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와 짓거리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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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에 50을 더하면 외할머니 나이가 된다. 할머니는 그 옛날에 피아노를 배우셨다. 대단한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신 적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전쟁은 할머니에게서 자라나던 피아니스트의 꿈을 말소해 버렸다. 고향도 피아노도 뒤로한 채 피난길에 올랐다. 자녀들을 먹여 살리려고 몸피만큼 커다란 책 꾸러미들을 양손에 쥐고 날랐다. 이집 저집 방문하며 책을 파는 고된 일을 하다 보니 손가락이 휘어져 버렸다. 연주자의 손가락이 망가지도록 가족을 부양했지만 할머니는 ‘내가 밖에서 일하느라 자녀들을 더 잘 돌보지 못했다.’라며 심심찮게 자책하셨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점점 기억을 잃어 가는 중이다. 요양원에 있지도 않은 당신의 사랑하는 피아노를 어제도 그제도 연주했노라고 말씀하신다. 할머니의 뇌가 조금씩 꺼져가는 듯한 저런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결린다. 그러면서도 상상 속에서든 무의식에서든 할머니가 다시 피아노를 치고 계시는 것 같아서 묘하게 기뻤다.


엄마는 결혼 후 교사의 직업을 내려놓고 전업주부로 사셨다. 풀타임으로 자녀를 돌보고 살림을 꾸리셨다. 밤에는 자주 가위에 눌려 고통스러워하셨고, 낮에는 시집살이와 친정 형제들 챙기기 등으로 고달프셨다. 상황도 힘겹고 체력도 약하셨지만 오래도록 가족들을 성실하게 챙기셨다. 그러면서도 어쩐 일인지 스스로 ‘나는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집에서 논 적이 없다. 엄마는 당신의 몸을 갈아내어 가족에게 온갖 복지를 제공하셨고, 가족들은 그것을 값없이 누렸다. 어느덧 머리가 하얘진 엄마의 유일한 취미는 가드닝이다. 요즘은 베란다 꽃들이 당신처럼 시들거려 보기 싫다고도 하신다. 그렇지만 여전히 생일 선물로 제라늄 화분 다섯 개를 고르셨다. 엄마가 거리 화단이나 꽃집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는 게 어쩐지 안심이 된다.


할아버지, 아빠와 마찬가지로 할머니와 엄마는 가족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셨다. 그다음 세대인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역할을 로테이션으로 돌려가며 해내다 보면 정신분열이 생길 것 같다. 일상을 살고 있는 것뿐인데 한 달 내내 코피가 난 적도 있다. 어릴 땐 나의 어른들을 향한 섭섭함에 잠 못 이룬 날도 있었지만 ‘여자 어른’이 되어보니 그런 감정이 조금 옅어지기도 했다. 내 기름을 짜내며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부모님의 노고가 헤아려지는 것이다.


‘여자 어른’의 삶은 난해한 고차방정식과 비슷했다. 수포자인 내가 풀기엔 버겁게 출제된 문제였다. “집에서 놀면 안 돼. 그동안 공부한 게 얼마냐. 너도 전문적으로 일을 해봐라. 요즘 일하고 있니? 그런데 집안 꼴이 이게 뭐냐. 세상에, 살림 좀 똑바로 해라. 사람들이 욕한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똑바로 키워라. 걔들 공부는 좀 하니? 근데 요즘 일하고 있는 거지? 여자도 돈 벌어야 해. 얼마나 버냐?” 결혼 후 여러 어른들로부터 꾸준히 듣는 말이다. 이중 메시지를 넘은 삼중 메시지. 이걸 다 해내는 사람이 어느 시대에 어디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 주위에 저런 호모 멀티multi엔스는 한 명은 고사하고 0.5명도 없다. 안타깝게도 그 인류는 과로사로 모두 멸종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 다채로운 요구가 빗발치는 말은 듣기만 해도 목이 졸리는 것 같다. 한데 괴상하게도 나는 그 밧줄에 스스로를 결박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관련 일을 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고 손끝의 감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 가족을 부양하는 남편의 무지막지한 짐을 나눠지고 싶기도 했다. 그때부터 쓰리잡 또는 그 이상을 뛰는 삶을 시작했다. 아이들 주 양육자는 나였고 집안일도 내가 주로 했으니 살림, 육아, 재택근무의 공을 저글링으로 헉헉대며 받아 냈다.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건드리다 보니 어느 것에서도 진득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 내가 맘에 안 들었다. 애면글면 산다고 사는데 삶의 어느 부분은 꼭 구멍이 뚫리곤 했다. 틈을 노리던 비난은 '기회는 이때다' 하며 구멍을 통해 잽싸게 날아와 익숙한 말로 날 가격한다. '살림은? 애들은? 일은? ' 뭘 하든 심판받는 것 같았다.


