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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연 Sep 23. 2024

‘운탄고도 1330 강원을 걷다’ep2

서울에서 온 손님, 소중한 인연, “그리고 함께여서 좋았던 트래킹”

운탄고도4길 안내 표식

강원의 옛 탄광산업이 부흥기를 맞던 시절, 고지대에서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수천여명이 동원돼 삽과 곡괭이를 이용해 만들었던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 물론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그 길이 누군가에게는 아련한 옛 추억일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지치고 힘들었던 지난 삶의 일부분일 것이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지난날들일 것이다.


필자에게는 그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그 길은 분명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중심이었고,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된 중요한 한 페이지이기에 그 흔적 위에 발자취를 남기며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정해진 루트대로 트래킹을 하는 것을 넘어서 경험해보지 못한 지난날들에 대한 기억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 생각했다.


그리고 즐겁고 행복하면서도 지치고 힘들었던 지난 6일 동안의 운탄고도 트래킹은 예상대로 값진 경험이 되었다. 또한 필자의 ‘걷는 삶’에 멋진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럼 이제 ‘운탄고도 1330 강원을 걷다’ 첫 번째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가 보도록 한다.



4길의 어느 멋진 구간에서...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시작된 운탄도고 트래킹이었지만 첫출발부터 헛걸음질을 하는 등 시작이 썩 상쾌하진 않았다. 그래도 역시나 도보여행의 매력은 실로 엄청나다. 일단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 낯선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 길이 평범한 마을길이든, 도심길이든, 숲길이든, 산길이든 상관없다. 그 모든 길이 필자에게는 매우 낯설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매일 보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길일지언정 그 길을 걷는 도보여행자들에게는 그저 새롭고 즐거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또 걷는 내내 마냥 즐겁고 재미있기만 하지는 않다. 무더위와 사투를 벌이며 임도, 공도, 차로를 걷는 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그늘 없는 땡볕 길을 걷다 보면 피부가 타들어가는 느낌마저 든다. 뿐만 아니라 무더위 속 오르막길이나 산길을 오르다 보면 두통 및 현기증과 더불어 혼잣말로 상스러운 욕을 내뱉기도 한다. 아마 필자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도보여행자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보여행의 매력이 걷는 그 과정에서 종종 느끼는 고통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4길의 어느 구간에서...운탄고도 얕잡아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걸 명심해야 한다.

운탄고도 1길을 걸으면서 필자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걷기 하나는 자신 있는 자타공인 도보여행 전문가였지만 태화산의 긴 산행과 거칠고 가파른 내리막길 구간을 통과하면서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꽤나 고생한 구간이었기 때문이다. 16km에 달하는 구간은 체감 상으로 20km 이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이어 걸은 2구간은 짧고 강했던 산행 빼고는 대체적으로 무난한 코스였다.      



구름이 모인다는 마을에서 만난 특별한 인연

2길의 도착지점은 모운동 벽화마을이다. TV로 보고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그 모운동 벽화마을에 다다르니 여행의 기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기분이 들면서 엔도르핀이 솟구치는 듯했다. 이곳을 편하게 차를 이용해 올라온 것과 필자나 도보여행자들처럼 걸어서 올라온 사람이 느끼는 그 기분의 차이는 아마 엄청나리라 생각한다. 마을에 도착하니 운탄고도마을호텔 앞에서 마을 이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셨고, 마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틀동안 모운동 벽화마을에서 기자의 친절한 말동무가 되어주었던 마을 이장님과 아내분. 지금은 아마도 이장님이 다른 분으로 바뀌신걸로 안다.


이 마을의 위치적, 공간적 특별함이 주는 매력과 더불어 이장님이 들려주는 마을에 대한 역사 및 스토리는 그 어느 역사이야기보다 흥미로웠다. 이장님은 이 마을에서 무려 70여 년을 살아온 마을 터줏대감이었다. 한마디로 이 오지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그리고 이장님에게서 다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탄광산업이 활황기를 맞던 시절 이 마을에 무려 1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마을을 최대한 한눈에 담아보기 위해 높은 곳으로 이동해 내려다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1만여 명의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사진 좌측 하단에 보이는 모운동 마을. 저 오지 산간마을에서 1만여명의 광부와 가족들이 빼곡히 모여 살았다고 하니 믿겨지지가 않는다.


