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언니 ‘순자, 춘자’ 자매 묵호 상륙작전!

Q28. 기획자가 답하다. 묵호 논골담길

by 조연섭
68년 묵호사랑, 순자•춘자 자매
묵호 상륙작전!


강릉에 살다 열여섯 나이에 오빠 사업 따라 지금 동해 묵호(옛 명주군 묵호)로 온 언니 이순자(여. 84) 씨와 등대경로당 회장도 역임한 동생 춘자(여. 82)씨 두 분은 친 자매다. 차근차근 조리 있게 말씀을 잘 이어가는 언니 이순자 씨는 동해 '묵호등대마을' 논골담길 중심으로 살아온 세월이 68년 되는 어르신이자 그의 삶은 묵호의 역사다.

좌_이순자, 우_춘자 자매, 사진_KBS 6시 내고향, 영상 캡쳐
공부하면 도둑 된다. 아들만 대학 보내던 시절?

언니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강릉 비행장 옆 어촌마을에서 살다가 동해 묵호로 왔다. 묵호에서 21세에 결혼식을 올리고 아직도 같은 동네 묵호에 살고 있다. 강릉 성덕초등학교를 나왔고 공부를 잘해 중고등학교가 없던 시절 6년제 사범대를 가려고 했으나 당시 아버지는 “공부를 많이 하면 도둑놈 된다며 손톱 밑에 풀물이 들고 지게 지고 일하는 사람이 잘 산다. “하여 오빠만 진학을 하게 했다. <아이 슬퍼랑>


자매할머니 오빠는 당시 부자도 힘들다던 단국대학교 법대에 거뜬히 진학할 정도로 서울대를 꿈꾼 수재였다. 그런데 얼마 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다.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을 진학한 이 오빠가 지인 꽴에 빠져 공부는 안 하고 배 사업을 한다고 돌아온 것이다. 당시 세상분위기는 큰 아들은 땅이 아무리 많아도 땅을 만평이상 소유하기 힘든 때였다고 한다. 피 같은 땅 천 평 천평 팔아 배를 사고 강릉 주문진항에 띄웠다. 띄운 지 3일도 안돼 어렵게 마련한 자매 오빠의 배는 풍랑으로 배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배 사업 지식이 전혀 없는 대학생 신분으로는 당연한 결과였다.

60년대 오징어 명태가 <개락>이던 시절
<개락_ 많다의 강원도 방언>

사업에 재미를 붙인 오빠는 다시 이번엔 지금의 동해 묵호로 와 꽁치 배 사업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동생들도 묵호로 이주하게 된 셈이다. 당시는 고기가 개락이던 시절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오빠는 논 천평, 밭 천평 팔아 집안 재산을 모두 탕진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언니 순자 가족은 배 사업을 이어갔고 동생인 춘자 가족은 새로운 사업으로 어선의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60년 전후 묵호는 오징어와 명태가 넘쳐, 고기잡이를 하루 2차례 출항할 정도였다니 당시 상황이 짐작 간다. 당시 묵호등대마을분위기는 “집은 몇 채 없고 모두 밭이고 공동묘지였다.”라고 언니(순자)는 말한다. 오원일 전 도의원 뒷집에 살 때의 일이다.


55세 일찍 사망했다는 마을 오 전 도의원 부친은 이웃에 셋방 사는 언니에게 “집을 지어 덕장 사업을 하고 살아라” 등 많은 조언과 도움을 준 고마운 분이었다고 언니는 회상한다. 그때 오의원 아버지가 말하던 “15만 원짜리 집을 지었으면 그때 큰 부자가 됐을 텐데 “하고 그 시절을 기억하며 언니는 <ㅎㅎ 웃는다.>

동생 춘자 씨는 돈을 자루로 끌 때!

당시 순자 씨 친동생 춘자 씨 가족은 그때 배 10척 이상의 배의 쌀, 낚시, 기름 등 살림살이와 먹거리 전체를 공급하던 때라 돈을 자루로 끌었다. 돈을 쌀포대에 넣어 어깨에 메고 다니던 시기, 돈을 찾는 날은 두꺼운 옷을 입고 가서 돈 찾은 자루를 덮어 오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 잘 나가던 동생 춘자 씨 가족도 80년대 초에 거래처 부도로 다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덕장에서 건조한 오징어와 명태를 판매하는 덕장 주인들은 마음고생이 심했다. 수협은 그나마 피해가 없었는데 개인거래는 당시 많은 마을 사람들이 부도를 맞아 피해를 봤다. 고단한 삶의 현장으로 가난한 사람의 마지막 기항지로 불리며 강아지도 만원 지폐를 물고 다니던 묵호는 1980년을 지나면서 어획고가 줄고 동해시가 탄생하면서 도시 공동화 등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쿼터제, 임의상장제 도입시기

동해 수협 경매사로 30년 종사하고 근무 실적이 우수해 정년까지 연장되는 영광을 누린 고 김인복 논골담길 해설사는 당시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쿼터제>와 <임의 상장제>등이 도입되면서 자율적인 거래질서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행위가 확산되면서 오히려 묵호 어판장은 혼란의 세월을 보냈다.”라고 기억한다.