최근엔 '실패자'라는 판결 끝에 '금식'이라는 형벌을 당한 기분이다. 반복되는 실패 끝에 슬럼프까지 와서 내 수입은 월급에서 알바비, 알바비에서 부업비 수준으로 차차 줄고 있기 때문이다다. 돈도 못 벌면서 뭘 먹냐,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능력이 달리고 돈을 잘 못 버는 사람은 식욕도 죄가 되나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삼시 세끼와 간식을 씹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대책 없이 표표히 날아다니고 있다. 슬럼프에서 빠져나온 과정, 별것 없는 일상 같은 걸 글로 쓰고 있다. 그 글에 어울리는 그림도 그린다. 일하느라 못 읽었던 책을 몰아서 읽기도 한다. 그런 '짓'들이 슬럼프에서 회복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 짓거리를 하며 전에 몰랐던 신선한 즐거움과 의미를 맛볼 수도 있었다. 회복된 지 이미 꽤 지났음에도 멈춤 없이 돌아가는 자본의 컨베이어 벨트로 복귀하지 않는 이유이다.


밥벌이를 안 하고 못하는 나는, 이 나이에 내가 하고 싶은 짓을 한답시고 아둥바둥한다. 피곤할 때마다 바로 신호를 보내는 잇몸이 오랜만에 부어올랐다. 귀가 푹푹 쑤시고 어깨가 꽝꽝 뭉쳤다. 시간을 쥐어짜 책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짓에 매달리느라 이렇게 되었다. 그렇게 해도 원하는 만큼 충분히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이 짓거리는, 빛도 못 보고 증발해버린 셀 수 없는 그림들을 향한 애도의 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없이 흐트러진 마음이 문자라는 옷을 입고 눈앞에 정렬될 때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이 '짓'이 언젠간 '일'로 연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 없는 기대감을 가져도 본다.


"짓"이라고 발음할 때, 그 단어에 묻어 있는 업신여기는 듯한 뉘앙스는 최대한 배제하여 소리 내어 본다. '짓'은 소중하며 '짓'도 일이다. 나는 항상 일하고 있었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낮은 자리 숫자로 표기되는 일이나, 아예 숫자로 치환되지 않는 일도 일이다. 아라비아 숫자에 절여진 세상이 나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나까지 그것에 감염될 필요는 없다. 나를 '쓸모없는 인적 자원'이라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목욕하는 새처럼 몸을 푸드덕거려 본다. 몰상식한 낙인이 내게 각인되는 것을 막는다.


