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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Dec 09. 2023

나눌 거니까, 동그랑땡 말고 둥그렁땡!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조금 이상했다. 재료는 달라도 크기는 똑같다. 유튜브든 블로그든 지구인들은 죄다 같은 크기의 동그랑땡을 만들어 낸다. 대체, 왜? 동그랑땡이 좀 뚱뚱하면 안 되는 걸까? 날이 쌀쌀해지면, 그래서 추위를 잊고 싶다면, 기왕 만들어 먹는 거 동그랑땡은 큼직큼직하게 만들어 보길 권해본다. 동그랑땡 말고, 둥그렁땡으로 말이다.      

 언제였더라. 쌀쌀한 계절의 어느 저녁, 씻고 나와 반팔 티셔츠를 입고 거울 앞에 서 있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굉장히 하찮게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꼴 보기 싫었던 건 왜일까? 민망해서 얼른 밥상 차릴 준비를 하며 TV를 틀었고, 그렇게 준녕이를 만났다.

 충북 단양 어느 산골 동네에 엄마와 단둘이 사는 준녕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연탄을 갈고 있었다. 추위 같은 건 모르고 살던 베트남에서 온 엄마가 혼자 일 하는 걸 보는 게 안쓰러웠나 보다. 준녕이 아빠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후 두 사람은 살길이 더 막막해졌다고 했다. 허름한 벽돌집에서 추운 계절이 오면 내복을 두 겹씩 껴입고 이불을 세 겹씩 덮고 자도 어쩔 수 없이 추위에 벌벌 떨어야 하는 모자는 꼭 끌어안은 채 서로의 온기로 잔인한 계절을 이겨내고 있었다. 

 KBS <동행>이라는 프로그램이었고, 방송 끝엔 준녕이를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자세하게 소개되었다. 그 순간! 내 시선은 저녁상을 차리기 위해 늘어놓은 재료들로 향했다. 동그랑땡을 만들기 위한 갖가지 재료들, 그러니까 다진 돼지고기, 두부, 달걀, 다진 쪽파 따위가 아일랜드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있는 힘껏, 동그랑땡을 빚었다. 열심히 반죽을 치대고, 동그랗게 모양을 잡아 주었다.

 동그랑땡이 자꾸 뚱뚱해졌던 걸 보면, 어쩌면 그때 난 내 밥상이 아닌 준녕이의 밥상을 차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동그랑땡이 아니라 둥그렁땡이었는지도. 더 푸짐하고 든든한, 따스한 밥상을 직접 차려주고 싶은 마음이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르겠지만, 실제 그 온기를 전해줄 길은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그러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뚱뚱한 둥그렁땡!


 결과적으로 정성껏 만든 둥그렁땡은 우걱우걱 내 배때기에 저장되고 말았다. 대신 조심스레 후원 방법을 다시 검색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은행 계좌번호와 출금 날짜를 입력하고, 후원금액을 정하면 불과 몇 분 만에 후원은 마무리된다. 물론 목돈을 한꺼번에 전해주면 좋겠지만, 그러다 자칫 신용불량자가 되는 위기가 찾아올 수 있으므로 침착하게 정기 후원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렇게, 일 년여가 흘렀다. 종종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가 준녕이의 소식은 없을까 찾아보았는데, 많은 후원 덕분에 준녕이는 읍내에 있는 새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고 새로운 학교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었구나.

 사실 매년 새롭게 후원할 곳을 늘려가는 중이다. 다달이 은행 애플리케이션 알람 소리와 함께 돈이 빠져나가지만, 지출임에도 유일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 순간이다. 거, 술 한 번 덜 먹고 외식 한 번 덜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내 비록 가난하오나 마음까지 가난한 자는 아니므로, 언젠간 온기를 가득 담아 굶주린 자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되리라는 원대한 꿈을 꾸곤 한다. 그리고 그 밥상은 꼭 둥그렁땡처럼 보기만 해도 든든하고 푸짐한 반찬들로 채울 것이다. 짜장면은 곱빼기, 탕수육은 대짜, 닭 다리는 두 개씩,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조금 이상했다. 재료는 달라도 크기는 똑같다. 유튜브든 블로그든 지구인들은 죄다 같은 크기의 동그랑땡을 만들어 낸다. 대체, 왜? 동그랑땡이 좀 뚱뚱하면 안 되는 걸까? 날이 쌀쌀해지면, 그래서 추위를 잊고 싶다면, 기왕 만들어 먹는 거 동그랑땡은 큼직큼직하게 만들어 보길 권해본다. 동그랑땡 말고, 둥그렁땡으로 말이다. 그 둥그렁땡으로 인해 가득 채워지는 우리의 하루가 있을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어김없이 잔인한 계절을 선사하지만, 그 잔인함은 역설적으로 희망과 사랑, 온기를 잉태하기도 한다. 그건 모두 우리 지구인에게 달렸다. 신은 언제나처럼 우릴 시험하는 것일지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신의 시험에 당당히 응해주려 한다. 나누면 오히려 채워지는 마법, 둥그렁땡을 기억하며 오늘도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절대로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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