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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현 Oct 19. 2023

아침을 여는 방식

 가장 좋은 시간이다. 아이는 출근을 했고 나머지 가족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아침을 먹기 전 두 시간 정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쓸 수 있다. 내 시간이 주어지면 할 일이 너무 많다. 책도 봐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핸드폰 검색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오늘 일과를 생각하게 되고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건 아니지 하며 나에게로 돌아온다. 일분 일 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 아니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은 것이다.

 어제 가져온 과테말라 한 잔 내린다. 바디감이 좋은 커피가 내장을 타고 들어가 나의 혈관 하나하나를 깨운다. 아이가 출근해 비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조그마한 내 책상을 놓은 이곳은 딸에게서 낮동안 임대한 나의 서재이다. 노트북을 열고 블로그에 필사 아니 필타를 한다. 손으로 써야 필사다운 필사를 할 수 있겠지만 류마티즘을 앓고 있는 나는 손으로 쓰는 일이란 어렵다.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손가락에 무리가 많이 가기 때문에 최대한 힘을 빼려고 노력한다. 시 두 편을 필사하고 어제 쓰다만 시 파일을 연다. 어제 감정의 농도까지 가려고 이 책 저책을 뒤적이고 메모 글들을 뒤적인다. 한 문장에 발이 빠져 움직일 수가 없다. 엄마가 떠난 빈 집을 정리하는 내용의 시다. 일상적이거나 가슴 깊은 상처를 낸 것은 시로 쓰기 어렵다. 아무리 쓰려고 해도 한 문장도 쓰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다 시간의 더깨가 앉고 잊을만하면 불쑥 시가 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시가 그런 것 같다. 아직 덜 발효된 이싱한 맛이 난다. 다시 무심한 눈빛으로 글자들을 바라본다. 한 줄도 못쓰고 노트북을 덮을까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어제 접어두었던 소설책을 편다. 서사가 있는 글은 마음을 느긋하게 한다. 조금 행복해진다. 시간을 보니 9시가 가까워졌다. 마무리를 하고 일어나야지 생각하며 다시 시를 본다. 한 줄 한 줄 맘에 드는 문장이 없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문장이 떠돌 것이다. 괜찮은 문장을 잡았으면 겠다고 생각하며 노트북을 접는다

 생각해 보면 내 아침은 커피와 노트북과 책 두어 권으로 행복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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