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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체리 Oct 19. 2020

시험을 포기하고  내가 알게 된 것들


시험공부를 내팽개친 지 삼 년쯤 지났다. 아니, 내가 시험에게서 튕겨나갔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어쨌거나 공포 영화 '링'의 한 장면처럼, 나는 깊은 우물 속에서 빠져나왔다. 어둠의 공간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마음이 완벽히 후련해지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나는 동굴 속에 너무 오래 있었다.  





그때 내가 합격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에게 그는 이번에는 제발 좀 동창회나오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그동안 그 친구의 제안을 번번이 거절해왔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낯을 가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몇십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서로의 늙음을 확인하는 그 어색한 만남의 첫 순간을 견딜 자신  없었다. 동창회 룩을 코디하기 위해 쇼핑몰을 뒤지는 것도 귀찮기도 했고, 사실 타고 나갈 자동차도 몹시 구렸기 때문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동창회에 나가지 않는 더 내밀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내가 현재의 나를 당당히 드러낼 만큼 잘 살고 있지 않다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가끔 그 친구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생각했다.


 '내가 지금 시험에 붙어 교사가 되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흔쾌히 그 모임에 나갔을 거야'.


내가 만일 합격했다면 지금과는 분명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친구의 호의를 여러 번 거절하는 미련하고 답답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은 아직도 나의 일상에 깊게 스며있었다. 나는 우물 속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에 아직 그곳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


아직 완전히 갱생한 처지도 아니면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러므로 철저히 나를 위한 것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나 스스로를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실패했으므로 결국 영점으로 돌아와 버린 내 인생의 계기판에 적어도 이 십 점 정도는 '경험 점수' 혹은 '노력 점수'를 남기고 싶었다. 그것도 안되면 '동정 점수'라도.


또 다른 이유 시험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합격 수기를 다 읽기도 바빠죽겠는데 누가 내 실패까지 읽겠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러나

주식투자할 때 비관론과 낙관론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신중히 투자 방향을 결정해야 하듯, 우리는 아흔 개의 성공담을 바구니에 담을 때 열 개 정도의 실패담도 함께 담을 필요가 있다.




투자 이야기가 뜬금없지만, 인생이란 결국 투자와 같이 선택과 후회의 연속이다. 애써 모은 종잣을 베팅했지만 한 푼도 수익을 내지 못한 망한 개미의 경험을 전하는 마음으로, 시험을 포기하면서 내가 느낀 것들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1. 눈을 가린 경주마는 결승점을 모른다



시험에 매달리는 몇 년 동안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미처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맹목적인 질주 후에 안대를 풀어보니 나는 결승점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분명히 더 행복해지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는데 종착점에 닿아보니 부정, 열등감, 불평이 코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원한 삶의 과녁에서 한참 빗나가 있다는 것을 시험을 포기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서 수시로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시험을 준비하는가?' 이  질문에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만일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본 지 오래라면 당신은 이미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질문을 던져 본 지 백만 년쯤이나 지났다고 느꼈던 그때쯤의 나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용기가 없어서 시험의 발목을 구차하게 잡으며 현실 도피를 하고 있었다.




2. 퇴로가 없으면 막다른 에 몰린다


나의 뇌는 우물 속 생존에 최적화된 크기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세상에는 직업이 교사나 공무원밖에 없고, 그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젊음과 인생을 송두리째 걸 수도 있다'는 그 생각이 매우 편협했었다는 것을 나는 우물 밖으로 빠져나와서야 알게 되었다. 공무원은 고용 안정성과 노후 연금을 갖춘 매우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직업 선택에서 이 두 가지 기준이  매우 중요하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직업을  오직 이 두 가지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안정성과 노후보장,  이 둘 중 하나가 빠져있거나 혹은 둘 다 있지만 내 기준을 채울 만큼 만족스럽지 않은 직업이라고 해도 그 일을 플랜 B로서 걸어놓아야 한다. 내 영혼과 시간을 모두 갈아 넣어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준비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거나 혹은  '내가 그동안 공부한 게 있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이력서에 경력 한 줄도 채울 수 없는 현실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3. 세상에 '꼭, 반드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험에 일곱 번이나 낙방하고 나서 알게 된 것은 세상에는 '반드시'라는 부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는 스물여섯 살에 고시 3관왕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구는 마흔이 넘을 때까지 공부를 해도 불합격할 수 있는 것, 냉혹하지만 그것이 세상이다.

'이번에는 꼭 합격할 것 같다'라던가 '나는 관운을 타고난 것 같다'는 생각은 합격 의지를 불태우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이유 없이 반복되다 보면 맹목적인 신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신념의 크기에 비례하여 수험생활은 길어질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좌절에 좌절을 거듭하고 타인의 기대와 자신의 바람을 절충해가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자각해 가는 과정이다
-가타다 다마미의 <철부지 사회> 중에서 -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과신하다 보면 영원히 시험만 보다가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 사법고시를 연거푸 낙방하면서도 고시원을 떠나지 못하고 아직도 대학동 고시촌에 갇혀 사는 중년의 모습이 내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또 다른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은 더 이상 '패배자'가 아니다. 그는 좌절을 이겨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성숙한 '어른'이다.




나는 시험을 더 빨리 포기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시험을 빨리 포기했더라면, 나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다. '마흔일곱 살에 기회 부스러기라도 남있으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었던 나는 그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고 지금 새로운 직업을 구해 그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물론 지금 직업은 앞에서 말한 좋은 직업의 두 가지 기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러나 반복되는 실패를 통해 나는 충분히 겸손해졌기 때문에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내가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얻은 첫 번째 기회이다.


또 하나의 기회는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실패가 거듭되면서 인생 전략을 바꾸었다.  여러 가지 일을 벌여 놓고 '그중 하나라도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강한 포획자가 될 수 없다면 소심한 수집가라도 되어야 했다. 마치 거미줄을 엮어 놓고 파리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거미처럼 말이다.


.... 내가 쓴 글이 혹시 책으로 나온다면,  혹은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나의 정신승리 이야기를 말해줄 수 있다면...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아니, 그 상상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나의 글이 실패를 극복하려고 노력 중인 어느 누구에게라도 공감과 위로를 주었다면, 나는 이미 두 번째 기회를 실현한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적어도 나보다는 나이가 어릴 것이고 더 현명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는 나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실패의 경험을 나처럼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 경험이 자신의 인생을  갉아먹도록 내버려 두지 말기를 바란다.....



헉, 어쭙잖은 조언을 하다 보니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이 오글거리므로 이쯤 해서 망한 개미의 실패담을 끝내야겠다.

 


<브런치 북에 에필로그로 끼워 넣으려고 했으나 한번 만든 브런치 북은 수정이 안되어서  그냥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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