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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체리 May 03. 2020

거위, 진흙탕에서 백조를 꿈꾸다

                                                                   

그냥 거위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강사는 학교 피라미드의 가장 하위층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로 치자면 ‘수드라'쯤 된다. 고용불안으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거나 정교사와의 노골적인 차별에 부딪칠 때면 정규직이 되지 못한 후회와 자괴감이 몰려왔다.  열등감과 모멸감을 느낄수록 나는 점점 시험 중독의 늪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지금은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는 거위지만, 진흙을 벗겨 내기만 하면 눈부시게 하얀 백조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시험공부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너는 정규교사가 될 사람이다.' 


시험은 이렇게 나에게 속삭였다. 그 말 대로 정말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곧 하늘을 박차고 고고하게 날아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달콤한 말을 매일 되뇌며 현재의 초라함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공부는 원래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험 중독이 심해지면서 반대로 나는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하고 있었다. 될 것 같지도 않은 공부를 끈덕지게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바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자괴감을 해소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공부방을 운영하거나 과외 선생으로 살아보려고도 했지만 썩 내키지가 않았다. 그 일은 나의 구겨진 자존심을 번듯하게 다림질해주기에는 부족한 직업이었다. 소중한 시간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우수수 빠져나가고 있는데도 공부에만 매달렸고 그러면서 14년이 흘렀다.


공부가 힘에 부쳐오고, 시험 점수가 제자리에 머물게 되면서 도저히 백조가 될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멈출 수는 없었다.  공부가 궁색한 현실에 대한 도피처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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