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위기는 너무나 빨리 찾아왔다. 자격증을 따고 동네 내과에 취직한 지 겨우 두 달 만이다. 집에 돌아와 울고 불며 가족들에게 하소연하는 날들이 매일같이 되풀이되었다. 역시 연습은 실전과 다르다. 실습이 동물원이었다면 직장은 정글이었다.
일을 너무 못한다. 실수가 많다. 느리다. 두 달이 넘었는데 왜 이모양이냐...
나는 아침에 누구보다 일찍 출근했으며, 모르는 것을 깨알같이 메모하고 매일 출근 전에 복습하는 중이었다. 나이 든 신입으로서 나이 어린 선임들에게 나대지 않으려고 정중한 높임말을 골라 쓰고 있었으며 아줌마의 최대 단점인 수다스러움을 커버하기 위해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성실하고 정직하고 친절했다!( 내 생각에는)
그러나, 나는 매일같이 위의 말들을 들어야만 했다! 그들의 눈에는 나는 손과 머리가 쌍으로 느리고, 빠릿빠릿하지도 못하면서 불필요하게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게다가 부담스럽게 나이까지 많은, 늙은 신입일 뿐이었다. 그동안 버텨왔던 자존감이 한 알 한 알 모래알이 되어 흩어지다 못해 와르르 무너졌다.
"이모, 원래 직장이 그런 거예요. "
견디다 못해 병원에서 방사선사로 일하고 있는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거친 쌍욕을 날려주며 이모의 퇴사를 응원하리라 기대했던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당장 사직서를 바닥에 던지고 은행 빚을 얻어 동네에 공부방을 차려보려던 야무진 사업 계획은 말도 꺼내 보지도 못했다. 졸업 후 5년간 한 병원에서 쭉 근무하고 있는 서른 살 조카에게 '직장에서 잘 버티는 법'에 대한 조언과 훈계를 들으며 한 시간 동안의 통화를 끝냈다.
근성이 부족한 못난 이모가 된 것 같아 갑자기 창피해진 나는 전화를 끊고 축 처진 어깨로 혼자 공원을 걷다가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으로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려고 카페에 들어갔다.
토요일 저녁 신도시의 중심에 자리 잡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매우 바빴다. 직원들은 마치 거대한 커피 제조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손님에게 주문을 받고, 주문서를 보며 음료를 만들고, 주문 순서대로 음료를 건네는 과정이 직원들 간의 한치의 어긋남 없이 정확하고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늘 오전 병원 접수대에 앉아 얼굴이 벌겋게 되어 버벅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토요일 주말을 맞아 미뤄두었던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들이 접수대로 갑자기 몰려들자 당황한 나는 그들이 좀비 떼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환자 접수, 의사 오더 받기, 오더대로 환자 처치하기, 치료비 수납하기 과정이 접수대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하자 병원 업무는 순식간에 마비되었고 환자들의 짜증과 직원들의 질타가 소나기처럼 내려 꽂혔다.
오늘 아침, 그 아수라장의 그 핵심에 내가 있었다.
나는 왜 저 알바생들처럼 노련한 노동을 하지 못하는가.
학벌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고
나이가 좀 많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그만큼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애써 가라앉히다 보니 문득, 살면서 남과 몸으로 합을 맞추는 경험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머리로도 맞춰 본 적이 없었다. 육아와 공부와 강사일만 했던 나에게 동료들과 톱니바퀴의 날을 맞추듯 세밀하게 협업하는 일은 너무나 낯설고 어려웠다. 게다가 오랜 공부로 인해 나는 두뇌는 특화되어있지만, 몸은 퇴화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스물을 갓 넘긴, 맑은 얼굴을 하고 있는 알바생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시원한 커피를 주문 5분 만에 신속 정확하게 나의 손에 쥐어준 저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은 세상 속에 뛰어들어 동료들과 함께 세상을 온몸으로 겪어 내고 있지 않나.
시험공부를 하면서 세상의 부조리를 다 짊어진 것처럼 살았지만 정작 나는 공부를 핑계로 세상 밖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무래도 직장을 때려치우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버티고 이겨내지 않으면 영원히 세상을 배우지 못할 것 같다. 본격적으로 노동을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입으로만 세상이 어쩌고 저쩌고 나불 내며 늙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비록 다음 주 토요일에 또 울면서 조카에게 전화를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