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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체리 Jun 09. 2020

멸치국수가 내 최애푸드가 되다니!


                                            

멸치국수가 내 최애 푸드가 될 줄이야



그 멸치 국숫집 미리 예약 좀 해놔.   

베트남으로 출장을 가 있던 남편에게서 뜬금없는 문자 한 줄이 도착했다.  나는 암호 같은 이 문장의 의미를 단번에 이해했다. 이 멘트를 직역하자면  '가족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너무나 그립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여기서 일은 한다마는 어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라는 뜻이다.     


멸치국수는 남편과 나의 소울푸드이다. 우리는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이 소울푸드를 먹으러 동네의 작은 국숫집으로 간다. 국수를 먹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다. 우선,  설탕을 반으로 줄였다는 믹스 커피를 마시며 간단한 아침 대화를 나눈다. 일주일의 경과보고가 끝나면  대청소를 한 다음, 주섬주섬 운동복을 꿰차고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선다.


국숫집에 도착하면 녹음기를 틀어 놓듯이 매번 멸치국수 두 개와 김밥 한 줄을 주문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같은 시간에 같은 메뉴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맛있어? 그 멸치국수가?"  
   

토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굳이 사 먹는 음식이 겨우 멸치국수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멸치국수를 먹으러 갈 바에는 아예 늦잠을 자는 게 실속 있다는 의견들이다. 하긴 나도 예전에 결혼식에서 잔치국수가 나오면 갈비탕이 안 나왔다고 투덜거렸었다. 공짜로 준다 해도 반갑지 않았던 그 음식이 이제는 남편과 나의 소울푸드가 되었다니.      

     

멸치국수의 담백함과 김치의 매콤함의 조합이 마흔을 넘어서자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멸치국수가 우리의 소울푸드라는 직함을 얻게 된 결정적 이유는 꼭 그 맛 때문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멸치국수의 맛과 더불어 그것을 먹으러 가는 과정이 중요했다. 그러니까 멸치국수는 우리의 토요일 오전 일과의 루틴(Routine)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그 국수 집은 우리 집에서 도보 삼십 분 거리에 있다. 상가와 아파트로 연결된 그 길을 걸으며  남편과 나의 대화도 이어진다. 자영업자들이 살기 힘들어진 이야기, 예전 살았던 동네 이야기, 아파트 값 이야기로 시작해서 돈걱정 노후 걱정에  회사에서 꼴 보기 싫은 직원 뒷담화와 현실 푸념이 끝나갈 때쯤이면 식당에 도착한다.의례적으로 묻긴 하지만,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의  주인아주머니에게 멸치국수와 김밥 한 줄을 주문해서 먹는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귀갓길에는 매번 들르는 카페에서  뜨거운 라떼를 테이크 아웃하여 둘이서 나눠마시며 과정이 첨가된다. 시럽을 두 번 꾹꾹 눌러 담아 옛 다방 커피맛이 나는 라떼와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우리는 부쩍 나빠진 체력 이야기, 큰 아이 등록금 걱정으로 시작해서 자식 걱정, 부모님 걱정이 한없이 늘어진다. 그러다가 만날 때마다 돈 자랑하는, 남편이 대기업에 다닌다는 아래층 아줌마를 속물이라며 그보다 더 속물스럽게 물어뜯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토요일 오전의 우리의 루틴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각자 영화를 보거나 낮잠을 자거나 공부를 한다.      

     


-일상의 사소한 반복을 가치 있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거대한 세리모니나 이벤트를 이어가며 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리추얼>의 서문 중에서
          

우리에게 인생의 대단한 세리모니가 있었던가.


 나는 시험을 보는 족족 실패했으며 남편 또한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대기업도 공기업도 공무원도 아니므로 고용 안정은 남의 일이며, 아이 둘을 키우고 늙으신 부모님을 건사하다보면 로또를 맞지 않는 한 매일 돈이 부족할 것이다. 우리에게  가슴 벅차고 아찔한 인생의 화려한 세리머니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가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내가 공유한 일상의 힘이 크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멸치국수'가 있다. 사천 원짜리 푸짐한 멸치국수와 값이 싸면서도 대용량인 달콤한 카페라떼 한잔, 매일 미세하게 변화하는 길거리 풍광처럼 인생의 굴곡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대화가 좋다. 매주 반복되어도 전혀 지겹지 않다.인생의 세리머니 대신 내가 발견한 행복 틈새 상품이다.   

        

시험에 합격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시험에 합격하기 전에는 나의 행복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행복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복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제는 SNS에 올릴 수 없는 행복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행복은 주관적이므로 굳이 남들에게 보여주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남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지만, 나에게는 행복을 주는 멸치국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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