쿼터제 (quota制)_수입이나 생산, 고용 등에 대하여 그 수나 양을 제한하거나 할당하는 제도

임의상장제_1997년 9월 전면 시행된 임의상장제는 이전 의무상 장제(강제상장제)였던 수산물 위판제도가 규제개혁 완화 차원에서 이같이 전환돼 지금까지 실시돼 오고 있다.

고 김인복 경매사와 이춘자 어르신, 사진_조연섭
2010년 묵호의 희망, 논골담길 시작

그러던 묵호에 동해문화원과 청년작가들이 희망의 소식을 보내온다. 바로 묵호의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담은 논골담길 프로젝트 시작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 동해시 지원으로 2010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인적이 드문 묵호에 사람이 모여들게 했고 주민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게 했다. 주민들은 마을잔치처럼 언덕 중턱에 나와 전을 부치고 막걸리를 마시며 마을이야기를 나누고 채색 공부도 하고 직접 작가도 된다.


동해문화원이 논골담길을 조성하면서 마을은 활기를 띄기 시작해 지금 묵호의 거리는 칼국수를 먹기 위해 줄을 서고 횟집거리는 음식쓰레기 수거 횟수가 몇 배로 늘어나는 등 묵호는 50만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감성관광지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두 자매, 원더할매합창단 수석으로 참여

논골담길이 활성화되고 여행자들이 넘치기 시작한 2012년부터 매년 가을 묵호등대에서는 묵호등대음악회가 개최됐다. 2014년 개최된 음악회 이날은 아주 특별한 분들이 음악회의 주인공이 됐다. 묵호등대경로당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동해문화원이 만든 화제의 원더할매합창단이 첫 무대에서는 날이었다. 이날 순자, 춘자 두 자매는 짙은 화장과 멋진 빨간색 조끼를 입고 합창단 수석으로 참여해 신나는 성인가요 두곡을 멋지게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원더할매합창단, 6시 내고향 출연 영상 캡쳐

현장에서 합창단으로 참여했던 이순자, 이춘자자매는 그날 기획과 진행을 맡은 필자를 꼭 껴안으며 말씀하신다. “논골담길을 만으로도 고마운데 이렇게 합창단을 만들어 무대도 올려주고 너무너무 고마워”라고 눈물을 흘리신다. 순자, 춘자 자매가 묵호에 와서 살아온 역정은 묵호의 삶을 닮았다. 묵호가 흥했을 때는 부부가 돈자루 앞에서 번돈을 쉬다가 밤 12시 전기가 꺼지자 호롱불을 켜고 고무줄을 잘라 돈다발을 묶던 시절, 외지놈한데 믿고 거래했다가 부도로 쫄딱 망하던 기억들 모두가 잊히고 아름다운 묵호 사람의 정신과 묵호의 정체성으로 남는다.

묵호등대음악회 츨연, 이성애 강사와 원더할매합창단, 사진_조연섭
나가며!
술과 바람의 도시 묵호에서 고단한 삶을 헤처 나온 묵호의 왕언니 이순자, 춘자 두 자매의 짧은 글로 묵호를 기억합니다. 두 분은 유난히 논골담길을 사랑한 자매로 원더할매합창단, 스토리텔러 등 각종 프로그램에도 솔선수범 참여한 모범 자매 가족입니다. 오늘의 기록 영원한 묵호사람의 모습으로 남길 바랍니다.

묵호 논골담길은 프로그램 성과 사례발표로 '청와대' 와 '유네스코 무형유산포럼' 참여와 박사논문 등 논문이 다수 발표된 드문 사례입니다. 이순자, 춘자 자매 할머니와 경로당 어르신 등 주민들과 공동체 회복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제 민간의 곁은 떠났지만 논골담길 사람들의 정신과 정체성은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구술에 응해주신 자매 할머니와 논골담길 주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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