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들에겐 너무나도 큰 고충이 있다. 매년 새로운 독서 지문, 소위 ‘비문학 지문’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냥 글만 읽기에도 벅찬데 과학 공부, 경제 공부, 철학 공부까지 해야 한다. 내가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도 덕분에 좀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기는 한다.
며칠 전엔 ‘행동 유도성 디자인’에 관해 공부했다. 어떤 사물이나 환경이 인간으로 하여금 특정 행위를 끌어낼 수 있으므로 올바른 작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디자인 측면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수업 준비를 하다가 재밌는 뉴스 기사를 찾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농기구, 호미가 해외에서 엄청나게 인기라는 소식이었는데 기능적인 측면은 물론 아름다운 곡선에 서양 사람들이 매료되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졌다. 심지어 미국의 종합 쇼핑몰인 Amazon.com에는 다양한 종류의 호미가 판매되고 있고 미국 가드닝 gardening 시장을 뒤흔들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그다지 놀랍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호미는 원래, 위대한 대한민국의 발명품이니까!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박완서, <호미 예찬> 중
좋은 디자인은 결국 눈에 보기에만 좋은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외양은 물론 실용적이어야 하며 기왕이면, 특별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꾸준히 선택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음식도 마찬가지다.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고, 영양소를 고루 갖춘 것은 물론 맛도 좋아야만 더 많은 지구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건강을 해치는 데도 그저 맛이 뛰어나다고 무작정 그 음식을 찾지는 않을 테다. 그러다간 수명이 턱도 없이 짧아질 테니. 단맛으로만 승부하는 설탕 덩어리 음식이나 맵기만 해서 속을 뒤집어놓기만 하는 음식은 결국 언젠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고작 한순간의 유행에 불과하다. 결국, 버려지고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유부초밥은 그래서 꾸준히 사랑받을 가능성을 지닌 아주 기특한 음식이다. 만들기 쉬움은 물론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편한 데다 얹어지는 토핑의 여부는 미적 요소와 건강까지 채워주고 있다.
마트에선 유부초밥 만들기 패키지를 판매한다. 예쁘게 모양 잡힌 유부는 물론 단촛물까지 들어 있어 아주 간편하게 요리를 시작할 수 있다. 잘 익은 밥에 단촛물을 섞어주고 유부 피에 밥을 채워주면 기본 작업은 완료이다. 그대로 먹어도 나쁘지 않지만, 그 위에 다양한 토핑을 얹어 시각적 화려함과 맛,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 간장 소스에 볶은 다진 돼지고기, 스크램블드에그, 크래미 마요 샐러드, 날치알 따위를 올려 먹어 보자. 골라 먹는 재미까지 더해져 온 가족이 즐겁게 한 끼 식사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김치 볶음이나 참치마요, 햄구이, 연어 타르타르 등 더 많은 토핑이 선택될 수도 있고 아예 밥 자체를 짜장밥이나 볶음밥으로 준비해서 유부 피 안을 채워 넣을 수도 있다. 당신이 가진 창의력이 더해지면 수만 가지 유부초밥이 새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음식도 마찬가지라면 지구인 역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조금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는데, 완벽한 지구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한 가지 장점을 ‘완벽’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외모, 돈, 이런 것들이 우릴 완성시켜주지 않는다!
사랑받기에 충분한 존재가 되려면 잘생기기만 해서도, 돈만 많아서도, 그렇다고 착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 그저 잘생기기만 한 사람은 결코 사랑받지 못한다. 물론 일시적인 사랑과 관심이 생길 수는 있겠지만 많은 연예인이 증명해주지 않았던가? 요즘 팬들은 외모만 보지 않는다. 외모와 인성, 실력까지 고루 갖춘 연예인들을 좋아한다. 돈만 많이 번 사람도 절대 사랑받지 못한다. 돈을 벌기 위해 자기 성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존재는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착하기만 한 것도 안 된다. 세상 물정 모르고 그저 당하기만 하는 답답한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지구인들은 외모를 가꾸고, 끊임없이 학업에 정진하며,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완벽에 도달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유부초밥이 완벽한 음식이라 할 수 없듯 신이 아닌 이상 지구인은 언제나 2% 부족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저, 사랑받기 위해서다. 이건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말과 같으니까.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지구인은 언제나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건 그냥 당연한 거다.
유부초밥은 지구인에게 끝까지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유부초밥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늘 노력하는 음식이니까. 그리고 다짐한다. 유부초밥이 되어 절대 당신에게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언제나 당신에게 사랑받을 것이라고, 완벽하진 않지만 늘 새로운 토핑을 올리기 위해 애쓰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