 햇빛을 온몸으로 못 가게 막아내며 걸었다. 긴 그림자를 펄럭이며 빛의 진로를 방해했지만 소용없었다. 하늘은 곧 연보라색으로 바뀌었고, 햇빛은 아까운 낮과 내 그림자까지 몽땅 움켜쥐고 도망쳐버렸다.


난 시간표대로 살아야 마음이 편한 스타일이었다. 20대 땐 일주일 타임 테이블을 빼곡히 작성하며 산 적도 있다. 내 생활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은 성취감과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관리는 이제 꿈도 못 꾼다.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매번 허물어질 계획인데 촘촘하게 구상한 계획은 아이고 의미 없다. 그렇다고 또, 너무 되는대로 사는 건 견딜 수 없어서, 굵직한 마지노선을 세워놓고 '최소한 이것만은 하고 싶어'하며 산다.

그런데 때론 오늘처럼, 그것마저 못하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유연하게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기면 될 텐데, 내가 바라는 최소한의 규칙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이 자꾸 침범당하는 것이, 선약도 없이 불쑥 그런 날이 찾아온 것이 속상했다.

언제까지 잘게 조각난 시간을 쓸어 모아야 하는 걸까. 일정한 시간을 확보하여 내 일을 하는 것은 욕심일까. 나의 시간 관리에 뭔가 허점이 있는 걸까. 나는 아이들을 무인도에 보내고 싶어 하는 무자비한 사람은 아닐까. 내 삶은 죽도 밥도 안되는 생활일까. 아니면 죽도 끓이고 밥도 짓는 1석2조 생활일까. 탁월함도 단정함도 몰입도 없는 파편 같은 생활을 끌어안는 것은,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만 해내기엔 만만찮다. 지극히 높은 하늘이 주신 소명다웠다.


낮을 붙잡지 못한 나는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신호등 앞에서 멍하게 서있기도 했다. 목적도 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봤다. 아무 손님도 없는 가게에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왔다. 이젠 어디로 걸어가야 하나 멍하게 먼 곳을 쳐다보았다. 뭐 이렇게까지 갈 데가 없을까. 갈 곳이라곤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내 책상이 있는 우리 집뿐이었다.


'... 식구들 배고프겠네.'

이 기분으로 밥은 못 차리겠으니 시장으로 갔다. 맛없어 보이는 김밥 네 줄과, 손바닥보다 조금 큰 팥 도넛 두 개를 샀다. 이제 집으로 가야 했는데 들어가기가 싫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흐트러진 일상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뗐다. 낮이 다녀가며 흘린 햇빛이 골목에 사금파리처럼 떨어져 있었다. 하루의 80%가 지난 시간이었으나 밤은 미처 되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 유익한 가르침이 생각난다. "그림을 그리다가 너무 이상해 보이고 망친 것처럼 보이면, 그 게 80% 완성한 것이다." 80%의 거지존. 견딜 수 없고 잘라버리고 싶은 무질서한 상태. 20걸음만 더 가면 마침내 완성되는 자못 많이 온 상태일 때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추해 보이는 지점이란 소리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정말 그랬다. 거의 다 그려가는 마당에 이게 뭐가 되려나 싶고, 꽤 많이 그렸음에도 갈아엎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꾹 참고 조금 더 매만지다 보면 그럴싸하게 완성이 되곤 했다.


오늘 하루의 80% 지점, 거지존의 영역에서, 꼬인 것들을 참아내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덜 완성된 그림처럼 마음이 거지 같다. 창피하고 힘들다.


만감이 서린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 식탁에 검은 봉지 두 개를 툭 올려놨다. 안방에 들어가니 엉거주춤 서 있는 둘째가 뜸 들이다 말을 걸었다. "응... 엄마, 아까 내가... 많이 울어서... 미... 안... 해... 요..." 흐느낌 때문에 한 문장 속의 몇 개 되지도 않는 음절들이 조각 나고 있었다. 둘째를 꼭 안아주었다. 나도 눈물이 나려 했지만 꾹 참았다. "괜찮아... 엄마가 갑자기 나가버려서 걱정하고 있었어?" "네... (훌쩍훌쩍)" "엄마가 마음이 답답해서 바람 쐬고 왔어.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아이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안아주고 얼굴을 쓸어 주었다. 진정이 된 아이는 이내, 내가 없을 동안 자신이 그렸던 그림을 보여주었다.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 커다란 달력 뒷면에 개미집을 빼곡히 그리며 심심함을 달래던 어린 내가 생각났다. 아이는 그때의 나처럼 심심함을 달랬나 보다.


'지금 눈물을 참은 것처럼 아까도 조금 더 참아볼걸. 그냥 잠시의 거지존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데, 생각과는 달리 애먼 눈물이 확 차오른다. 아이에게 들킬까 봐 집안 귀퉁이 어디로 들어가 문을 닫고, 눈물 조각을 자꾸만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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