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시험 중독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 같다. '같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녀석의 끈질긴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수험 생활은 결코 다시없으리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꼬박 일 년 육 개월이 걸렸다.
새로운 직업을 정한 후 재빨리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한 눈을 팔 틈조차 주지 않고 서둘러 나를 몰아붙였던 방법은 꽤 괜찮았다. 새 직업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우면 시험이고 나발이고 잠에 곯아떨어지기 바빴기 때문이다. 확실히 몸이 피곤하면 잡념에 빠질 확률이 낮아진다.
신속한 취업과 더불어 시험 포기의 과정을 블로그에 올린 것도 중독의 고리를 끊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글을 쓰는 시간은 끊임없이 나를 위로하는 과정이었다
. 이 세상과의 경쟁에서 졌더라도 울지 말고 말해. 짜샤.
스스로를 패배자로 인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의 포기가 현명했다는 것을 나자신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나는 그냥 글을 썼다. 때로는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남을 욕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철밥통 공무원이라는 삶의 목표에서 과녁이 비껴나간 것은 욕지거리가 절로 올라올 만큼의 분노와 상처를 나에게 주었지만 꼭 그런 나쁜 것만 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처절하게 실패하지 못했더라면 평생 알지 못했을 수도 있는 것들을 1년간 나에게 속성 교육해주는 역할도 했다.
내가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약 이십 년 후 비정규직을 학교의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는 좀벌레 정도로 취급하던 어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처럼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안정된 삶에 과다 도취되어 공직에 편입하지 못한 사람들을 능력과 노오력 부족으로 몰아붙이지는 노답 꼰대가 되어 있지는 않았을까.
그것도 아니면, 낮은 곳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교양인의 탈을 쓴 천박한 속물의 그 어떤 중년 여성 정치인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공직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험 준비를 하는 수험생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미 조금씩 싹수가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운 좋게 합격해서 정규직의 문을 열고 그 사회에 생각 없이 휘말렸다면, 혹은 일 년간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나는 나에 대해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성찰하지 않으므로 성숙의 기회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그들의 안정된 고용과 탄탄한 노후는 몹시 부럽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이제는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다. 삶은 사람마다 저마다의 방식이 있고 어떤 삶이 행복한지는 자신만이 안다.
인생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자로 재듯이 수치화하여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자를 들이대며 남의 삶을 평가하는 오만한 짓도, 내 자의 눈금이 남들보다 적다고 울상 짓는 바보짓도 하지 말자.... 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이 아닌 나의 삶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실패한 자의 자기 합리화 혹은 성공하지 못한 자의 자기변명이 아니냐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실패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글로 옮기면서 이상하게 내가 조금씩 행복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든다. 생각해보니 인생을 통틀어 나 자신을 마음에 들어한 적은 단연코 이번이 처음이다.
최저임금 노동자로 살고 있으면서도 누가 뭐래도 내가 괜찮으면 된 것이다. 안쓰러운 자뻑이라 해도 괜찮다. 속이 빤히 보이는 허세는 애잔하지만, 그래도 나름 귀엽지 않은가. 적어도 교묘한 속물보다는 낫다. 정치가보다는 차라리 조폭으로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