‘뭘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을 품고 일과 짓을 한다. 답은 아직 못 찾았다. 그래도 어제 잃어버렸던 양파 반 개는 찾았으니 기분 좋다. 쓰고 남은 양파를 락앤락 통에 넣은 후 그걸 냉장고가 아닌 싱크대 하부 장에 넣어뒀던 것이다. 아이는 부엌 깊은 곳에서 양념 전장김을 용케 찾아내더니 잘라달라고 했다. 김 자를 때 묻은 기름과 소금을 비누로 씻었다. 씻은 손은 깨끗함이 유지될 새 없이 다시 먼지로, 음식물로, 고무장갑으로 덮인다. 요즘은 일할 때 양손의 가운뎃손가락이 신경 쓰인다. 왼쪽은 관절이 아프고, 오른쪽은 손톱 틈으로 병균이 들어갔는지 일주일 넘도록 노랗게 곪아 있다. 집안일할 때나 키보드 두드릴 때마다 내 몸에 중지라는 게 두 개씩이나 붙어있다는 걸 인지하게 된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해보니 몸속은 이보다 더 건강할 수 없는 상태였다. 모든 장기가 양호하며 암은 편린조차 없었다. 나는 내 몸속에서 쌩쌩하게 돌아가는 심장과 위, 자궁을 느끼지 못한다. 그와 달리 내 ‘삶’은 중지들처럼 ‘느껴진다'. 내 삶이 신경 쓰인다. 정신없고 덜그럭거린다. 삶에게 ‘중병은 아닌 것 같지만 정상도 아님’이라는 모호한 자가 진단을 내린다. 책과 그림과 글이라는 셀프 처방약도 복용한다.


약을 삼키며 내가 미세하게 회복되는 것은, 세상 한쪽 구석이 아무는 것과 닿아 있을까. 개인과 사회는 구별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맞물린 덩어리이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 적은 일자리, 여성과 노동이라는 거대 담론에, 나는 나의 짓거리들로 꿈틀꿈틀 응답해본다. 클라이언트가 요구하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써 본 적 없었던 글을 끄적이고, 내 맘대로 고른 책을 읽는 것은 세상에 발 딛고 사는 내 삶의 고차방정식을 풀려는 가상한 노력이다.


무엇보다 책 읽는 기쁨이 크다. 슬럼프 이전까진 일하는 것에 자투리 시간을 몽땅 할애하느라 원하는 만큼 책을 못 읽었기에 더 그런가 보다. 돈과 성공을 강조하는 천박한 말들이 근면 성실하게 귀를 괴롭히는 세상에서, 사람 냄새를 풍기며 천천히 흐르는 깊은 문장들은 억한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이토록 고운 문장들을 수집하는 것이 절대로 삶의 허비가 될 수 없음을 당연하게 깨닫게 된다. 책, 그림, 글의 순환에서 하차하지 않고 삶의 낱장을 당당하게 허비할 담력을 얻는다. 책의 모서리를 접으며, 모든 걸 다 해내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폭력적인 착각도 접는다. 난 할머니와 엄마처럼, 가족도 아쉽고 나도 아쉽다. 나도 중요하고 가족도 중요하다. 우리 집의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는 건 내 목표가 아니다. 그렇게 된다고 한들 그것이 가족들에게 궁극적으로 선한 일이 될 수 없다. 가족들을 기꺼이 섬기는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에도 기꺼운 마음을 가져 본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가정을 돌보는 일.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해내고 있는 나를 대견하다고 생각해본다. 퇴근한 남편이 내게 "고생 많았지요?"라며 다정하게 안부를 물을 때 민망해하지 않고 고마워하기로 한다. 잠자기 전 “오늘도 수고했어요, 엄마”라며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큰애의 말에 ‘난 오늘 정말 수고했을까.’라는 의심으로, 꽉 찬 하루를 홀대하지 말아본다. 자원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 본다. 비실용적인 삶의 정점에서 어엿이 야호-를 외쳐본다.


할아버지와 아빠의 삶과 마찬가지로, 가족들에게 한없이 떼어주느라 바빴던 할머니와 엄마의 삶은 너무 많은 일과 염려로 맵고 시었다. 할머니와 엄마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소리와 향기는 그래서 더욱 희귀하다. 내일은 그 두 가지를 내 삶 방정식 미지수 자리에 대입해볼까 한다. 그런 뒤 허덕지덕 일하는 나를 새삼 토닥여주고 요즘 빠져있는 짓거리들을 향해 조금 더 보무당당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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