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날이었다. 나의 일곱 번의 합격자 발표날은 항상 비슷했다. 나의 1년이 무의미하다는 판정을 받는 날이다. 이 인정머리 없는 시험에게 매번 내쳐지면서도 나는 왜 시험을 버릴 수 없었는가? 실패 따위에 굴복하지 않는 의지의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나는 시험에 중독되어 있었다.
나는 매년 마음속으로 합격 수기를 쓰고 있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포기를 모르는 굳은 의지의 인간이며, 결국 합격의 기회를 거머쥔 운과 실력을 겸비한 노력파 수험생이었다. 각색되고 덧칠되고 부풀려지고 업그레이드된 나의 일대기가 조금씩 완성되고 있었고, 올해는 완성된 영웅의 일대기의 '글 올리기' 버튼만 누르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시험은 냉혹했다.
시험은 늙은 내가 퇴행성 디스크가 걸린 허리를 비틀며 공부했다고 해서 먼저 합격시켜 주지 않는다. 절박한 순서대로 붙는다면 편의점 알바를 하며 지하 고시원에서 처절하게 공부한 후배는 진작 붙었어야 했다. 오래 공부한 순으로 붙는다면 오수, 육수, 칠수의 이름표를 단 장수생들이 넘쳐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험은 오직 점수만이 중요하다.
공무원 시험은 모두 상대평가이고, 교원 임용고시는 대략 경쟁률이 20대 1이므로 19명이 불합격한다. 단순히 확률상으로만 보면 나의 합격 확률은 5%이다. (과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응시한 국어과는 경쟁률이 약 30대 1이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리 용쓰는 재주가 있더라도 일단 불합격 확률은 95%이다. 그러므로 5% 안에 들어갈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나는 '글 올리기' 버튼을 끝내 누르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이다.
'나는 반드시 합격한다'
이 말을 계급장처럼 달고 5 퍼센 틀의 승률이 이미 정해진 시험을 향해 나는 미친 듯이 매년 돌격하고 있었다. 승률이 나에게만은 예외적으로 다르게 적용될 것이라는 비과학적 신념마저 가지고 말이다.
지나친 긍정은 무모하다. 열정을 가지면 언젠가 이룰 수 있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나는 교사가 되고 싶은 열정은 이미 차고 넘쳤지만 결국 5%의 승률을 뚫지 못했다. 나는 인간의 삶에 대해 교만했다. '절실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너무 맹신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일곱 번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