현재는 고작 35 가구에  5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이장님과 마을 곳곳을 다니며 둘러보는데 이장님의 마을에 대한 설명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그는 어느 한 집을 가리키며 “저기 저 파란 지붕이 예전에는 다방이었어요. 예전에는 이 마을에 다방만 세 곳이나 있었다니까요”라고 말했다. 또한 “저기 저 집은 당구장이었는데 옛날에는 저기가 장사가 참 잘 되던 곳이었지”라고 말하며 웃음 짓던 이장님의 그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만여명이 모여 살던 시절, 좌측 사진의 파란 지붕이 당구장, 우측 사진의 황토색 지붕의 집이 다방이었다고 한다.


모운동 벽화마을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지만 마을에 담긴 특별한 이야기들과 더불어 운탄고도마을호텔까지 정말 그곳은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이 마을에 도착하니 이틀 동안 운탄고도를 걷는 과정에서 느낀 재미와 만족감이 수직 상승하는 기분이었다.


 모운동 벽화마을의 이장님과 아내분, 마을 어르신, 형광 함께 찍은 사진이 마치 가족사진을 보는 듯하다.


이장님과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 있는데 모운동 마을호텔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그 손님은 바로 필자와 각별한 사이의 지인으로서 아웃도어에 능숙한 운동마니아이기도 한 필자의 친한 형이었다. 지난 제주올레길 완주 마지막 날 남은 30km를 함께 걷기도 했으며, 이번 운탄고도 트래킹 역시 함께 걷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것이다.


필자가 먼저 1~2길을 걸은 후 남은 3~5길을 함께 걷기로 했다. 또한 마지막 6길은 다시 필자 혼자서 마무리하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술 잘 마시기로도 소문난 형이 합류하면서 마무리되나 싶었던 이장님과의 수다삼매경이 다시 이어졌다.  이장님 아내분께서 맛있는 집밥도 해주시니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었다.


식사는 나름 뷔페식이며,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해질무렵 도착한 형은 오면서 사온 막걸리와 함께 늦은 밤까지 이장님과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밤 9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짐을 풀었으며, 다음 날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모운동 벽화마을의 상쾌한 아침공기를 들이키며 운탄고도 3길을 걷기 시작했다.      


운탄고도 2길의 도착점이자 3길의 시작점이다. 사진에서 3길 안내판이 있는 좌측 방향의 숲길로 진입하면 된다.


옛 탄광산업 흔적 녹아든 광부의 길(3)

3길은 ‘광부의 길’이라 일컫는다. 아마도 옛 탄광산업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겨져 있는 구간이어서 그리 불리는 것 같다. 3길을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그 흔적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광부의길인 3길을 시작하면 초반부터 영월 탄광산업의 활황기 시절 옛 흔적들을 하나하나 마주치게 된다.


황금빛깔 광부의 동상과 철분 가득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황금폭포, 탄광산업 호황기에 가장 질 좋은 무연탄을 생산하던 옥동광업소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탄광산업의 주역이었던 광부들의 그 흔적을 더듬으며 걷다 보면 해발 1,088m의 망경대산을 돌아내려 석항역에 다다른다. 특히 3길의 경우 초반부터 오르막길이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큰 편이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지쳐 바닥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폐갱도 안에서 흘러나오는 황금색 폭포도3길의 볼거리 중 하나다.


운탄고도 3길이 참 좋았다는 내용의 블로그 글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단언컨대 3길이 절대 산책 수준의 만만한 코스가 아님을 명심하길 바란다. 무엇을 생각하든 생각보다는 힘들 것이다. 혼자 걸었더라면 분명 혼잣말로 욕을 해댔겠지만 동반자가 있다 보니 그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그래도 혼자보다는 함께 걷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았다.


3길의 경우 생각보다 오르막 구간이 길고 상승고도 또한 1,000m를 넘어선다. 체력소모가 생각보다 큰 구간이다.


물론 혼자 걸을 때 느끼는 장점도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혼자보다는 함께 걷는 것이 더 좋다. 아무튼 힘겹게 긴 오르막길을 끝내고 정상부이자 중간 스탬프 지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트래킹을 시작하면 이제 내리막길만이 남았다. 하지만 망경대산을 내려오는 길이 비좁고 경사도가 매우 심한 편이라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3길의 경우 생각보다 오르막 구간이 길고 상승고도 또한 1,000m를 넘어선다. 체력소모가 생각보다 큰 구간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팁을 말하자면 망경대산을 둘러 내려오다 보면 우측에 산딸기 군락지가 보일 것이다. 약 20m 정도의 짧은 구간에 양옆으로 새빨간 산딸기가 가득하다. 하나하나 따먹기보다 한 움큼 모아 한 번에 먹으면 별미도 그런 별미가 없다. 갈증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허기진 속도 어느 정도 달래주면서 또 맛도 좋다. 그렇다고 산딸기가 사시사철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트래킹 시기가 맞는다면 꼭 먹어보길 마란다. 참고로 기자의 경우 6월 초에 해당 구간을 걸었다.


