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웅숭깊은 라쌤 Dec 12. 2023

된장찌개엔 언제나 사연이 있지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글쓰기 커뮤니티를 둘러보다 보면 이혼, 고부갈등, 실직, 뭐 이런 소재들이 자꾸 올라온다. 그리고 그런 글이 매우 인기다. 아니, 이거 뭐 사연 없는 사람은 글도 쓰지 말란 건가 싶을 정도라니까. 사실 이건 오래전부터 느껴왔던 건데 함께 사는 세상이나 희생, 평화보단 싸워서 이기는 방법, 부자 되는 법, 혼자서도 잘 살아남는 방법 따위가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는 현실이 조금 슬프기도 하다. 왜들 그렇게 아프게 살고 있는 걸까. 지구인의 삶에 웃음이나 행복만 가득할 수는 없는 걸까.      


 그나저나 말이다. 퇴근 후 집에 와 된장찌개를 끓이다 생각난 건데, 이상하게도 된장찌개엔 언제나 사연이 있다. 구수한 할머니의 손맛이라든가 소박한 가족끼리의 식사, 집밥의 상징과도 같은 된장찌개를 끓이며 일상의 공허함을 채운다든가 일상의 잡념을 비워내는 이들이 여기저기 참 많기도 하다. 된장찌개가 이리도 대단한 영향력을 지닌 음식이었다니! 그런데 이 된장찌개가 폭소를 터뜨릴 개그 소재가 되어 지구인의 웃음을 되찾아 줄 수 있다면 어떨까?

 된장찌개에 된장 대신 치즈를 잘못 넣었다든가, 외국인에게 된장찌개를 대접했는데 그 맛에 반해 청혼을 받았다든가(청혼 반지는 기왕이면 된장찌개 안에 숨겨서?), 된장찌개를 먹고 오래 고생했던 변비나 허리 디스크 통증이 싹 사라졌다든가 하는 사연 말이다. 벌써 웃기지 않아?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의 된장찌개가 가진 웃음 코드를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미리 사과한다. 나의 된장찌개엔 사연이 없다. 난 그저, 된장찌개가 맛있어서 끓였을 뿐이다. 그렇게 음식 하나하나에 사연을 부여하다간 아마 다들 말라 죽을걸? 우리, 먹기 위해 사는 것 아니었어? 그냥 먹고 즐기자니깐!     


 대신 나의 된장찌개엔 철칙 혹은 철학이 있다. 메인 재료는 언제나 듬뿍듬뿍 큼직하게 넣어서 끓이기. 두부가 뒤덮었다거나 차돌이 넘치는 된장찌개는 존재감은 물론 정체성도 확실해서 흐지부지 흘러가는 삶의 한 단면을 확실한 색으로 채워주곤 한다. 잠들기 전 그날 하루를 곱씹었을 때 아무 장면도 그릴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프겠어. 반대로 그러는 와중에 된장찌개라도 떠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만족스러운 하루가 되겠냐 이 말이지. 

 또 한 가지 철칙 혹은 철학은 된장찌개는 반드시 뚝배기에 끓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이든 어울리는 냄비나 그릇이 있기 마련이다. 1인분 찌개를 끓이는데 거대한 중국식 웍을 가져다 쓸 순 없는 노릇이고, 납작한 파스타 그릇이나 간장 종지에 찌개를 덜어낼 수도 없다. 아마 과학적으로 뚝배기가 음식의 열을 잘 보존하고 뭐…… 그런 것도 있을 거다. 적당한 크기의 아무 냄비에나 끓여도 되지 않냐 할 수 있겠지만, 그 적당함을 가장 정확하게 맞춰주는 것이 바로 뚝배기란 거지. 기왕이면 뚝배기! 물론 당신이 원해서 간장 종지에 담아 먹는다는데 내가 그걸 비난할 생각은 없긴 하다.     

된장찌개는 뚝배기가 국룰..아니 내 철학이다!


 여하튼 난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지구인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 더 정확하게는 ‘된장찌개도 좋아하는 지구인’이랄까. 함께 잠들기 전 누워 오늘 당신의 된장찌개는 어떤 의미였나요, 이렇게 물으며 소박한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존재. 된장찌개 대신 이혼, 고부갈등, 실직, 뭐 이런 소재들을 잠자리에서 나누고 싶진 않다. 물론 알고 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생각보다 많은 사연이 우릴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의외라고 여길 수 있지만― 상상 이상으로 많은 지구인이 그런 이야기만 하며 산다. 온종일 주변인들을 욕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거나, 하루 일상에 반드시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거나, 남의 불행만 찾아다니며 ―사실 알고 보면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상대적 만족을 느낀다거나 하는 그런 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다. 이건 절대 지구의 탓이 아니다. 세상 탓도 아니고, 그들의 탓이다. 아마 그들은 코와 귀가 막히고, 눈도 안 보이는 이들이겠지.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와 보글보글 끓는 소리, 먹음직스럽게 담기는 건더기와 국물 따위는 그들에겐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제발 가끔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소박한 하루도 만들기 위해 애써봤으면 좋겠다. 당신 하루의 메인 이벤트가 된장찌개가 되는 그런 날, 내가 당신 옆에 누워 그 일상을 함께 나눠줄 테니 말이다. 


 내가 없더라도 언젠가 당신이 된장찌개를 끓여 먹는 날, 나의 이야기를 기억해주길. 그날 당신의 하루는 미움과 시기, 질투 대신 소박한 행복과 만족, 사랑으로 가득할 테니.      


 호잇! 지금 둘리표 마법을 걸었으니 분명 그렇게 될지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