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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현 Nov 23. 2023

밥의 거리

 오래된 사람과 밥을 먹었다. 칠팔 년을 알고 지냈고 꽤나 친밀하게 지내왔는데도 함께 밥을 먹은 것은 처음이디. 이 아무것도 아닌 듯한 한 끼의 식사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 것은 거리 때문일 것이다. 그녀와 나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만남이었다. 카페의 주인과 손님으로, 커피 선생님과 제자로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한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단아함과 명랑함 그리고 그녀가 서 있는 카페 주방의 풍경과 카페 밖의 바람들, 나무와 고양이와 고라니가 등장하는 그녀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에 호감이 간다.

 손님보다는 친하게 동생보다는 조금 간격을 가진 게 우리 사이다. 특별히 만날 사람 없이 집 밖을 나서고 싶을 때 나는 그 카페에 간다. 나이가 들어 살림이 지겨워지면 커피도 남이 내려 주는 것이 맛있다. 커피를 홀짝이며 그동안의 안부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최근에 겪은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더러는 공감하고 더러는 부정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주 가벼운 대화로 따듯한 온기를 나누는 시간인 것이다. 나의 속내를 적당히 드러내고 적당히 포장하는 것이 가식이라면 달리 항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것이 예절과 품위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친구는 조심스럽다. 물론 어떤 인간관계도 조심스럽지 않은 관계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손아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더 세심한 마음이 필요하게 느껴진다. 나이가 많다고 뭔가를 더 아는 예는 많지 않다. 젊은 사람이 훨씬 더 아는 게 많다. 그러므로 모든 대화에서 넘치지 않으려고 나를 조절한다. 이런 조임과 당김이 나쁘지 않다. 나를 설레게 하고 긴장하게 한다. 나는 그녀와의 대화에서 늘 나를 점검하곤 한다.

 그녀와 밥을 먹었다. 차 안에 나란히 앉아 드라이브를 하고 식당에 도착해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물리적인 거리로는 가장 가까운 시간을 보낸 것이다.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소소하게 웃었다. 그녀는 나에게 다음엔 자신이 밥을 사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똑같은 값으로 주고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 어느 날 밥을 먹거나 같이 산책을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시간을 즐기자고 말했다. 바람의 속도나 구름의 모양 같은 것을 더 많이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어떤 구름을 치우고 사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자고 나 혼자 속삭였다. 나는 이만큼의 거리가 좋다. 더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 이것은 나의 바닥을 들키지 않는 일이고 그녀의 바닥을 보지 않는 일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너무 가깝게 지내다 자신도 모르게 바닥을 드러내곤 한다. 사람은 누구나 바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무 가까우면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관계는 최악으로 치닿는 것이다.

 가을이 깊다. 나무들은 앞을 떨구고 묵묵해졌고 태양은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발이 시린 시간이 길어질 것이다. 나는 가끔 집을 나와  카페에 갈 것이고 그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을 것이다. 오늘은 고라니가 오지 않았느냐고? 어떤 눈망울이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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