3길의 고되고 힘든 오르막길을 마친 후 중간스탬프 지점을 지나면 곧바로 긴 내리막길의 시작이며 산딸기 군락지를 만나게 된다.


난도가 있다 보니 중간 스탬프함이 있는 지점에서 좀 더 쉽게 돌아 내려오는 우회길이 있기 때문에 각자 체력과 수준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힘겹게 산을 벗어나면 드디어 아스팔트 도로가 나오며 지근거리의 석항역을 지나 종착지인 정선 예미역까지 차도 옆길을 따라 약 4km 정도 이동하면 운탄고도 3길이 끝난다.     



이장님...고맙고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3길을 완주 후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겼다. 차가 주차되어 있는 모운동 벽화마을까지 원점회귀를 해야만 한다. 워낙 고지대의 오지마을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콜택시를 부른다 해도 온다는 보장도 없고 온다 해도 택시비가 만만치 않게 나올 것이 확실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전날 함께 한참 수다를 떨던 마을 이장님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이장님이 생각하기에 3길을 완주했을 시간이라 생각되어 필자를 데리러 오기 위해 전화를 주신 것이었다. 그렇게 마을 이장님은 편도 40분 거리를 운전해 필자를 데리러 왔다. 정말 반가워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조그맣고 낡은 소형 차량이 그  당시 필자에게는 마치 리무진처럼 느껴졌다. 저 멀리서 필자에게 다가오는 그 작은 차량 주변에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모운동벽화마을의 이장님이 3길 도착점까지 데리러 와 주셔서 운 좋게도 벽화마을에서 1박을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차량에 탑승해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또 우리는 한참을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센스 있는 말투와 언제나 환하게 미소 짓는 이장님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러한 인연으로 필자는 예정에 없던 벽화마을에서의 1박을 더 하게 되었다. 그날 밤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사람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할 따름이다.


운탄고도 트래킹 과정에서 얻게 된 이 소중한 인연은 아마 어지간해선 끊이질 않고 계속 갈 것 같은 기분 좋은 믿음이 생겼다. 전날 이장님 사모님께서 차려주신 맛깔난 시골밥상에 과일, 막걸리 한 병과 함께 한 저녁시간은 정말 행복 그 자체였다. 행복했던 기분만큼 단 한 번의 뒤척임도 없이 꿀잠을 잔 것 같다.


사진 속 ㄱ자 형태의 길다란 집이 이장님의 집이다. 집 안 내부 곳곳을 구경시켜 주셨는데 태어나 그런 형태, 그런 분위기, 그런 느낌의 집을 처음 구경한 필자로서는 꽤나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다음 날 어김없이 오전 6시에 일어났는데, 역시나 두 분은 벌써 기상해서 분주히 움직이고 계셨다. 함께 아침식사를 한 후 작별인사를 하는데 뭉클한 기분이 드는 게 스스로도 살짝 당황스러웠다. 이틀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참 많은 정이 들었던 것 같다. 이장님의 아내 분은 마을을 떠나는 필자의 손에 흰 봉지 하나를 쥐어주셨다. 인삼 한 뿌리였다. 산속을 오래 걸으면 몸도 정신도 지치니 걸으면서 인삼을 먹으라고 주신 것이다.


그렇게 작별인사를 하고 마을을 떠나면서 산을 내려가는데 무언가 밀려오는 따스한 느낌과 여러 생각들,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참 좋은 분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며, 참 멋진 마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필자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경험이자 보물과도 같은 인연이었다.    

  

30km에 달하는 4, 단순하면서도 힘들었던 구간

이제 다음 코스인 4길은 정선 예미역에서 출발해 정선의 꽃꺼끼재(화절령)까지 걷는 코스로써 운탄고도 모든 코스 중 가장 긴 28.76km 트래킹이다. 운탄고도 홈페이지에는 예상 소요시간을 9시간 30분 정도로 잡고 있다. 매우 긴 코스이며 산속에서의 긴 트래킹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늘 한 점 없는 흙길을 걷다보면 지치기도 하지만 완주 후 생각해보면 그 또한 값진 추억이 된다.


