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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체리 May 03. 2020

시험 중독에서 탈출할
두번의 기회를 놓치다

                                             


나는 이미 시험의 늪에 깊이  빠져 있었다




시험 중독을 끊을 기회는 두 번 있었다. 


첫 기회는 삼수 시절에 왔다.  그 전 해에 2차에서 아쉽게 탈락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붙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였다. 남들처럼 하루 종일 공부할 수 없어서 모자란 시간을 보완하기 위해 주말도 없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도서관 의자에 앉아 있는 내 몸이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운동을 해도 침을 맞아도 근육이완제를 먹어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mri에도 잡히지 않는 나의 통증은 이미 내 몸 전체를 덮치고 있었다. 


그 해 나는 당연히 1차에서 탈락했다. 전혀 아깝지 않을 만한  점수였다.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시험일까지 그저 버틴 것일 뿐 나의 집중력은 온몸의 통증에 의해 이미 집어삼켜져 있었다..  그 시험을 끝으로 다시는 공부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미련을 갖지 않기 위해 책을 모두 버리고 건강관리와 일상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나고, 나의 시험 중독 증세는 다시 발병했다.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 발단이었다. 정규교사로 아이들 앞에 서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시험 중독에서 벗어날 두 번째 기회(기회라고 말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는 사수인지 오수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시간 즈음에 나에게 왔다. 

친언니의 암이 재발된 것이다. 언니는 9월 경에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입원했고 검사 결과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여명이 몇 달 남지 않았다는 소견을 듣게 되었다. 나는 주말마다 지방에 내려가서 언니를 간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사의 소견대로 언니는 그해 11월에 숨을 거두었다. 


     

시험은 12월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언니를 간병하는 순간부터 시험을 내 마음속에서 버렸다. 사랑하는 언니가 의사의 시한부 선고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불합격 날에 낙심과 분노를 쏟아내며 흘렸던 나의 눈물을 증오했다. 나는 시험을 다시는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2년쯤 지난 후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언니의 죽음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자 신분 상승의 욕구가 또다시 스멀스멀 올라와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이렇게 강한 것이다. 일상의 행복을 느끼며 소박하게 살기로 했던, 2년 전 나에게 했던 약속은 평생 연금 받으며 정규직으로 살고 싶은 나의 욕망에 의해 휴지조각처럼 초라하게 내동댕이쳐졌다


.     

...이미시작한 일은 끝을 맺어야 하고, 내가 선택한 일을 포기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며,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도전하는 내가 아름답다...




그때의 일기장에 쓰여 있는 글귀들은 나의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 보면 자기 합리화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벌거벗은 속물적 욕망을 직면하기가 너무나 부끄러워 그렇게 미사여구와 격언을 만들어 내며 끄적거렸을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나의 건강과 사랑하는 사람, 이 두 가지를 놓친 경험을 하고도 나는 인생의 나침반을 새로운 방향으로 돌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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