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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Dec 06. 2023

세상 모든 쩌리들에게, 상추 겉절이가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쩌리란 말이다,


 중심이 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비중이 적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들러리?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무대 가장자리에 서 있는 존재감 없는 그런 흔한 지구인들을 우린 ‘쩌리’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는, 평생 그렇게 쩌리로 살아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래도 나름 달리기가 빠른 편이어서 우리 팀 마지막 주자를 맡았다. 바로 전 주자가 가장 먼저 내게 바통을 넘겼고 나는 그렇게 있는 힘껏 달렸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대로 결승선을 누구보다 화려하게 통과하기만 하면 모든 카메라 플래시는 날 위해 번쩍일 수 있었다. 그런데, 아주 보기 좋게 역전당했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달리기가 빨랐던 영광이란 친구는 꽤 거리 차이가 났음에도 기어코 결승선이 눈에 막 들어오던 그때 나를 추월해냈다. 그날의 주인공은, 영광이었다. 분명히 기억한다. 그날 이후 나의 삶은 쩌리 그 자체였음을.

 시골에 있으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는 일념 아래 어머니는 나를 시내 중학교로 진학시키셨지만, 사실 그곳에서 난 더더욱 쩌리로 전락해버렸다. 그곳에서 만난 도시 놈들은 나와는 수준 자체가 달랐다. 말다툼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로 말빨이 기가 막혔고, 키도 엄청 큰데다가 그냥 싸움도 훨씬 잘했다. 걸핏하면 패배감에 휩싸여 좌절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2년 뒤 하필이면 더 큰 대도시, 그러니까 서울 하고도 여의도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면서 나의 ‘쩌리력’은 더욱 강력해지고 말았다. 일찍부터 조기 교육을 받은 대도시 놈들은 학습 능력이 전국구 수준이었으며 게다가 절대 싸구려 운동화는 신지 않는, 가사 도우미가 딸린 집에 사는 부자 놈들이기도 했다. 꿀리지 말라고 아버지가 신풍 시장에서 사주신 프로스펙스 운동화와 짝퉁 아디다스 체육복은 놈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그 쩌리로서의 삶을 살며 한 번도 저버린 적이 없다. 무엇을? 세상의 중심이 되겠단 포부를 말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쩌리였기에 가능한 다짐이었다. 처절하게 짓밟히고 괄시받으며 살아왔기에, 그래서 쓰러질지언정 무릎은 꿇지 않았던 거다. 그때 영광이에게 역전당하지 않았으면, 시골에서 그냥 그대로 학교를 진학했으면, 대도시 서울로 전학을 가지 않았더라면, 용 꼬리 대신 뱀 머리가 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아마 난 잘돼봤자 뱀이었을 테지. 그저 그런 삶에 만족하며 그렇게 하찮은 늙음을 맞이했겠지…….      


 그래서 말이다,     


 잊지 않기 위하여, 종종 상추 겉절이를 만들어 먹는다. 간장, 고춧가루, 설탕, 참기름, 깨소금, 다진 마늘, 식초로 양념장을 만들어 깨끗이 씻은 상추에 조물조물 버무리면 아주 쉽게 완성되는 그, 상추 겉절이를!     

쩌리중에 짱, 쩌리짱 상추 겉절이


 우리나라에서 겉절이는 메인 음식에 곁들여 먹는 반찬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겉절이에 가격을 매겨 파는 식당은 없다. 밥이나 고기반찬과 함께 먹으면 아주 일품이지만, 다른 음식 없이 오직 겉절이만 먹는 일은 아무래도 없을 테니까. 괜히 ‘쩌리’라는 말이 겉절이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렇다고 이 겉절이처럼 쩌리로서 살고 있다고 하여 당장 우리 삶에서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월이 흘러 머리가 희끗희끗해져도 여전히 쩌리의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것조차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때 어떤 마음으로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가, 세상의 가장자리가 아닌 중심을 바라볼 시야와 용기가 있는가, 상추 겉절이를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며 쩌리로서의 삶을 벗어나겠단 강한 의지를 다지고 있는가! 이것이 문제다.


 욕망 따위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 삶의 희망을 좇아 끊임없이 정진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 쩌리가 되는 것을 피하지 말자는 것이다. 쩌리가 되어야, 내 삶은 고작 쩌리라는 걸 깨달을 수 있고 쩌리가 아닌 삶을 꿈꿀 수가 있는 법이니까. 경쟁을 피해 도망치기만 하는 삶은 우리가 넓힐 수 있는 울타리에 한계를 가져다줄 테니까.     


 그러니 말이다,      


 세상 모든 쩌리들에게 고하노니 쩌리로 살되, 영원한 쩌리가 되지는 말자. 거기서 포기해선 안 돼!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자는 고작 웅덩이 하나 건너지 못하겠지만 우린 충분히 바다를 경험했고 이제 저 바다 끝에 놓인 새로운 대륙을 맞이할 용기를 갖추었다. 지금까지의 삶은 헛된 것이 아닐지니 나와, 손을 잡고 어서, 더 큰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쩌리들이여, 세상의 중심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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