예미역을 출발해 차도 옆을 따라 1시간 이상을 걸었을까. 우측으로 아스팔트길의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 길이 그토록 긴 코스인 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대체 언제 그 오르막길이 끝나는 것인지 끝도 없이 이어진 오르막 구간이었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드디어 시야가 터지면서 드넓은 배추밭이 곳곳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길을 따라 30여분 정도 걸으니 우측 1시 방향에 ‘타임캡슐공원’이 보였다. 딱히 특별해 보이진 않아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직 갈 길이 매우 멀었기 때문이다. 산 능선과도 같은 그런 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좌측에 더 크고 넓은 배추밭이 계속해서 나온다. 시기적으로 맞았더라면 정말 멋진 고랭지 밭의 절경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당시 보았던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참 힐링되는 구간이었고, 걷고 싶은 길이 분명했다. 그런 곳에 그런 고랭지밭이 있다는 것 역시 태어나 처음 알게 됐다. 운탄고도 트래킹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멋진 트래킹 구간이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천천히 걸으며 주변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다시 오르막길이 나오고 약 10여 분 정도 오르니 정자가 하나 나왔다. 중간 스탬프 지점이었다. 그리고 그 지점을 지나면 바로 숲길이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도착지점까지 계속 산길이 이어진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정말 긴 구간의 산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걷는데 지치지 않을 수 없는 구간이었다. 물론 여유를 갖고 산속 트래킹을 즐길 수 있는 내공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필자는 아직 그 단계는 아닌 것 같다.



길 자체가 나무로 우거져 그늘길이 많고 충분히 기분 좋게 풍경을 즐기면서 걸을 수 있는 구간들도 많지만 그것도 한두 시간이다. 20km에 달하는 구간을 산속에서 걷다 보면 제아무리 걷기 좋은 길과 멋진 풍경이라 할지라도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 긴 오르막길이라도 시작된다면 육체의 고단함은 절정에 이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피곤하고 힘든 구간도 많았지만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모든 과정이 쉽고, 아름답고, 재미있고, 즐겁기만 하다면 과연 운탄고도를 완주한 후 지금 필자가 느끼는 그 성취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었던 순간들도 지나고 보면 더욱 기억에 남고 더 멋진 추억의 한 페이지로 기억된다.


절대 기본 렌즈 그대로 찍지 말고 한참 뒤로 물러서서 망원랜즈 기능을 활용해 사진과 같이 당겨 찍어보기를 바란다.


역시나 4길은 만만치 않은 코스였다. 1길~3길까지 이어서 걸어오며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에서 30km에 달하는 4길을 완주하기까지 예상대로 육체적 피로감이 적지 않았다. 풍경도 감상하고, 그러다 또 힘들어서 혼자 욕도 해보고, 가끔은 그대로 흙바닥에 드러누워 10여 분 정도 눈도 감아보면서 가까스로 4길을 완주했다.


꼬리곰탕면과 와인의 찰떡궁합


그리고 이 날은 정선의 하이원팰리스에서 하룻밤을 묵었으며 호텔 레스토랑에서 꼬리곰탕과 돈가스, 튀김과 샐러드, 와인 한 병을 주문해 배가 터지도록 먹어보니 저녁 한 끼 값이 무려 15만원이 나온 날이었다. 4일 동안 80km 넘게 걸어왔는데 스스로에게 이 정도 만찬은 하루정도 허용되는 날이라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3~4길을 함께 걷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지인이 호텔 예약에 이어 레스토랑에서의 만찬까지 사주었으니 하루정도 허용이라기보다는 그냥 감사히 얻어먹은 날이었다.


꿀맛같은 휴식을 안겨준 하이원팰리스호텔...


럭셔리한 저녁식사와 쾌적한 호텔에서의 하룻밤은 지친 피로를 풀기에 충분했다. 역시 돈이 좋다.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들 많이 먹으니 다음 날 아침 컨디션이 괜찮았다. 전날 잘 먹고 잘 자고 일어나 다시 전 날 4길의 도착지이자 5길의 시작점이기도 한 꽃꺼끼제(화절령)로 이동했다. 지인과 함께 걷는 마지막 코스이기도 했던 5길은 어쩌면 이번 운탄고도 트래킹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구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그 특별했던 5길의 이야기와 다시 혼자 걸었던 6길까지 이번 ‘운탄고도 1330 강원을 걷다’의 마지막 이야기는 조만간 이어서 연재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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